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쁜 이별은 추억을 무가치하게 만들 수 없다. 영화, <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 [영화]

첫사랑에 대한 회고
글 입력 2017.09.16 20: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jpg
 

 나의 첫사랑이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영화. 여전히 누군가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을 때 내가 이 영화를 언급한다는 것을 그는 알까.
 
 첫사랑과 헤어진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그 친구는 나와 헤어진 직후 나보다 (대외적으로) 훨씬 더 멋진 여자와 사귀었고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끝이 좋지 않은 연애는 모두 안좋게 퇴색되는 것처럼 보였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아무와도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지 2개월이 채 안된 지금, 바보 같게도 왠지 모를 외로움과 그리움이 덮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았다.


2.jpg
 
 
 하룻밤만에 2년 동안의 기억이 날아가버린 주인공.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 속에 남은 한 마디 때문에 기억을 지우자마자 그녀를 몬탁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에 대한 기억을 지우면서 2년 간의 일기가 찢어지고 누구나 아는 동요마저 잊어버린 조엘.

 여자는 나흘 전에 이미 그와의 기억을 지웠다. 그와 관련된 모든 물건, 일기장의 기록 등... 모두 라쿠나 사(기억을 지우는 회사)에 가져가 없애버렸을 것이다. 조엘은 그 배신감을 못이겨 자신의 기억도 지우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조엘이 기억을 지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억을 지우는 과정은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역순으로 따라간다. 기억 속의 두 연인은 잊혀지길 거부하며 도망친다. 때문에 조엘의 기억은 뒤죽박죽이 되기도 한다.


3.jpg
 
 
 안좋은 이별조차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의 추억들을 무가치하게 만들 순 없다. 조엘은 기억을 지우면서 이를 깨닫게 되었다. 클레멘타인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을 지우기로 한 이상 철회할 수 없기에 그들은 지워지는 과거의 행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2017-09-17 00;51;08.jpg
 

뒤섞이는 조엘의 머릿속 시간은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을 통해
그 순서를 확인할 수 있다.

(첫만남 : 초록 → 정열적 사랑 : 빨강 →권태기~이별 : 주황 → 기억을 지운 후 : 파랑)


 반복되는 일상은 얼마나 소중한가. 안타깝게도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여느 커플과 같이 그들의 열정도 권태로워져갔다.
 

4.jpg


 조엘의 물건과 조엘의 언어로
클레멘타인을 위로하는 패트릭


 한편,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운 클라멘타인에겐 알 수 없는 혼란이 남았다. 그녀가 전부 사랑하는 것들이었음에도 조엘이 미처 주지 못한 선물, 조엘의 말투, 조엘의 언어로는 그녀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었다. 말투와 물건, 상황과 같은 외면적인 것들은 사랑을 결정짓지 못한다.

 기억이 지워져도, 함께 나눈 물건이 사라져도,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언젠간 또다시 권태기가 올테고, 또 같은 이별을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운명처럼 다시, 둘은 연인이 되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5.jpg
 

 첫 남자친구와 이별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가끔씩, 아니, 어쩌면 자주 그를 생각한다. 끝이 좋지 않았음에도 그와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추억은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도리어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누군가와의 시간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은 종종 사람을 슬프게 한다. 지금 나에게 기억을 지워주는 라쿠나 회사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기억을 지울까?

 나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만나더라도 그와 예전처럼 지내지 못할 것이다.
 고등학생 때의 순수했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는 그와 연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편이 나의 행복을 위해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억을 지우겠냐는 질문에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겠다. 영화에서는 추억이 사라져도 사랑이 반복됐지만, 나는 추억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사랑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라쿠나 사에 방문할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다.



(본문의 사진 출처 : 영화 < 이터널 선샤인 >(네이버 N 스토어 다운로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태그.jpg
 

[주유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