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영화 < 택시운전사 > [영화]

글 입력 2017.09.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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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나면 당장이라도 글을 털어놓고 싶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좋았는데도 쉬이 글로 옮기기 어려운 영화가 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 <택시 운전사>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모두가 알고 있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어 전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이미 천만 관객이 넘은 시점에서 혹자는 내게 이 영화는 보지 않으면 안 될 영화다, 안 보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오 그러나, 영화를 애국하려고 보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답했다. 그런 의무감으로 혹은 모두가 본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어쩌면 가벼운 마음가짐은 아닐까. 영화는 어차피 관객과 거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화면에 담긴 기쁨, 슬픔, 고통 수많은 감정을 보면서 그땐 그랬구나 하며 함께 웃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마치 이것이 모두 한바탕 꿈인 듯 영화와는 아예 상관없는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지 않았던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더라도 물론 오래된 일이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강산은 여러 번 바뀌었고 정권도, 우리의 삶도 많이 바뀌었다. 민주주의는 내가 태어날 무렵부터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었다. 나는 사실 그에게 이렇게도 말해주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 애국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애국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국가가 될 수 있는 필수요소인 국민을 버리는 광경이 펼쳐진다. 법 없이도 사는 나라가 보인다. 배수진이 쳐있다. 총과 몽둥이를 앞세웠고, 뒤에는 편리 한대로 해석하는 이념과 애국에 대한 관념, 언론이 있다. 판을 낭자하게 벌려놔도 사람들이 모르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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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알리려는 사람에게 총을 쏘고 발길질을 했는데, 이제는 알린 사람에게 갑자기 상을 준다. 병 주고 약 주려는 건가 싶다. 몽롱했던 심장은 고통과 공포에 떨어서 잔뜩 쿵쾅대다가 가까운 현실에 돌아와서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상을 줄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나. 아니 상을 줘서 될 일인가.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미안하다는 말. 안다. 그게 없고서야 뭐라 달라진단 말인가. 달라진 게 있긴 한가. 변두리만 바뀌고 핵심은 그다지 변한 게 없지 않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때린 놈 입장이다.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는 건 적어도 이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늘어만 나는 제삼자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제 갈 길 간다. 아무리 늦어도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발 뻗고 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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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거창하게 해도 그 시대, 그 자리에 없던 사람이 하는 헛소리 일지 모른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현실의 나는 영화의 초반 그려진 일상생활의 김사복과 다를 것이 없다. 작은 것에 화나고, 큰 것엔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내 가족이 중하고, 내 차가 중하고, 나 먹고사는 돈이 중하다. 후반부의 김사복만큼 할 자신도 실은 없다. 일단 살아남았을지 우연찮게 죽어버렸을지도 모르고, 기껏 한숨 돌려 벗어난 광주를 다시 갈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총이 날아오는데 택시를 끌고 사람들 데려오겠다고 차를 운전해갔을지도. 군인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긴장해 온몸이 얼어붙었을 터. 그나마 내가 했을 법한 것은 전전긍긍하며 영상을 찍는 힌츠페터에게 위험하다며 살살하라고 한 모습 정도이다. 어렸을 때는 당당하게 할 말하고 거리낄 것 없이 살자던 패기로움이 영화를 보면서 회의와 불안함으로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많던 패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좀 먹어 바스러졌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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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위안이 되는 것은 영화 속 누구 하나 자신감이 넘쳐흘러 그 자리에서 움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 가족이고, 이웃이고, 누가 얻어맞고 다치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어 두 팔을 오므리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나간 것이리라. 어차피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조금은 무거웠던 마음이 편해진다. 나 같은 겁 많은 소시민에게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니.

 글을 쓸 때는 제목을 늘 마지막이나 후반부에 붙이곤 한다. 아무래도 어렵다. 하지만 오늘은 제목이 먼저 생각났다. 정현승 시인의 <섬>의 아주 익숙한 구절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승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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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는 정현승 시인의 <섬>과는 다르다. 사람들 사이에 엄연한 섬이었음에도 아무도 쉬이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세상 속 섬이 되어버린 한국의 광주로 왔다.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좌파 이념에 가득 찬 폭도가 도사린다는 오해와 누명으로 가득 찬 광주로. 영화에서는 우연히 힌츠페터를 광주로 데려온 택시 운전사 김사복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허겁지겁 벗어난 섬 광주에 고민 끝에 다시 돌아간다. 너무나 돌아가고 싶었던 서울과 보고 싶은 딸을 뒤로하고. 고통과 신음, 풀리지 않은 의문에 잠겨버린 곳으로. 섬 안에는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둘을 다시 내보내려고 애쓰는 섬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밥을 내주고, 집을 내주고, 귀중한 차도, 심지어는 숨마저도.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라야 했던 군인에게도 힌츠페터와 김사복을 보내주려 보고도 못 본 척 감은 눈이 있었다. 영화에선 등장인물의 이름이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걔, 그 사람이래도 다 기억할 수 있다. 김사복이 어떤 이름을 썼더라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본명을 감춘 것은 혹여 모를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곳에 이름도 묻지 못한 많은 이들의 노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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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고을이라는 광주. 완연한 빛을 자랑하는 고을에는 조금 오래된 어둠이 함께 하고 있다. 그래, 우리나라만 과오를 저지르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우리처럼 과거에 흉터를 안고 사는 경우도 있고 현재 상처를 새겨가는 경우도 있다. 이 곳 저 곳 넘어져 성한 날 없었던 내 무릎에도 꽤나 오래된 흉터가 있다. 이제는 제법 시간도 지났고 색도 옅어졌지만 이미 생겨버린 경계선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때와 달리 이제는 광주로 오가고, 전화를 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은 물론, 그 날에 대한 그 자료로 공부를 하며 다시 생겨서는 안 될  일이라며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그 경계선이란 녀석은 어디로 갔는가.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사이에 있다가 불쑥 길을 막는다. 어느 세대 사이에서, 어느 지역 사이에서, 언론이 통제되지도, 고립되지도 않은 세상에서도 여전히 그 날의 기억이 다른 해석으로 동동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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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럽게 만든 영화란 느낌이 강하다. 어찌 보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담백하다. 소극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좋은 입문서 같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밥 먹고 할 일이 없나 데모나 하러 다닌다며 깨진 자동차 부품으로 궁시렁대던 어느 택시 운전사가 대체 무슨 일이래요 하면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한복판에 택시를 세우고 '그 데모나 하는 애들'을 나서서 택시로  실어 나르는 걸 봤다. 영화가 나오기 10년 전 나온 < 화려한 휴가> 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다는 이 영화를 기다리고 응원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너희 누구도 그랬다더라, 하면서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 나온다. 광주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그렇게 광주는,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좀 더 가고 싶은 섬이 되고 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아도, 조금씩 섬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포근한 고을이 되려고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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