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표현에 대한 각자의 방식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0.08 03: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표현에 대한 각자의 방식



  “사랑해”는 이 곳 저 곳 사랑의 증거가 되고, 선호의 표현보다 조금 더 깊숙한 호감의 표현으로 쓰인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말 한 번 말하기 어려워하지만, 사랑의 고백은 물리적으로 아주 간단하다. 누군가에겐 노력 없이 뱉을 수 있는 겉치레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헤아림 없이 주워듣다 버릴 수 있는 소리 조각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용 용도처럼, 본심보다 짙은 무언가를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언어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사랑이라는 말에 참 진중하면서도 가볍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단한 그 무언가로 감싸지 않은, 날 것의 구슬 같은 느낌. 실수로 떨어지면 그대로, 흔적도 알아볼 수 없게 깨질 것 같은.

  그래서 어느 연인들은 사랑 고백을 아낀다. 또 어느 연인들은 사랑한단 말을 시적으로 돌려 말하기도 한다. 제멋대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치환해서 쓰기도 한다. 유명한 에세이집에서 나왔던 “삿포로에 갈까요?”가 그 예다.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좋아한단 말을 더 자주 하기도 한다. 좋다-라는 말은 사랑하다-보다는 덜 깊숙해 보이지만 그만큼 더 튀어나와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선호의 말만큼 당신이 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언어는 없다.


1.jpg
 

  어떤 연인들은 아예 말을 삼가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사랑할 것이라는 말- 그 말들은 어떤 표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다. 물론 개인의 방식에 따라서 서운함이 있겠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들이다. 마음에 대한, 언어가 아닌 표상들이다. 상대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별 상관없다. 마음은 꼭 말로 해서 전달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시초는 저마다 이유가 다를 것이다. 그래도 하나만 추측을 해보자면, 아마 말이 금기라서가 아닐까. 말은 펴서 내민 손바닥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도 있는 반면 짐이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가끔은 그 것을 휘둘러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상대의 손을 보며 받은 것들을 비교하게 만들기도 한다. 했던 말을 반복해서 설명할 수 있다면-물리적으로 아주 간단하다. 진중한 만큼 가볍다. 말은 쉽기 때문에 금기가 되기 일쑤다. 그렇다고 말을 삼가는 연인들이 최고의 방식을 채택했다고 말할 순 없다. 애초에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저마다의 베스트를 점지한 것이기 때문에.


2.jpg
 

  어떤 개인은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이 바뀌기도 한다. 심지어 한 연애 안에서도 그렇다. 사람은 변한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대사를 빌리자면- 어제 파인애플을 좋아했던 사람이 오늘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해”란 말은 더더욱 가볍다. 그리고 가벼운 만큼 어렵다. 상대의 모든 방식을 완벽히 이해한다면 조금 더 수월해질까? 고개를 마냥 끄덕일 순 없는 가정이다.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다. 또, 서로의 표현 방식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한들, 다시 영화 ‘중경삼림’의 한 대사를 빌리자면- 사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쩌면, 어떤 방식이든 어려움 천지라고 얘기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자면 지금까지 늘어놓은 단상들은 연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아이, 친구, 동료, 오늘 처음 본 사람과의 관계에도 스며드는 얘기들이다. “사랑해”라는 말 말고도 골치 썩히는 언어는 참 많다. 수많은 대화가 그렇다. 우리는 간간이 쌓아온 표현들 속에서 갑작스럽게 극단적인 무언가를 찾아내기도 하고, 첫마디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해내기도 한다.


3.jpg
 

  대화 자체가 가지는 문제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끔 딜레마가 있지만, 어느 누구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아무렇지 않게 혐오를 정당화하는 반면, 어느 누구는 말 하나로 사람을 구원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각자의 방식에 있고, 그 방식 깊숙이 자리 잡은 개인의 생각에 달려있다. 표현에 대한 각자의 방식은 그렇게 참 물리적으로 간단하다. 그리고 간단하기 때문에 매우 심오하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방식은 어떤 것인지,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 그 것만 알기에도 삶이 다 부족하다.





그림_빈센트 반 고흐


[이주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