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국립중앙박물관)

권력 욕망, 바로크를 빚어낸 조형의지
글 입력 2017.10.3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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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왕가의 사치품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로 치달은 화려함과 세밀함을 보여준다. 고밀도의 상아를 한겹 한겹 벗겨내 만든 기마상의 역동하는 근육과 갈기, 공간을 유영하듯 넘실거리는 왕의 가발과 옷자락을 보노라면, 이토록 정교함의 정점까지 치닫게 부추기는 조형의지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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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 속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한 지배권력은 정신과 삶을 지배하며 불멸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곤 했다. 괴테가 찬양한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대성당이나 상아로 만든 기마상이나 권력의 주체가 다를 뿐, ‘권력에서 출발한 조형의지’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은 주체를 갈아타며 예술가의 혼을 지배했다. 그 권력이 예술가 자신의 온전한 조형의지와 동의어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150~200년쯤 되리라.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아방가르드들의 조형의지도 개별 예술가의 정신, 그 순수한 심연에서만 온전히 길어 올린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모든 예술가는 시대정신과 통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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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왕이 사랑한 보물> 展은 18세기 초 원숙기에 접어든 바로크 양식의 웅장함과 화려함, 그 절정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작센의 선제후이면서, 걷잡을 수 없는 권력 의지를 토대로 카톨릭으로 개종까지하며 폴란드의 왕을 겸직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컬렉션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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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 청동, 은, 도금은, 보석, 도자기 등 작품의 재료를 기준으로 세션이 분할되어 있기에 소재의 다채롭고 창의적인 활용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당대는 제국주의의 싹이 점차 푸른 빛으로 여물어 가던 시기였다. 공시적으로 가로지르는 권력욕망은 기독교 세계 마저 좁게 느껴져 아프리카, 동방, 아메리카 등 미지의 대륙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고, 기술의 발달은 교역(또는 수탈)의 증가로 이어져 이국적인 산물들에 대한 탐욕을 부추겼다.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조형의지를 촉발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상아 및 코뿔소 뿔 조각, 산호 장식, 자기 등은 이국적인 재료와 예술품이 어떻게 새로운 조형의지를 창출하고 기존 전통 예술과 접붙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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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은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관 내 특별전시실, 둘 중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중요한 전시일수록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특별전시실에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그 공간이 시사하듯 그리 많은 작품이 출품되지는 않았다. 주최 측은 특수한 기술을 적용하여 선명하게 확대한 소장품 사진들을 벽의 전면에 내걸고 당당한 공식 출품작으로서 헤아리고 있는데, 그 사진의 선명도와 크기가 제 아무리 압도적이고 뛰어나다 한들, 실물이 주는 감동에 비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려한 금은보화로 치장된 사치스러운 장난감과 범선 모양의 상아 조각을 사진으로 감상하다보면, 주최 측이 의도했던 감동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왜 이런 하이라이트급 작품은 오지 않았는가’라는 배신감이 더 크게 또아리를 튼다. 텍스트가 유달리 많다는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인데, 이것 또한 작품 수가 적음을 의식한 주최 측 양심의 발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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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품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관람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정교하게 세공된 문양과 장식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장인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다보면 시간은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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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중국의 도자기를 탐한 왕이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한 마이센 도자기를 집중 조명한 것은 신선한 기획이었다. 유럽의 시각에서는 경이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던 동양의 도자기들을 본 뜨고, 자신들의 것으로 재창조하려는 노력들이 영상과 실제 작품들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아시아의 원조와 마이센의 복제 도자기가 나란히 전시되어 복제로부터 새로운 창조로 이행된 과정이 나타났다. 이 대목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에 왜(일본)로 끌려가 강제로 도자기 기술을 전파해야 했던 조선의 도예 장인들이 이 찬란한 문화예술사의 흔적 속에 이름 한 자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상기되며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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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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