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③ -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특유의 솔직함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남자의 일기
글 입력 2017.10.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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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 ③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애가 닳도록 기다렸던 만큼 기뻤던 6월의 어느 날이 기억납니다. 마지막 앨범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사실 기다리면서는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까 시곗바늘을 초 단위로 세게 되더라고요. 6집 앨범의 타이틀곡 <홀로 있는 사람들>은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고,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기분은 더 헛헛했습니다. 방금 발매된 앨범을 들으면서도, 앞으로는, 아마 영영 없을 그들의 음악이 자꾸 그리워졌거든요. 행복한 순간, 그 행복을 오롯이 만끽하는 일이란 사실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가 아닌, 작가 이석원으로서 2015년에 발표했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판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요. 일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기도 하고, 언니네 이발관 은퇴 선언 이후 처음으로 듣는 ‘새로운’ 소식이었기에 반가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꾸준히 사랑받는 글을 쓰는 작가의, 꾸준히 읽어도 좋은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의 스페셜 에디션 리뷰를 여러분들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팬심을 가득 담아 주변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추천했었지만, 사실은 팬심을 빼고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산문집이지만, 읽다 보면 한 편의 소설처럼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운 올림픽’에 참가한 철수라는 캐릭터도 등장하며, 배경이 되었던 카페 중에서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고, 각 장의 이야기는 고샅고샅 이어져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내거든요. 작가의 삶 속에서 소소하지만 묵직했던 기억의 여러 조각을 들려주던 보통의 에세이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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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은 달랐어도, 결국은 사랑이었음을


책은,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는 힘든 관계의 두 남녀를 중점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와 가까워지기 전에, 연락이 올 때까지 먼저 연락해서는 안되고, 말을 놓는 것은 물론 ‘보고 싶다’와 같은 사적인 감정을 표현해서도 안되며, 연인으로 잘 되길 바란다거나 서로의 사생활을 포개는 일은 기대조차 하지 말라는 말이 안되는 규칙부터 설명하거든요. 그리고, 지나치게 불공평한 관계였던 만큼 그 복잡한 시간 속에서 그의 고민과 갈등은 커져갑니다. 만나자는 연락에 ‘밀당’ 따위는 이미 접어둔 지 오래. 언제쯤 연락이 올까- 휴대폰만 붙잡고 있다가, ‘나’라는 사람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불쑥불쑥 화가 나고, 함께 있으면 기쁘다가도, 그녀에 대해 고민하다가 불편한 관계를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가장 미워지기도 해요.
 
더러 누군가는 이 과정이 ‘찌질하다’고 하지만, 저는 필자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됐습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관계의 엄연한 공범’이라고 말하던 저자는 매일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을 곱씹어보며 괴로워해야만 했을 테니까요. 사실 저는 스스로 ‘찌질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모습이 찌질하다기보다 오히려 슬프게 느껴졌어요. 마음에 저울이 달려 있다면 이는 명백하게 ‘김정희’가 아닌 ‘이석원’ 쪽으로 기울어있었겠죠. ‘너 그거 병이지? 너 안 좋아할 것 같은 놈들만 좋아하는 거.’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대사처럼, 사실 서로 같은 감정을 품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자락에 다다라 앞에서는 들을 수 없던 ‘그녀’의 진짜 속마음을 듣는 순간,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하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는 그를 제가 평소에 좋아했기 때문인지, 읽을 때면 늘 저는 ‘그’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게 됐었거든요. 나의 아픔에는 누군가가 함께 위로해주길 바라면서, 타인의 상처에는 손바닥만한 걱정을 하는 저의 어리석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있는 세상 안에서 사랑의 형태가 모두 예쁘기만 할 수는 없고, 이야기의 두 주인공은 모두 결혼생활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30대와 40대입니다. 흔히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열광하는 알콩달콩함이나 풋풋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들의 사랑은 더욱 조심스러우면서도 솔직합니다. 특히 누군가로 인해 날마다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겠죠. 저는 이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듣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공교롭게도 ‘가장 보통의 존재’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사랑의 타이밍은 누구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데, 그 타이밍으로 고통받는 건 순전히 당사자들이라는 점이 새삼 잔인하게 다가왔습니다.
 
스페셜 에디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책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둘의 뒷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이석원’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김정희’가 나올 정도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결말이기도 하겠지요. 사실 이야기의 모든 끝을 알게 되면 오히려 독이 되어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독자의 감정을 헤아리는 글을 쓰시는 분인 만큼 기존의 결말과 마찬가지로 은은한 여운을 주며 끝이 납니다. 작가의 말을 다 읽고 나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쉽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어요.

 
 
# 이석원이 전하는 지혜


출판사 측에서도 ‘필사하며 읽고 싶은 책’으로 소개할 만큼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명문장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분의 음악을 들으면서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까’ 감탄했던 적이 많았는데, 새삼 글을 읽으면서도 ‘헝클어진 생각들을 어떻게 이렇게 딱 꼬집어 표현할까-’ 싶은 예쁜 글귀들로 눈이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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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好: 소설을 읽을 때 뚜렷한 이야기나 재미 없어도 글이, 즉 문체가 마음에 들면 몇 날 며칠이고 읽어 내려갈 수 있듯, 누군가의 목소리나 말투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별나게 재미있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비슷한 이치이다. 이미 내용과는 상관없는 단계로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목소리와 말투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잘 지내. 나도 너랑 영화볼 때가 제일 재밌었어.

- 나는 어쩔 수 없는 관계의 열등생. 늘 틀리면서도 매번 같은 답을 적는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 쓰여 있던 푸른색의 글은 짧았지만, 반복해서 읽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관계에 대한, 사랑에 대한,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며 무거운 세상에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나’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많이 공감됐어요. 읽는 재미는 물론, 책을 한 뼘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적인 글귀였습니다.

 

    

결국, 그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크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인사치레로 건네기도 하는 ‘뭐해요?’였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그 말은 억누르다 못해 살풋 삐져나온 감정을 드러내는 나름대로의 표현이었겠고요. 사실 흔하게만 생각했던 말이었는데, 다시 누군가 저에게 그렇게 안부를 물어준다면 새삼 고마울 것 같아요:) 여러분들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무엇인가요? 담담한 목소리로 늘 같은 자리에서 위로해주던 이발소처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제게 언제 읽어도 좋을 이야기로 또 한 번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가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솔직한 이야기는 실제로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석원이 새로운 책을 집필 중임을 밝힌 만큼, 앞으로 작가로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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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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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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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
    • 안녕하세요, 11기 에디터 염승희입니다! 예진님의 솔직한 감성이 잘 배어나오는 글이였습니다. 소리내면서 한 줄 한 줄 읽어보았는데, 문장을 마음에 와닿게 참 잘 쓰시더라구요. 그리고 책이 다뤘던, 관계에 있어서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지만 이를 섣불리 내칠 수 없는 그런 복잡한 감정에 십분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읽는데 더욱 집중하게 되었어요. 또 사랑은 타이밍이 결정적인데, 그 타이밍은 개인이 관여하기가 참 어려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타이밍으로 인한 아픔은 고스란히 본인이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남네요. 저도 참 잔인한 사랑의 성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진님의 애정이 듬뿍 느껴져서 읽는 내내 포근했던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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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매나무
    • 안녕하세요 두레 참가 중인 김소원입니다. 글에서 이석원씨에 대한 예진님의 애정이 뚝뚝 묻어나네요:) 책에 대한 설명과 인용의 비율이 적절해서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석원씨의 산문집이 유명한 건 알았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는데 소개해 주신 몇몇 구절이 익숙해서 신기했어요. 아마 유명한만큼 여기 저기서 많이 인용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산문집인데 한 편의 소설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글을 다 읽고 나니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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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앤
    • 안녕하세요! 두레참가자인 류다연입니다. 예진님의 진심이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 우선 저는 책을 읽을때 후루룩 읽기보다는 중간중간 멈춰놓고 생각하며 읽는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좋아하는 책일 경우에는 더 그래요. 예진님의 글을 읽으면서 왠지 이책도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는 글 일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들어도 좋은말'은 읽어본 적 없는 이야기이지만 예진님의 설명과 진심어린 공감이 담겨있는 글을 읽고 이석원님께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좋은 책과 작가를 알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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