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을 사랑했던 왕의 숙원 : 〈王 이 사랑한 보물〉 展 [전시]

무엇 하나도 반짝이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없는 아우구스투스 왕의 예술품 130점
글 입력 2017.10.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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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도시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가 위치하고, 엘베강이 흐르는 독일의 작센(Saxony) 주. 한때는 제후가 통치하는 공국이기도 했지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이용당하거나 분열당하기도 했던 이 곳.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쳤던 작센이 현재 독일의 문화예술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강건왕 아우구스투스(Augustus II the Strong)의 공이 크다. 황제 산하에서 작은 공국을 다스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스스로 폴란드의 왕이 되어 야망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의 야망은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드높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폴란드의 왕’이라는 명분을 얻은 이후, 예술품을 마음껏 사들이고 장인들로 하여금 아름답고 화려한 작품들을 만들게 하면서 보물 수집에 박차를 가한다. 실로 그 안목만큼은 뛰어난 것이어서 현재 그의 소장품들은 레지덴츠 궁, 츠빙거 궁 등 드레스덴의 궁전들에서 전 세계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 하나도 반짝이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없는 아우구스투스 왕의 예술품 13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의 『王 이 사랑한 보물』 展에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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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연합체이자 왕가의 수집품을 전시하며 궁정의 역사와 함께해온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과 함께 개최하는 특별전이다보니, 여러 개의 테마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소개로 꾸민 1부, 예술품의 재료 별로 구분해놓은 2부-보물의 방, 왕이 사들인 중국과 일본 자기, 그리고 이들을 따라잡고자 했던 왕의 노력이 깃든 마이센 자기를 감상할 수 있는 3부-자기의 방으로 전시가 구성되어있다.
 

 
1부 -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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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흉상
 

  아우구스투스가 일궈낸 업적과 수집한 예술품들은 과시적 욕망의 산물이었다. ‘태양왕’ 루이 14세를 동경했던 아우구스투스는 가면무도회에서 태양신으로 분장하기도 하고, 로마 황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 절대적 권력을 지닌 군주로서 군림하고 싶은 욕망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었다. 흉상에 표현된 왕의 굳건하게 닫힌 입, 근엄하게 찌푸린 눈썹은 자연스럽게 로마조각에 묘사된 황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고, 금과 자개로 둘러싸인 그의 사냥용 도구는 자신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을 왕의 사치스러움이 잘 드러났다. 큼지막한 사냥용 칼의 손잡이는 그리스 신화의 목신 판(Pan)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칼은 실용성이라곤 하나 없었을 테니, 왕이 얼마나 미美를 뽐내는 데 열중했는지 어렴풋이 느껴지게 했다. 이처럼 직접 사용하는 물건들에도 귀한 재료들을 박아넣고 여러 신화들을 빼곡히 조각한 것으로 보아, 아우구스투스는 위엄있는 왕이자 사치스러운 왕이었고, 사치스러운 왕이자 빼어난 예술품을 고르는 안목이 있었던 왕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작은 공국의 제후에서, 비로소 폴란드 왕이 되어 마음놓고 예술 덕질을 할 수 있게 된 ‘성공한 덕후’였던 것이다.
 

 
2부 - 보물의 방


  대부분의 덕후는 자신의 덕질 대상을 타인에게 영업하고 싶기 마련이다. 아우구스투스는 1729년, 마침내 자신의 보물창고를 전시공간으로 개방한 ‘그린볼트Green Vault’를 완성한다. 그의 바람에 따라 청동, 상아, 도금은 등 재료를 통해 작품을 구분하여 각각 다른 방에 전시하였는데, 이 방법은 당시로서 매우 혁신적이었다고 한다. 하물며 이 중 일부를 대중들에게 공개하기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그가 자신의 컬렉션을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겨 했는지를 알 수 있다! 『王 이 사랑한 보물』 展의 2부- 보물의 방은 상아의 방과 청동의 방, 은의 방과 도금은의 방, 금은보화의 방과 보석의 방 총 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또한 드레스덴 궁전의 건축을 재현한 초고화질 사진 구조물이 전시장 곳곳에 펼쳐져 있어, 실제 보물의 방의 화려함을 맛볼 수 있도록 하였다.
 
 
I. 상아의 방과 청동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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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병들의 전투 장면이 조각된 뚜껑이 있는 맥주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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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을 떠받치고 있는 포세이돈'의 사진 하단 부분


  상아는 겉보기에 석고나 대리석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특유의 노란 빛깔이 돌고, 세공할 때 고도의 주의력을 요해서 많은 예술가들이 귀히 여겼던 재료이다. 특히 물레를 이용해 상아를 돌려 세공하는‘터닝 기법’은 당대 왕실의 후계자들이 배워야했던 기술이었기에, 여러 선제후들이 직접 제작한 상아 공예품들도 현재 그린볼트에 남아있다. 이렇듯 다루기 까다로운 상아를 재료로 한 작품은 최고의 사치품이었을 게 분명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상아를 가져다 맥주잔으로 만들었는데―진짜로 술을 마셨는지는 모르지만―이 맥주잔은 본래의 용도보다 작품으로서의 기능을 더 충실히 했을 것이다. 엄청난 크기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맥주잔 외에도, 상아의 방 한구석의 ‘군함을 떠받치고 있는 포세이돈’의 고화질 사진은 그 디테일로써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물결치는 말의 머리카락, 포세이돈의 신체묘사, 매우 얇게 조각해 낸 배의 돛이 경탄을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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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으로 만들어진 위의 기마상은 아우구스투스 왕이 동경했던 루이 14세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바로크식 가발을 쓰고 로마 황제의 복식을 갖춘 것은 바로크 시대에 절대적인 황권을 제고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아우구스투스가 루이 14세를 동경하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계속해서 작품에 담아낸 것 또한 그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야망이 투영된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왕은 드레스덴 궁전 앞 광장에 이 모습을 본따 자신의 청동 기마상을 세우기에 이른다. 훨씬 더 크고, 장엄하게.
 
 
II. 은의 방과 도금은의 방

  바닥과 벽에 진열된 식기만 해도 그 무게가 1톤에 달했다던 은의 방은, 현재는 그 중 단 3점만이 남아있다. 아우구스투스 왕 사후 발발한 7년 전쟁에서 극심한 재정난으로 인해 식기들을 모두 녹여 화폐로 주조한 것이다. 최후의 세 작품 중 하나인 《아테나》 상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나머지 두 작품도 제우스와 아테나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당시 귀족들에게 그리스·로마의 신을 주제로 한 예술품들은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대형 은 조각상은 재료도 재료이지만, 제작하는 데도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자세로 절제된 우아함과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한 《아테나》 상은, 창이 들려있지 않아도 그 고귀함을 진열장 너머로 뿜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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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조 형상의 타조알 술잔


  녹색의 진열대와 도금은 작품들의 합이 참 좋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도금은의 방은 녹색 패널과 거울들로 꾸며졌다고 한다. 체인으로 장식한 병이나 타조알을 이용해 만든 독특한 술잔들, 정교한 무늬를 새긴 여러 식기들은 조명과 초록색 바닥 빛으로 더 고급스러운 자태를 보여준다.
 
 
III. 금은보화의 방과 보석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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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의 방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곳일 듯하다. 앞서 언급했듯 보물창고로서 르네상스 시기부터 존재해온 방을 아우구스투스 왕이 현재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완성하였다. 크리스탈, 마노, 루비로 화려하게 장식한 보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중간중간 마치 심장의 형태와도 같은 붉은색 작품이 있었다. 수정과 상아와 같이 파손되기 쉬운 작품을 위해 꼭 맞게 제작한 가죽 케이스였다. 보물을 담기 위해 부드러운 벨벳을 깔고 겉에도 장식을 더한 케이스 또한 보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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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보석의 방을 재현해 놓은 전시장 내부의 디스플레이


  아우구스투스가 보석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보석의 방은 그 어떤 방보다도 화려해야 했다. 매우 큰 장식장 안에 보석들을 담고, 방 한가운데는 자신의 모노그램과 훈장을 배치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일부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고화질 사진으로 보석의 방의 정취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제복에 달렸던 다이아몬드 단추를 보며 인생에서 이렇게 큰 다이아를 만날 수 있을까하며 요리조리 관찰하던 중, 뒤에서 보고 있던 관람객이 동행인에게 속삭이는 말이 들렸다. “작고 반짝이는 건 최고야.” 정말 최고였다. 알알이 박힌 다이아몬드 단추들은 너무 반짝반짝하게 빛나서 말 그대로 바라보기도 힘들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3부 - 자기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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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자기 병(좌)과 마이센 복제본(우)


  아우구스투스가 수집한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 그리고 직접 제작하게 한 마이센 자기를 볼 수 있는 ‘자기의 방’은 3면의 벽이 각각 중국, 일본, 마이센 자기로 구성되어 있다. 방 한가운데는 중국 자기와 이를 복제한 마이센 자기가 나란히 놓여있어,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자기 제작 비법을 알아내지 못해 수출로 자기를 사들이고 있었던 아우구스투스는 연금술사를 시켜 유럽 최초로 경질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이것이 바로 현재 ‘마이센 자기’라 불리는 것이다. 일본의 이마리 자기와 중국의 적색 자기를 찬찬히 둘러보니 과연 왕이 왜 그토록 이를 따라잡고 싶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반질반질한 광택이 흐르면서도 안에 입힌 장식들은 정교하고 화려했다. 하지만 마이센 자기의 수준도 점점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어떤 작품에서는 안의 장식들이 번져 복제품이라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 반면, 청의 《포대상》 복제본의 경우 이빨까지 세밀하게 빚어 더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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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이끌었던 로마 제국의 황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실은 지난 학기 외교사 수업에서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교과서에 등장했더라도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패권 경쟁에서 지나가는 말로 잠깐 등장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개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작센만큼은 수업 내내 끊임없이 들었던 지명이다. 이 아름다운 곳이 세계대전의 폭격에서도 다시 복원되고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수많은 마스터피스들 때문이리라.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고 명성을 널리 떨치고 싶었던 아우구스투스 왕의 의지가 계속해서 살아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센 자기를 청나라 황제 앞에서 내보이고 싶어했던 그의 염원은 당시에 이루어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많은 세월이 흘러 그 뛰어난 안목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청나라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전해진 것을 보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완결된 구성을 보여주고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던 『王 이 사랑한 보물』 展으로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한 왕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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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품 샵에서 구입한 파일 홀더와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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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전시장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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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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