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다시 알기

'백석우화'를 보고
글 입력 2017.10.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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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은 필자의 이상형이었다. ‘100억이 그의 시 한줄만 못해’라는 자야의 말 때문이었는데, 모던보이 백석은 학창시절에도,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언제나 관심 인물이었다. 이번 연극이 필자에게 가지는 의의는 이렇다. 전공보다도 더 백석이라는 인물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한편의 연극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느낀 점을, ‘현대연극과 퍼포먼스’라는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연극에 대한 조그마한 지식을 토대로 분석해본 것과 함께 적어보려 한다. 또한 아래 소주제는 필자가 연극을 본 후 그 의미와 의의를 많이 생각해 본 것들로 이루어 봤음을 미리 알려둔다.


무대

 무대는 특이했다. 연극무대는 함께 간 사람에게 ‘이 무대는 무엇이다’라고 말해주고부터 아는 척할 생각이었던 필자에게 큰 당황을 안겨주었을 만큼, 도통 무엇인지 모를 그런 무대였다. ‘대체 이 무대는 무엇인가.’ 내린 결론은 원형무대의 변형무대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무대는 관객들과 연기자가 더 친밀감을 가지고, 가깝게 느끼게 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대형식이 작품의 특징과 잘 맞아떨어졌는가는 의문이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정말 ‘극’처럼 연출되었다. 연극 특유의 과장된 연기와, 창소리 등 다양한 퍼포먼스는 ‘놀이패’를 연상시켰다. 배우들이 ‘저는 지금 연극을 하는 중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어색하고 과장된 연기는 필자에게, 끊임없이 무대와의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한 극적이고 과장된 연기를 차라리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했다면. 놀이패같은 연기가 ‘신비감’, ‘환상’이라는 요소를 얻었다면. 그랬다면 더욱 시너지를 얻어 작품이 더 빛나보이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명의 고수

 연극은 판소리로 막을 열었다. 여타 판소리와 달랐고, 재미있게 다가온 것은 고수가 여러 명이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앞에서 시를 노래하면 여러 배우가 뒤에서 웃고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고 호응을 유도했다. 이런 연기는 관객들에게 ‘여기에선 이렇게 반응하세요.’ 혹은 '여기는 웃긴 부분이니, 시를 이런 쪽으로 이해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이, 배우가 웃으면 함께 웃고 추임새를 넣으면 ‘신명나는 부분인가보다’하고 수동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시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연출자가 일부러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라는 것이 원래 한 방향으로 이해되기 힘들고, 연극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이해의 방향성이 있어야 하기에 배우들의 반응을 통해서 그것을 시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음 장면에서 창자가 작품설명을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여러 작가들의 출연 장면

 가장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당대 여러 작가들과 비평가들이 책상에 함께 모여앉아 백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스크린에 그들의 사진을 띄운 장면이었다. 이 장면의 효과는 두 가지였다고 생각한다. 먼저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가 아는 인물을 찾아가며 보게 만들어 흥미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임화 등 아는 작가들이 나오는 게 반갑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옛날에 유명했던, 대단한 작가들의 백석에 대한 대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는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이러한 장면은 백석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미리, 백석이라는 시인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알리고, 또한 백석이 연출자 자신에게만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당대에도 공공연히 인정받았던 인물이다라고 ‘백석의 위치’를 알리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야와 백석의 만남 장면

 백석우화는 놀이패적 모습뿐만 아니라 영화 같은 모습도 있었는데, 그것은 초반에 제시된, 모든 배우들이 스크린을 쳐다보고 앉은 장면 때문일 것이다. 가장 ‘영화’같은 연출은 자야와 백석의 만남 장면에서 나타났다.
 필자를 포함하여, 백석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는 내용이 자야와의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의 첫 만남 장면의 연출은 특별할 밖에 없는 이유다. 이 장면에서 백석과 김영한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술을 마시던 모습, 술을 따르던 모습 그대로 멈추어있었다. 관객들의 시선은 유일하게 움직이는 백석과 자야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행동과 생각은 주변의 한 인물이 내래이션을 하는 식으로 설명되었다. 


어린이 동시 장면

 가장 비현실적이고, 재미있던 부분이 아닌가한다. 연극을 보고 난 후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이었는데, 사슴과 기린에 대한 시가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되고 연기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필자는 백석 자신이, 자신의 시가 이런 식으로 구현되는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하는 생각도 했다.
 가장 큰 의의는, 무대의 특징을 가장 잘 활용한 장면이라는 점일 것이다. 기린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는, 진짜 기린이 관객석을 휘젓는 듯 했다. 사슴이 책상 위를 올라가 저 먼곳을 바라보았을 땐 어땠는가. 연극에서 보였던 전반적인 높이와는 사뭇 다른, 높은 높이감에 그 위용이 돋보였다. 관객과 소통의 용이함을 특징으로 하는 무대형식을 잘 활용하여,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는 듯 가슴이 뛰고 웅장함까지 느껴졌던 장면이었다.


삐에로 분장

 백석이 왜, 후반에 삐에로로 분장한 건지 많이 고민해보았다. 그 결과, 삐에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있다는 특징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백석은 북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사상, 정책에 대한 찬양으로 점철된 글만을 적어야했다. 연출가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백석과 삐에로를 같은 존재로 본 것은 아닐까. 처음에 배우가 파격적인 분장을 하고 나왔을 땐 충격이었지만,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고 백석의 처지를 더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두 번의 인사

 필자가 가장 오랜 시간 생각한 것은 마지막의 인사 장면이었다. ‘왜 두 번이나 인사를 했을까?’하는 게 나와, 함께 간 사람과의 고민거리였다. 결론은, 한번은 등장인물로서 한번은 배우 본인의 모습으로서 인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아니라면 인사가, 한번은 아쉬웠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인사를 두 번이나 받으며 연극과 작별을 고해야할 만큼, 연극에 깊이 빠져있었던 것 같다. 앞에서 생생하게 백석으로서 눈물 흘리는 배우와, 그만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백석 시인과, 꼭 두 번의 인사를 해야 했다. 연극을 다 보고 난 후에는, 백석이라는 모던보이의, 고통 받은 북한 예술가의 삶을 몰래 훔쳐보고 온 듯한 기분이었다. 감히 말하는 것은, 마지막 노인 백석과 그의 가족들의 낡은 사진은 전율이 일 정도로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언제 33편의 시를 다 듣나’라는 한탄으로 시작한 ‘백석우화’는 필자에게, 주변인에게 모두 추천을 해주고, 빨리 연극이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기전에 그의 인생을 보고오라고 충고하고 싶을 만큼, 가치 있는 연극으로 남은 것 같다. 
 뭐하는가, 어서 예매하라.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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