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2.0] 슬프고 불안한, Blue

글 입력 2017.09.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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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기에,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일이라 씁니다.







* blue : 특별한 이유 없이 슬프고 우울하다.


 blue가 파란색이 아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가까운 친구의 비밀을 남의 입을 통해 들은 것처럼 마냥 외로워졌다. 블루, 블루, 입술 주변을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소리가 입안으로 흘러들어 온 눈물 같아서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파란 눈빛의 소유자인 에단 호크가 주연을 맡은 영화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는 ‘blue’만큼이나 쓸쓸하고 부서질 듯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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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쳇 베이커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다. 재즈 음악가이자 트럼펫 연주자였던 그는 1950년대 쿨 재즈,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대표주자로 명성을 떨쳤으나 약물 중독이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걸려들고 만다. 심지어 그는 마약상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앞니를 전부 잃고 마는데, <본 투 비 블루>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도 트럼펫을 입에서 떼지 못했던 쳇 베이커의 성공, 그리고 실패를 조명한다.
 
 마약을 소지한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된 쳇 베이커를 한 영화감독이 찾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를 주연 배우이자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찍고자 했던 것. 실제 쳇 베이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없다. 하지만 덕분에 줄거리는 단순히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대신 흑백으로 뒤덮인 장면들을 통해 그의 과거를 파편적으로 나마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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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두려움아, 안녕 죽음아, 꺼져버려 
 안녕 두려움아, 안녕 죽음아, 꺼져버려. 

 영화 속 첫 흑백 장면은 쳇 베이커가 뉴욕 버드 랜드 클럽에서 데뷔무대를 갖던 날을 끄집어 낸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그는 한 여자와 격렬하게 키스를 하다 마약을 하기 시작한다. 팔뚝에 주사를 놓기 직전, 여자는 쳇의 눈을 응시하며 내뱉는다. "Hello fear" 그러면 쳇은 따라한다. “Hello fear." 그리고 다시 “Hello death", 다시 “Fuc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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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잘나가던 시절의 쳇 베이커는 버드 랜드 데뷔 무대에서도 관객들의 인기를 얻는다. 그가 자서전을 냈다면 활자 속에 영원히 기록될 의미 있는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마일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날은 쳇이 자신의 숙적인 마일스, 디지와의 첫 대면했던 날이기도 했다. 마일스에게 제대로 면박을 당한 쳇은 치기 어린 자존심 때문인지, 단순한 화풀이를 위해서였는지, 끓어오르는 분노를 제 몸에 대고 토해냈던 것이다. 언젠가 자신은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상처를 입힌다고 그가 말했듯이. 하지만 쳇은 그저 나약했다. 그게 사실이다. 어딘가에 중독되고 나서야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영광스럽고도 참을 수 없었던 버드 랜드의 밤, 거기 점철된 나약함은 쳇 베이커와 영화 전체를 한꺼번에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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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뭐 하는 거야?

 쳇의 인생, 그 중 가장 어두운 시간들을 중심으로 다루긴 하지만 영화 전체에 흐르는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사랑이다. 영화 촬영 중 쳇이 상대 배우로 만난 제인(카르멘 에조고)는 실존하진 않았지만 영화상에서 그가 마약을 끊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을 찾기 위해 오디션을 돌고 도는 제인, 손가락 하나하나를 어린 아이처럼 되짚어 가며 걸음마부터 밟아가는 쳇, 두 사람의 사랑은 그런 진창 속에서도 깊어져만 가고 여느 연인이 그러하듯 제인의 부모님을 만난다. 하지만 마약중독이라는 전적에 딱히 수입도 없는 그를 당연히 탐탁치 않아한다. 자존심에 깊이 상처 입었을 쳇은 눈부신 노을 속에 파도를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파란 바다로, 거침없이, 하지만 휘청대면서. 그런 그를 보고 제인은 외친다. 쳇! 뭐 하는 거야?

 바다는 죽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으면 자연히 겁을 집어먹게 되고, 차가운 물속으로 홀린 듯이 걸어들어 가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쳇이 죽고 싶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겠지만 바다만큼 깊고 차가운 좌절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파도에 부딪혀 하염없이 흔들리는 그를 제인은 한 마디 외침으로 끄집어낸다. 파란 바다로부터, 블루로부터, 쳇의 혈관에 흐르는 나약함으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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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용서해줘요. 무력하게 껴안은 이 몽롱함을. 

 헤로인대신 치료용 메타돈을 먹고 피를 질질 흘려가며 트럼펫을 불고, 피자가게에서 틀니를 눌러가며 공연을 하던 그는 결국 다시 버드 랜드 무대에 서게 된다. 디지와 마일스도 자신의 복귀 무대를 보러 온다는 소식에 긴장감에 몸서리친다. 반드시 인정받고 싶었던 그는 제인대신 헤로인을 품고 무대에 선다. 그토록 어렵게 끊은 마약에 손을 댐으로써 그의 나약함은 제인에 대한 사랑도, 그간의 노력도 가뿐히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무대 위에서 쳇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러니 용서해줘요. 무력하게 껴안은 이 몽롱함을" 열정으로 타오르는 순간이었으나, 그 강렬함에 스스로가 연소해 버린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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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적으로 그는 재기에 성공한다. 마일스의 마지못한 박수까지 받으면서. 그에게 자못 어울리는 파란 불빛 아래에서. 혼란스럽다. 그래서 그는 뭔가? 그냥 마약중독자에 불과한가? 대단한 재즈 연주가인가? 성공이기도, 실패이기도 한 무대에서 쳇은 다음 곡의 이름을 툭, 던져버리고는 우리 눈 앞을 떠나버린다. 그 이름은 바로, born to be blue.  아, 쳇은 그저 나약한 사람이었다. blue만큼 슬프고 불안한 소리를 금빛 악기에 대고 내뱉고 또 내뱉는.





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보암보암 2.0을 시작합니다.
같은 말도 상황과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오곤 합니다.
<보암보암2.0>은 대사, 혹은 가사를 중심으로 
거기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느낌을 보암보암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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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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