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② -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임수진

무겁지 않게, 너무 가볍지도 않게, 모두에게 허밍
글 입력 2017.10.0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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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 ②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임수진


이제는 흐릿한 고등학교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당시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물건은 비싼 스마트폰도, 선생님 눈을 피해 입고 다니던 사복도 아닌, 낡고 작은 MP3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혼자 화장실에서 조용히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던 수시 결과 발표날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와 당황했던 적은 있어도, MP3가 없어서 공허했던 날은 없을 정도였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하루의 첫머리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머리맡에는 늘 이어폰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사실 ‘듣는다’는 것은 제가 가늠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 되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어느 부분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음악은 인생의 명곡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곱씹어보면 괜히 낯간지러운 열일곱 열여덟의 저는 지금보다 더 친구들을 좋아했고, 사소한 일도 크게 부푼 풍선처럼 받아들였으며, 그래서 더 감상적이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책 한 권에 울고, 친구들의 이야기에 웃고, 별다를 것 없는 새벽이 유난히도 좋았거든요. 그리고 그 무렵의 겨울을 함께했던 노래가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였습니다. 사실 처음에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하던 가사를 듣고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눈물이 핑 돌았었어요. 코끝에 겨울, 차가운 공기에 반해 마음은 유난히 뜨거워졌던 청승맞은 밤은 아직도 선연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기억은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마다의 기록은 다르지만, 가을방학의 음악은 이미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누군가가 ‘만든 것’이 좋아지면, 그것을 만든 ‘누군가’가 알고 싶어지는 것처럼, 사실 그녀가 에세이를 썼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을 때엔 ‘계피’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어떤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았을까 궁금했어요. 가을방학의 음악처럼 따뜻하고, 포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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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겁지 않게, 너무 가볍지도 않게, 모두에게 허밍


누구나 그렇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고, 어제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했던 사람이 오늘은 의미 있는 타인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겠죠.

우리에게는 ‘계피’라는 뮤지션으로 익숙한 그녀이지만, 사실 이 책에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이자, 추억이었을 ‘임수진’이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보편적인 경험을 노래해야 하는 가을방학의 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던 사적인 기록들이었어요. 과거에 대한 회상, 뮤지션으로서 겪었던 일들, 가족에 대한 사랑… 사실 크게 화려한 일상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글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여러 번 곱씹어보게 되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자와 생각이 맞물리는 부분이 많았기에 그랬던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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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을 통해서, 늘 온화할 것만 같은 그녀도 사실은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이고, 따뜻하지만 때로는 차갑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뭐랄까… 가을방학의 음악은 하나의 안식처와 같았고, 맑은 음악과 목소리 덕분인지 들을 때마다 그들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아롱지는 추억에 대한 반가움까지 감정을 절제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하지만 몸에 남아있는 눈물을 다 흘리고 가루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슬픔을 토해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고 울면서 전화를 하다가도 길을 묻는 행인에게 눈물을 닦으며 대답해주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덩달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녀가 목소리로 마음을 어루만져줬던 만큼, 그럴 수 있다면 제가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합니다. (이는 책의 뒷부분에서 남편에 대한 사랑이 듬뿍 느껴졌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부족함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를 점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임수진의 모습은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수많은 이들의 열정으로 들끓는 세상 속에서, 그리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는 돌덩이처럼 여겨졌거든요. 왜 나는 다른 사람처럼 선뜻 나서질 못할까, 하나의 일에 완전히 빠지질 못할까. 몰아치는 생각 속에서 ‘이게 나다.’라며 자신을 인정하는 작가의 말은 여태 소용돌이 같았던 고민을 한 줄로 정리해주는 문장과 같았습니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그녀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공감’ ‘위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인지도가 있는 인디밴드의 보컬이자, 좋아하는 노래를 언제든지 마음껏 부르며 살아가는 뮤지션의 생활은 어딘지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마다의 걱정과 행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비슷하다는 것을 작가는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특히 이 책은 평소 알고 지내던 언니가 해주는 조언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충고 듣지 마. 다 자기 맥락에서 자기 말이야. 망해도 네 방식대로 망해버려.’라고 이야기를 건네면, 저는 소극적인 자세로 ‘정말 그래도 될까요…?’ 하고 되묻고, 그때 저자는 웃으면서 ‘그럼.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확, 피어버리자.’하고 대답해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아마 저는 앞으로 가을방학의 음악을 조금 더 친근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은 평범한 행복과 괴로움이 함께하는 일상을 담고 있지만, 사실 궁극적으로는 정작 바라보지 못하고 있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단순히 재미를 따지기보다, 그 속에서 새어 나오는 교훈을 찾는 일을 좋아하는 ‘교훈 마니아’가 쓴 책답게, 다른 독자들에게도 어떠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노랑과 분홍, 초록색이 조화를 이루는 따뜻한 표지의 느낌처럼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왜인지 올해 가을은 유난히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 같습니다. 차가워진 공기에, 저는 벌써 여름이 주는 청량감이 그리워지는 것 같은데요. 계절이 계절인 만큼 마지막으로 가을방학의 음악 한 곡을 추천해드리면서 글을 마치려 합니다. 저자가 노래 속의 지혜가 자신과 닮아있어 녹음할 때에 눈물이 났었다고 밝혔던, 그리고 저 역시 가사를 찾아보고 몇 번이나 혼자 중얼거리게 되었던 곡입니다.


가을방학 - 지혜
 
 
‘이미 지나갔어. 네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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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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