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에게 즐거운 명절을 위하여 : 만화 '며느라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0.10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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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당차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내 성격에 대해서 고민했던 기억이 많다. 당찬 성격은 좋은 뜻 아닌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당차다’라는 말은 내가 겨우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나온 표현이다. 오히려 기가 세다, 성격이 사납고 드세다, 여성스럽지 못하다 등 부정적인 표현으로 평가 당한 적이 더욱 많았다. 짧은 인연의 사람들보다도 가족들에게 그러한 평가들을 받은 적이 더 많았기에 나름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문점이 생겼다. “여성스럽다”라는 것은 무슨 성격이길래 나를 얽매이고 있는 것일까. 왜 아빠는 나에게 얌전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것일까. 사람은 다양하고 그만큼 여성들도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것인데 왜 그런 단어가 생겼으며, 나를 검열하게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에게 묻고 싶었고, 화가 났다.

 그 때부터인 것 같다. 많은 것이 불편해졌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불만스러웠고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아빠와 남동생의 모습이 불편했다. 가사부담에 성별의 차이가 많이 사라진 사회라고 하지만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부엌은 우리 엄마의 전유물 같았다. 명절은 더 심했다. 분명 즐거우라고 만들어진 명절일텐데, 명절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명절 이후에는 이혼률이 급증한다. 연휴가 누군가에게는 ‘휴’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불만을 가지게 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중에는 만화 ‘며느라기’를 그린 작가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가 다 할게요! : 며느라기



며느라기 뜻.jpg
▲'며느라기'의 정의


 페이스북 페이지 ‘며느라기’는 가상인물 구영이와 사린이의 결혼 생활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매우 사실적이다. 많은 대화들은 오히려 필요 없다는 듯이 객관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다수이다. 명절 때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위에서 비추어 준다거나 그 모습을 그린 다영이의 작품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드러낸다. 놀랍다고 느낀 점은 사린이의 독백,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대화가 많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들을 정확히 집어낸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사린이의 표정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겪었던 상황들을 그대로 대입시키며 사람들은 알아낸다. 공감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공감되는 상황들이 사린이와 구영이의 결혼 생활로 연출된다는 것이겠다.



묻지 마세요


짜증나 왜 쟤네는 저러고 놀고 있냐.jpg
▲명절 때 나타나는 역할과 자리의 차이
 

 너무 일상적이라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점들이 사린이를 통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예로는 조카를 보러 갔을 때 산모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던 일화가 있다. 친가에서의 며느리는 대부분 이름으로 불리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며느리, 동서, 처제, 누구엄마 등으로 불리면서 정작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이 없어지는 현상을 지적했다.


관습이라는 것, 일상적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무디게 하는지,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페이지 평점은 무려 5점 만점에 4.9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한탄하듯이 늘어놓으며 ‘며느라기’에 대해 리뷰를 남겼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들을 위해 작가님은 번외편을 올린 적이 있었다.


“묻지 마세요”


 며느라기를 보고 “우리 집은 안 이렇지?”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정당화의 수단이다. 정해져 있는 대답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행동들에 위안을 느끼고 연속될 것이라는 하나의 경고로도 작용한다. 정말 그렇지 않다면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겠지만, 이미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그 상황들이, 어떻게 봐도 불합리한 그 상황들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알아주었기를


짜증나.jpg
▲다영이가 그린 설날의 모습


 최근 사회에서는 성평등에 대한 논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불합리함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컨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 때, 며느라기는 남녀 사이의 분쟁을 일으키기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을 적나라하게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만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급하게 개선점을 찾는 모습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일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반감 없이 알아주었으면, 매 년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누군가가 조금 더 즐겁고 편안했으면, 이런 움직임이 며느라기로부터 발생하기를 바란다.

 
[맹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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