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공간사옥 답사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7.10.2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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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공간사옥에 입수하다

 과거를 회상할 때면 강이나 바다, 어디든 간에 물에 대한 기억이 가장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이유는 몸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에 들어간 순간 피부로 느껴지는 압력과 온도, 비릿하거나 시원한 냄새, 귀로 전해지는 울림은 물론 혀끝에 느껴지는 맛까지 어느 하나도 인상적이지 않은 자극이 없다. 그리고 어떤 공간들 역시, 마치 물에 들어간 것처럼 오감을 자극한다. 이것이 공간사옥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다. 2014년부터 이곳은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으나, 원래는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1977년 완공될 당시 건축사무소 건물이었다. 이후 장세양, 이상림이 추가로 건축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으며, 한국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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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quane.tistory.com



자연조명과 인공조명이 만드는 빛의 효과

 공간사옥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오래된 느낌의 벽돌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주황색 빛의 벽등이었다. 이 조명으로 인해 어둡고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계단 전체에서 따뜻하고 친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며 너무 밝지도 않았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는 데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또한 구사옥 공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전시중인 작품을 위해 사용한 조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공조명에는 차가운 색상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공간의 크기에 비해 그 수도 매우 적었다. 이와 같이 인공조명의 수와 빛 자체의 인공적 느낌을 최소화한 것에 비해 공간사옥은 창을 많이 달아 자연조명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한쪽 벽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크기가 큰 창부터 일반적인 창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창까지 다양한 크기의 창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그 모양과 투명도 역시 매우 다양했으며 건물 안이나 밖에서 볼 때 모두 잘 어울리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공간사옥 내부에는 지상 5층에서부터 그 아랫층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 공간의 천장에 9개의 큰 정사각형 창이 배치되어 따스한 햇빛이 창의 모양을 따라 아래로 쭉 떨어진다. 이는 여러 층을 동시에 밝히면서 조형적으로도 독특한 미감을 제공한다. 또한 어떤 부분들은 바깥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감상하기 위한 것으로 느껴지는데, 특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작은 창문들은 시간에 따라 기울어지는 담쟁이 잎의 그림자와 해가 질 즈음의 진한 빛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다.



재미가 있는 동선과 구조

 답사를 진행하면서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동선이었다. 다행히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플로어 가이드나 안내 표시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건물의 어느 곳에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복도가 거의 없고 제각기 다른 크기의 방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층을 나누는 방식이 일반적인 건물과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실제로 녹음 기록을 하면서 ‘반 층 올라간다’는 표현을 자주 했는데, 이후 조사해보니 이를 스킵 플로어(skip floor)  라고 하며 공간사옥의 주요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계단으로 이동을 할 때에도 위아래 층을 모두 접할 수 있어 폐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또한 건물 안에 다양한 도형이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선형의 계단이나 삼각형, 반육각형의 창문이 있다는 점 외에도 동선이 ㄹ자 모양을 그리며 이동한다거나, 한 부분에서 아치형으로 된 구조가 반복되는 등 재미있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정 요소들은 획일적이지 않은 형태를 보여주면서 약간의 긴장을 주는데, 이것 역시 공간을 체험하는 데에 재미를 줌으로써 지루함을 없애고 있다. 예를 들어 삼각형을 그리며 돌아 올라가는 계단은 윗부분으로 가면 폭이 매우 좁아지면서, 혼자서 계단을 오르기에도 압박감이 느껴지고 높은 층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또한 어느 부분에서는 모든 방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기에 성인 남성은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낮은 천장을 지나 갑자기 매우 거대한 공간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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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hdk_space
 


재료의 질감을 이용한 촉각적 자극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ma)의 저서 <건축과 감각>의 원제는 < The eyes of the skin >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르고스(Argos)는 피부에 100개의 눈이 달린 거인으로 그 수많은 눈을 통해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우리의 피부에도 수많은 눈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촉각이다. 답사를 하면서 나는 바닥면의 까칠함과 매끈함에 집중하고, 벽을 손으로 쓸어보고, 공기의 온도와 습도 차이에 주목하려 노력했다. 구사옥의 벽돌은 보통의 벽돌과 달랐다. 잘 뽑아낸 새것 같은 벽돌이 아닌, 오래되어 닳은 벽돌을 쌓아올린 듯해 부드럽고 고운 흙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전체 벽의 3분의 1 이상이 한지 같은 재질의 벽지로 덮어져 있다는 것 역시 자연스럽고 안정감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창틀이나 선반같이 손이 자주 가는 부분에는 나무를 주로 사용하였다는 점도 매우 인상깊었다. 또 벽돌, 한지, 나무뿐만 아니라 철과 유리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다른 재료들과의 조화를 맞추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한가지 인상깊은 요소는 구사옥 전체를 감싸고 있는 담쟁이 덩굴이다. 단순히 외벽의 딱딱한 느낌을 담쟁이가 바꾸어 놓은 것을 넘어, 창문 너머로 바깥 풍경을 볼 때 담쟁이 덩굴은 다른 재료들과 결합하여 공감각적인 미적 만족감을 준다. 나무 창틀에 몸을 걸치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담쟁이와 함께 바깥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면, 포근한 공기가 나를 둘러싸는 느낌과 함께 가을 냄새가 코에 맡아지는 듯 하기도 한다.



나가며 - 세 개의 시간이 어울리는 장소, 공간사옥

 공간사옥과 그 주변에는 다양한 시간이 존재한다. 이것은 구사옥과 신사옥, 그 사이에 있는 (현재는 새로 지어진) 한옥으로 구분지을 수도 있으며, 건축사무소 공간과 아라리오 뮤지엄의 시간으로 나눌 수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북촌과 경복궁, 창경궁에 관련지어 볼 수도 있다. 어떠한 방식이든지,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동떨어진 하나의 시간만을 보여주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공간사옥의 과거와 현재는 가지런히 쌓아 올린 벽돌처럼 뒤섞이지 않고 각자의 고유한 성질을 지키고 있고, 이 공간에 몸을 담금으로서 우리는 그 독특한 시간적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은 감각을 자극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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