[project 당신] 03. 나의 유년에 보내는 밤편지 : 정연수

애틋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가는 당신의 밤.
글 입력 2017.09.1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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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當身)

1.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2. 문어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나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
그럼 언제든 눈을 감고
가장 먼 곳으로 가요

- 아이유 ‘밤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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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30.

 예쁜 카페에서 만나요, 라는 당신의 말에 전날 밤 몽글거리는 마음으로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연남동의 작은 카페에서 ‘당신’을 만났다. 빈티지한 공간과 잘 어울리는 당신은 어깨에 부드럽게 떨어지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어젯밤 꿈에서라도 만났던 사람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우리와 만나기 전, 질문을 살펴보고 또 다시 고민해보며 제법 오랜 시간 사색에 잠겼었다는 당신은 인터뷰 날에도 진지한 당신만의 언어로 유년시절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야를 말씀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정연수입니다. 저는 <유년의 기억>이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어요. 제목 그대로, 유년시절의 기억을 현재의 내가 다시 떠올려보면서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써내려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Q. 나를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A. 저는 “내 마음대로”인 사람이에요. 나쁘게 말하자면 고집이 있다는 말이고, 좋게 말하면 주관이 뚜렷하다, 그리고 긍정.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Q. 아트인사이트의 다른 글들도 많이 읽으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글이 특히 좋았나요?

A. 아트인사이트에 하루에 한 번은 들어가는데 그 중에 눈에 띄는 글들은 자주 챙겨 읽어요.
음, 특히 <공간x공감>을 재밌게 보고 있어요. 정말 ‘내 마음대로’ 써내려가는 글들이 너무 좋아요. 개성이 뚜렷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그대로 한다는 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Q. 유년의 기억에 해당하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A.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를 기점으로 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일기를 너무 상세하게 적어놨더라고요. 오히려 그것이 제가 떠올렸던 유년의 감성과는 다른 것 같아서, 3학년 때까지의 기억을 더듬어보고 있어요.



Q. 어린 시절을 소재로 연재하고자 했던 계기가 있었다면요?

A. 우선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어릴 때 굉장히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가졌고, ‘오늘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혼자 되뇌는 스타일이에요. 물론 지금도요. 치열하게 공부했던 고등학교 시기가 지나고 대학교에 올라와서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지난날들이 많이 떠올라서 ‘아, 이걸 어디에다 써놓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요.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에세이를 써두면 기억에도 오래 남고, 추억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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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써내려나간 기억 중 어떤 조각들은 우리의 추억이기도 했다. 그 시절 순수했던 마음들은 서로 통하기 마련인지 대화를 나누다보니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우리는 학교에 얽힌 괴담이 두려웠다는 이야기, 삐에로는 아직도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라던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장면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윤: 되돌아보면 좋았던 추억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저는 일기 쓰는 습관이 안 들여져 있어요. 악필인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네요. 게다가 누가 내 일기를 보면 창피한 마음이 커서 지금도 끈질지게는 못 쓰겠더라고요.

해서: 맞아요. 개인적인 일기를 공개적인 플랫폼에 올리실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연수: 저는 일기를 쓰는 습관 덕에 일기장이 쌓여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어느 날은 어머니가 청소를 하시다가 일기장 뭉치들을 버리신 거예요. 야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일기장들이 없어진 걸 확인하고는 집 밖 쓰레기장으로 달려가 내내 뒤져서 다시 찾아온 기억이 나요. 그만큼 일기장은 애착이 큰 존재예요.

 그만큼 소중한 나의 일기를 공개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순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걸 꽁꽁 숨겨놓고 혼자 간직하기보다는 글로 남겨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당신은 가만히 기억을 짚어 보다 문득 동생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2학년에 얻은 동생이 커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당신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본다고 했다.



Q. 그 시절만이 갖고 있는 감성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다르기도 하잖아요. 그 때의 감정들을 느끼고 싶을 때 하는 일이 있을까요?

A. 평소 자기 전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요. 원래 겁이 많은 편이라 어머니께서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봐, 또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봐.’ 라고 하시던 말씀 덕분에 자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요.

 여유가 있는 요즘, 그때의 감각을 느끼고 싶을 때면 그 날의 날씨가 어땠는지, 무슨 옷을 입었었는지 눈을 감고 천천히 회상하다 보면 감정들이 떠올라요. 그러다 글감이 생각나면 휴대폰을 집어 단상들을 메모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당신에게서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 아픔의 행방을 묻고 있다는 지점이 굉장히 시적인 표현으로 들리기도 했는데, 한참 지난 그 때의 기억을 회귀하면서 생채기를 다시 어루만졌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Q. 하지만 기억이라는 건 잊히기 마련이잖아요. 10년의 세월이 지나 기억을 드러내는 과정인데, 이 과정이 스스로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었나요?
 
A. 왜곡되거나 사실이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기억은 사실이 아니어도 되고, 나의 위주로 조금씩 바뀐 기억이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기억이 더 좋게 미화되고 좋지 않은 기억은 더 나쁘게 변화해도, 그게 좋은 기억이었다면 ‘나 오늘 좋은 하루를 보냈구나’ 생각할 테고, 나쁜 기억이었다면 성숙해진 지금의 내가 지난날의 나를 이해하고, 그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릴 때의 나쁜 기억은 얼마 전 당신이 기고한 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바다’. 정말 안 좋아해서 바다로 놀러가자는 말을 회피하곤 했다는 당신. 하지만 그 기억은 지난 그 때의 것일 뿐이고, 그 기억들이 모여 자신의 일부를 만든다고 했다. 스스로를 조금 더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며, 그래서 이번 여름에 당신은 바다와 친해지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했다.



Q.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것들이 모여 연수씨를 만들었네요. 그런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면요?

A. 저는 <죄와벌>이라는 책을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후로 다시 펼치지 않았어요. 그 때 당시 내용을 읽고는 끔찍했던 감정들이 다가오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거든요. 한창 어린왕자 읽을 나이인데 말이죠. 그 때 당시 책을 읽다 그만둔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날은 엄마에게 전화해서 더 이상 못 읽겠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죄와벌>은 아직까지도 끝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이에요.



Q. 만약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났을 때, 지금의 나날들을 돌이켜 생각한다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 것 같나요?

A. 일단 대학에 대한 실망감이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이 전부였잖아요. 못가면 어떡하나 매일 울고, 달래주고 하던 날들을 보상해줄 만큼 대학은 아름다운 날들의 연속일 줄 알았어요. 근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별 거 없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대학생이 정말 많구나, 하는 것도요. 내가 대학에 왔다고 해서 그것에 자부심을 느낄 필요도 없고, 대학이라는 것이 인생의 큰 부분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먼 미래를 넘어 이 세상에 없는 시공간을 떠올려 봐요. 만약 본인에게 ‘13월’이라는 가상의 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A.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집에 있고 싶어요. 혼자만의 시간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진 질문이겠지만, 이미 저만의 시간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을 너무 자주 만나거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일주일 중 하루라도 없으면 너무 우울하거든요. 자기 전에 한 시간이라도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해서든지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편이라, 13월이 있어도 아, 그럼 더 좋다. 하면서 혼자 보낼 것 같아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여행도 가고 싶네요, 물론 혼자! 그리고 세계를 돌면서 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팬들이 나를 위해 불도 켜주고, 노래를 함께 불러주고, 그러면서 굉장히 화려한 날들도 보내보고 싶어요. 근데 분명 피곤하겠죠?



Q. 오늘 인터뷰 오기 전에 있었던 일 중에 인상적인 장면이나 인터뷰가 끝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A. 최근에 타투를 하려고 예약을 해놨어요. 손은 되게 잘 지워지는 부분이잖아요. 공항철도를 타고 오는데 타투를 손에 가득 새긴 남성분이 있어서, 유심히 살펴본 기억이 인상깊이 남네요. 그리고 끝나면 약속이 있어요. 오늘은 맛있는 걸 먹고 싶네요.



Q. 자기 자신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A. 제가 좋아하는 색이기도 한, 연보라색이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남색을 섞으면 차가워질 수 있고, 분홍색을 섞으면 좀 따뜻한 색감을 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방도 보라색으로 직접 칠했어요! 여기 있는 이 이어폰도 그렇고, 이것저것 보라색의 물건을 모으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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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릴레이 질문) 바꾸고 싶은 헤어스타일이 있다면요? -최지은

A. 저는 칼단발이요. 그런데 이번에는 길러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칼단발로 자르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따뜻한 겨울을 위해서는 열심히 참아볼 거예요.



Q. 다음 인터뷰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뜬금없을지 모르겠네요. “고양이 좋아하세요?”
 
 저는 완전 좋아해요. 강아지도 엄청 좋아하는데, 고양이가 매력이 넘쳐요. 그 아이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존재인 것 같아서요. 너는 너, 나는 나, ‘가끔 너를 좋아하고, 지금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그래서 언젠가 고양이와 함께 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어요. 알러지가 있는데도요!



 당신은 ‘고요’를 애정한다. 나만의 시간, 나의 기호, 나의 시선, 나의 일상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애착하는 공간 또한 오랜 시간 머물러 왔던, 고요한 ‘나의 방’인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예상처럼, 당신은 애착하는 공간으로 방의 사진을 보내 왔다. 곳곳에 묻어있는 당신의 시선과 애정이 서려 있는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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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방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자
시간인 방, 침대, 자기 전 사진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방에서 떠올리고,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해요."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또 그리워 더 그리워
나의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당신의 언어를 통해 꺼내어 본 우리의 기억들은
서툴지만 소중하고 따뜻했다.
나는 매일 밤, 애틋한 마음으로 유년의 ‘나’에게 보내는
당신의 밤 편지를 내내 기다릴 것 같다.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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