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들은 말해도 몰라요, 영화 '우리들' [영화]

글 입력 2017.09.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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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말해도 몰라요, 영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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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많았다. 물론 그러한 드라마, 영화의 대상은 어린이인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말이다. 어린이대상 콘텐츠를 합치더라도 대부분의 콘텐츠는 어른의 관점에서 쓰였다. 그런 콘텐츠들은 어린이들에게는 물론, 어린이를 거쳐 온 어른들에게도 그다지 커다란 감동을 주지 못했다. 분명 콘텐츠를 만드는 어른들 역시 어린이를 거쳐 왔을 텐데, 어쩐지 어린이의 진심을 담진 못했다. 지나간 세월이 동심 위에 먼지를 쌓고 쌓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다.


  시청자 혹은 관객인 나 역시도 어린이를 거쳐 왔지만, 심지어 콘텐츠를 만드는 어른들보다 더 어린이에 가까운 경우에 있었지만, 어릴 때의 마음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 당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이었으며, 감히 어른들이 순수라는 이름 따위를 가져다붙이며 취급하던 우리들의 관계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지. 너무 멀어진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월이 10년 넘게 흐른 것에 비해, 이 영화는 무려 2시간 만에 그 때의 기분을 상기시켜주었다.


  영화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의 장편영화다. 내가 윤가은 감독을 처음 접한 것은 ‘손님’이라는 단편영화를 통해서였는데, ‘손님’ 역시 아이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낯선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문을 열어주는 아이들과, 장난감 고장에 불같이 화를 내는 남자아이, 립스틱으로 그림을 그리는 여자아이. 아이들의 그 무엇이 주제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모습이 잘 다루어진 단편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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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영화 ‘우리들’은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마치 팝업처럼 떠오르는, 아주 입체적인 영화였다. 그 때 당시 왜 서로를 싸우고 오해했는지, 그리고 다시 화해하게 만드는 심적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섬세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간 존재했던 미디어 속 어린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며, 순수하고, 단순한 존재로만 그려져 왔었다. 하지만 ‘우리들’ 속 아이들은 그 때의 감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끓어오르는 감정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고민 덩어리들, 그리고 그 걸 풀기 위해 어른들의 몹쓸 자존심은 필요 없다는 걸 다시 증명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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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그 때 당시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어떻게 관계를 만들었는지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영화였다. 손톱에 봉선화 물들이기, 저마다의 그룹을 이루던 피구, 직접 만든 무언가. 덧붙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도 감지할 수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없었던 스마트폰이 특히 그러했다. 선풍기보다 생소했던 에어컨 역시 마찬가지다. 재밌는 것은, 봉선화 물들이기와 매니큐어는 새로운 변화 같이 보이지만, 나 역시도 지나쳤던 일들이란 것이다. 10년도 더 된 일들을 영화로 접할 때, 마음속에 밀려오는 추억의 감정은 제법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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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들’은 어른들에 대한 비판 역시 놓치지 않는다. 영화 ‘우리들’ 속 어른들은 너무나 허름하고 무감각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른 속은 모르는’, ‘철없는’, 혹은 ‘물정이나 세태에 대해 이해 못하는’ 존재로 취급한다. 정작 자기 자신들은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산다.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기 두려워하면서, 아이들이나 남의 이야기를 쉽게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덤이다. 반면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과 같으면서 다른 존재다. 똑같이 자존심에 휘둘리고, 똑같이 질투나 감정에 괴로워하지만, 어른들이 지나치는 아이들끼리의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른들은 말해줘도 모르는 그 무엇,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감각이 뛰어넘은 무엇, 아이들에게만 느껴지는 무언가 말이다. 영화 ‘우리들’은 그 것을 캐치해냈다.


  이미 지나쳐온 세월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영화 ‘우리들’은 그 역할을 가장 훌륭히 해내는 영화 중 하나다. 올 추석, ‘우리들’을 보며 시골에서 한껏 뛰어놀던 어린 날의 나를 다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 때의 나는 어땠는지, 무얼 하고 놀았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 조금 어렵다면 서랍 속 먼지 쌓인 앨범이 좋은 힌트가 되겠다. 모두들, 메리 추석. ‘우리들’도 ‘너희들’도 행복한 추석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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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컷_네이버 영화 '우리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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