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畵談)] 제 2 화(畵) : 슬픔, 파랑으로 화(化)하다.

글 입력 2017.09.2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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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슬픔이'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


 시작하는 화(畵)에서 언급했던 ‘인사이드 아웃’으로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2015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은 다섯 가지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라일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무의식을 의미하는 여러 비유가 너무도 적절 했기에, 근거없이 구축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심리학적인 요소가 배치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가장 큰 줄기를 차지하는 이야기는 ‘기쁨이’와 ‘슬픔이’의 관계다. ‘기쁨이’는 ‘슬픔이’를 견제한다. ‘슬픔이’가 계기판을 잡으면 ‘라일리’는 울었다. 우는 ‘라일리’가 보고 싶지 않은 ‘기쁨이’는 ‘라일리’의 삶에 ‘슬픔이’가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새로운 동네로 ‘라일리’가 이사 오고 ‘슬픔이’는 부쩍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핵심 기억을 만지거나, 계기판을 잡기도 한다. 말리던 ‘기쁨이’와 ‘슬픔이’는 기억 전송 파이프로 떨어지고, 다른 감정들도 통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라일리’의 자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비유적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영화에서는 ‘성격 섬’이 붕괴된다.) 기억저장소에서 다시 돌아온 ‘기쁨이’와 ‘슬픔이’. 굳어가는 ‘라일리’의 계기판을 작동시키기 위해 ‘기쁨이’는 ‘슬픔이’에게 핵심 기억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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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사이드 아웃' 캡쳐본 - '슬픔이' )


 ‘슬픔이’가 인정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의 ‘슬픔이’는 제대로 인정받고 있나?




1. 이별 : 오스카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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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kar Kokoschka, Bride of the Wind, oil on canvas, 1913-1914 )


 그림에 함께 누워 있는 남녀 한 쌍이 보인다. 여자의 얼굴을 평온해 보이는데, 남자의 얼굴을 그렇지 않다. 표정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어두운 색으로 칠해진 남자의 얼굴에는 걱정, 불안같은 것들이 어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의 어깨에서 이어진 어떤 흐름은 전체를 감싸면서도 흩어지는 것 같다. 그 흐름에 몸을 맡겨 여자가 떠나가게 될 순간을 예감하고 있는 것일까? 예정된 이별의 순간을 걱정하는 남자의 슬픔은 그림 전체에 짙은 파랑의 색채로 형상화된다.

 슬픔은 근본적으로 상실로 인한 실망감에서 비롯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는다.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잃은 순간 우리는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연인과의 이별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잃는 대표적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화가인 오스카 코코슈카는 미망인 알마 밀러를 열렬하게 사랑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를 얻지 못했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그림 속 남자의 슬픔은 화가 자신의 슬픔이기도 했다.




2. 우울 : 파블로 피카소,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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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blo Picasso, Tragedy, oil on wood, 1963 )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한 가족이 바다 앞에 고뇌에 빠져있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 추워 보인다. 아이의 처진 눈은 몹시 지쳐 보인다. 작은 아이가 지쳐 있는 이유, 부부가 고뇌에 빠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 그들이 바다 앞에 다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풍족한 삶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가족. 빈곤한 삶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이 아이를 지치게 할 만큼 그들의 삶은 가혹 했나 보다. 지독한 삶의 무게로 인한 우울에서 벗어나고자 바다 앞을 서성거리는 것은 아닐까.

 슬픔과 우울은 다르다. 단지 오래 슬픈 상태를 우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슬픔과 다르게 우울은 병리적 증상을 동반한다. 식욕부진이나 불면 같은 신체적 증상, 자기 비하와 같은 정신적 증상 등. 우울은 ‘학습된 무기력’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1901년부터 4년 간 피카소는 청색을 주로 사용해 걸인, 장님, 늙은 뚜쟁이 등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화폭에 담았다. 친구의 자살로 인한 그의 슬픔이 그림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이 시기를 '피카소의 청색시대'라고 이야기한다.




3. 애도 : 신순남, 진혼제,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


신순남, 진혼제,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 1990,캔버스에 유화(부분).jpg
( 신순남, 진혼제,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
1990, 캔버스에 유화(부분)
정지원, '내 영혼의 그림여행' 촬영본 )


 많은 이들이 뒤엉켜 있는 어두운 곳. 구석에는 병든 사람들이 몰려있고, 그곳에는 손녀를 안은 할머니도 보인다. 주위를 감싼 다른 이들의 애도하는 기도. 주위를 감싼 위태로운 촛불처럼 시시로 꺼져가는 생명의 촛불들. 저들은 왜 모여 있을까, 저들은 왜 병들었을까, 저들은 왜 얼굴이 없을까? 이름도, 민족도 없이 노예로서 존재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그림에 담겨 있다.

 고려인 화가 신순남. 1928년에 출생한 그는 1937년 러시아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인해 중앙아시아로 옮겨진다. 그는 그림을 통해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어떻게 억압했는지 보여준다. 어두움, 추위, 두려움, 죽음. 집단 수용소에서 보내던 나날을 화가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진혼제 연작은 그의 대표작으로 가로 44m, 세로 3m 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이다. 아픈 역사로 인해 겪은 개인적 비극을 담아낸 화폭으로 영국 BBC에서는 ‘아시아의 피카소’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니, 때로 인생은 참으로 얄궂다.




4.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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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자연의 색이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와 같이 깨끗한 자연과 그 것에서 비롯되는 맑은 에너지를 뜻하기도 한다. 동시에 파랑은 슬픔의 감성을 담는다. 영미권에서는 우울증(blue devils), 일하는 월요일(blue Monday)처럼 부정적 감정이 담긴 상징적 의미로 ‘blue’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바람의 신부’에서 남자는 자신의 연인을 잃을까 걱정하며, 흩어져 가는 여자로 인해 슬퍼한다. 바람의 흐름은 파란색 곡선으로 흩어지면서 연인의 상실을 구체화한다.

 ‘비극’에서 파랑은 결코 자연의 색이 아니다. 바다를 표현한 파랑 역시 그들의 삶에 진득하게 얽혀있는 불행처럼 느껴진다. 빈곤한 삶, 추운 바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근본적 우울은 파란색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진혼제(레퀴엠)’은 두 그림과 다르게 파랑이 짙게 느껴지는 그림은 아니다. 그러나 집단 수용소 생활로 인한 비극성은 원색들의 대비로 인해 부각되고, 서늘한 색은 그림의 주요 색채를 담당하며 그림 전반에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세 그림이 워낙 슬프게 느껴져서 한 그림만 뽑기가 어렵지만, 나는 ‘진혼제’가 가장 슬펐다. 특별히 내가 민족의식이 투철한 청년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림 전체에서 느껴지는 애도의 분위기가 슬펐다.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가운데 병든 사람들을 보내줄 수 밖에 없는 저 상황이,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개인의 아픔으로 다가와 더 슬펐다. 그림 에세이를 슥슥 넘겨가다 그림을 먼저 발견했기에 고려인 화가가 직접 그린 자신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그 후였다. ‘아시아의 피카소’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 얄궂다고 얘기했지만, 저 아픔의 순간을 그림으로 고백할 수 있었기에 화가의 슬픔은 충분한 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하게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서두에서 한 질문을 다시 이어보고자 한다. 당신의 ‘슬픔이’는 인정받고 있나? 나는 ‘슬픔이’를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요새 조금 예민하고, 어제도 한차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슬픔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싫다. 나는 내가 슬플 때마다 충분히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아픔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예술적인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슬픔이’를 온전히 알아주는 사람이고 싶다.



< 참고 >

정지원, 내 영혼의 그림 여행, 한겨레출판
문지현, 감정 : 행복과 불행은 어디서, 어떻게 교차하는가, 작은씨앗
곽아람, 그림이 그녀에게, 아트북스





< 다음 화(畵) 예고 - 제 2.5 화(畵) : 슬픔, 다르게 화(化)하다 >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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