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연극 vs. 영화

글 입력 2017.11.01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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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대학로에서 관람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연극에서 필자는 사랑의 성장통을 목격했다. 그리고 원작이 궁금해서 찾아본 영화에서는 깊은 여운을 느꼈다. 같은 작품을 기반으로 만든 창작물이지만 서로 사뭇 다른 분위기, 흐름이 있었고 두 작품 간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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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벨라뮤즈(주)


 영화를 연극화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정적인 물리적 공간과 더불어 시간 흐름의 제약도 있을 수 있다. 영화를 연극화한 대표적인 공연에는 ‘엠버터플라이’가 있는데 이 공연은 영화보다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무대도 살리고 감정도 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연극 같은 경우 영화를 보기 전에 보았으나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연극이 최대한 원작을 따라가면서 한국적인 요소도 넣으려고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와 연극 속 주인공들

 연극 속이나 영화 속이나 남자주인공인 츠네오는 나에게 별로 좋은 남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늦게까지 알바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여자와의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뽀뽀도 하고, 손도 잡는데 애인사이는 아니다. 남에게 주기는 아깝지만 내가 사귀기는 싫다. 이런 태도들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츠네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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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벨라뮤즈(주)_ 연극 속 츠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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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츠네오


 연극에서는 츠네오만 바라보며 혈혈단신으로 일본에서 버티는 한국인 유학생 윤이 있었다. 그녀는 츠네오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츠네오를 자신의 애인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조제에게 뺏기게 되는 안타까운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신분은 등장하지 않지만 윤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 카나에가 나온다. 여기서 필자는 연극이 한국과의 연관성을 위해 한국인 신분의 역할을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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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벨라뮤즈(주)


 또한 연극에서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두 인물이 등장한다. 윤을 짝사랑하는 유명 야구선수 사이토와 윤과 사이토, 츠네오의 선배인 권진우가 있다. 연극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들은 조제와 츠네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갈등구조를 보여주었다. 영화에서도 츠네오의 친구들과 후배들이 등장하지만 별 큰 역할을 맡지는 않았다. 그러나 카나이 하루키라는 인물은 얼마 나오지 않지만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는데 이는 츠네오와 조제가 카나이 하루키가 버린 교과서를 같이 읽다가 서로의 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후에 카나이 하루키는 츠네오와 조제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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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_사이토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연극의 재미를 위해 1인 2역으로 배정된 배우도 있었다. 바로 조제의 할머니 역할과 조제의 남동생 역할이다. 영화에서는 남동생이 아닌 보호시설에서 같이 있다 함께 달아난 폭력적인 토모코가 나오지만 연극에서는 혈연으로 이어진 야쿠자 남동생이 등장한다. 둘의 공통점은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 박식하지만 조금은 현실성 떨어지는 조제의 세상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연극에서 또 재미있게 만든 부분은 할머니/토모코 역할을 더블캐스팅했는데 한 분은 남자배우이고 또 한 분은 여자배우였다는 점이다. 남자배우가 할머니역할을 하는 모습, 여자배우가 야쿠자역할을 하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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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벨라뮤즈(주)_1인 2역을 맡은 배우 김아영


 연극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래도 꽤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조제의 이웃인 어린 자매이다. 자매가 나오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영화 후반부에 조제에게 왜 츠네오가 손봐준 유모차를 버리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이는 조제가 곧 츠네오와 이별할 것 같다는 조짐을 주면서 조제가 점점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매는 츠네오와 조제의 사랑의 시작부터 끝을 담담히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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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명대사를 연극에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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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조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사강의 ‘1년 후’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연극에서 그리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조제가 말했다’ 이후의 내용은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다 마지막에서 그 이후 조제가 말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파트가 바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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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눈 감아봐. 뭐가 보여?
츠네오: 그냥 깜깜하기만 해.
조제: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츠네오: 그랬구나, 조제는 바다 밑에서 살았구나.
조제: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야.
츠네오: 외로웠겠다.
조제: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조제와 츠네오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에서 나온 대사들이다. 조제의 대사는 츠네오에 대한 사랑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별의 암시를 나지막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조제는 츠네오 덕분에 세상을 알게 되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츠네오가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지 않을 거라고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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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 내레이션)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아니,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헤어지고 친구로 남기도 하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츠네오의 솔직하고 마음 아픈 독백이다. 영화 속 츠네오 내레이션은 명장면으로도 유명하다. 길을 가다 오열하는 츠네오, 그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와 울음을 막을 수 없는 츠네오의 모습. 도망쳤다고 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랑의 성장통을 겪은 츠네오는 가볍게 만나는 사이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만약 조제가 장애가 없었더라면, 이 둘은 계속 만날 수 있었을까? 아니, 만나기는 했을까?



# 연극에서 보여준 흐름, 영화에서 보여준 흐름
 
 연극에서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도 등장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영화의 물리적, 시간적 공간 제한을 뛰어넘기 위해 빔을 활용하기도 했고 물고기들이 떠다니는 조명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관객들은 연극에서 ‘재미’ 요소를 찾는 경우가 많기에 야구선수인 사이토가 관객들에게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으며 남장한 토모코의 코믹 장면도 간간히 넣기도 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의 흐름이 조금 빨랐던 점이다. 물론 100분이라는 시간 안에 2시간이나 되는 영화 내용을 모두 넣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츠네오와 조제가 급 호감을 느끼고 사귀는 장면과 힘든 것 없이 잘 지내던 이 둘의 사이가 갑작스럽게 틀어진 장면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처럼 보였다. 또한 한국인 유학생 윤을 넣어 한국과 연관성을 만들었으나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복지제도의 모습, 원작 배경에 충실한 모습을 보고 조금 창의적으로 우리나라 배경으로 해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살짝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연극 자체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영화는 연극에 비해 공간과 시간 활용이 자유롭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둘이 가까워지고 멀어지고를 볼 수 있었다. 특히 그 둘이 헤어진 장면에서는 고요한 연못에 누가 돌맹이를 하나 던진 것처럼 그 여운이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해서 남았다. 영화와 연극 중 어느 것이 좋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만의 감성이, 연극은 연극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둘다라고 답할 것 같다. 비록 연극은 끝났지만 영화로도 충분히 연극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모두 조제와 츠네오의 잔잔한 사랑이야기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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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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