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 [영화]

글 입력 2017.11.0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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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
사랑


  입 밖으로 내뱉어본다. 혀가 댕그라니 떠 있다가 가라앉는다. 내가 말한 단어가, 내 귀로 들어가 뱅그르르 돌다 고막을 때린다. 벌어졌던 입술도 꾹 다물고 다시 생각해본다. 기표는 기의로 가고 가고 간다. 하지만 결국 다다르지 못하는 단어들이 있다. 사랑이 분명 그 대표일 것이다. 문이 부서지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잠겨있는 곳곳의 문들과 그 안에 가득한 악취들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오래오래 남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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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Amour)'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본 그 집 곳곳이 이 영화 거의 전부의 배경이었다. 여러 대화와 여러 눈빛으로 이루어져있던 그들의 사랑도 결국 하나의 틀에서 이루어졌음을 다시금 느낀다. 영화의 배경이 바뀌는 순간은 딱 한 번, 알렉상드로의 연주회다. 연주회씬에서는, 극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롱쇼트로 잡힌다. 극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같다. 이후 씬들을 통해 그 곳에 안느와 조르주가 앉아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관객-조르주-안느는 더 이상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관조하되, 관조하지 않게 된다. 관객들은(그러니까 우리들은) 마치 관객들 자신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만 같다. 극장에 앉아있는 누군가, 우리는 사랑을 겪고 언젠가는 죽는다. 마치 연주회 좌석 어딘가에 앉아있던 조르주와 안느처럼. 연주회 시퀀스가 굳이 존재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의도가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물론 두 인물이 알렉상드로 연주회 이후로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느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조르주가 장례식장에 다녀왔을 때. 모두 집 밖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담기지 않는다. 다만 상호간의 대화를 통해 어느 곳을 다녀왔으며, 그 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고정된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점차 다른 모양의 사랑을 한다. 조르주는 안느를 사랑하지만 돌보는 것에 지치고, 안느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안느는 주로 침실에, 조르주는 안느가 자는 동안 거실에 있다. 여전히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분리가 뚜렷해져간다. 아마 조르주는 그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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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는 커다란 사건이 없다. 다만 안느가 병에 걸리고, 그 병세에 따라 부부는 -여전히 사랑하지만-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그 변화를 아주 점층적으로 담았다. 하지만 영화는 ‘끊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간 점프가 눈에 보인다. 특히 안느의 병이 악화되는 속도가 매우 그러하다. 초반의 안느는 일시적 마비를 겪는다. 마비를 겪은 후 다음의 등장은 바로 수술 이후 반신 마비의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안느는 자는 동안 실례를 하게 된다. 그 다음부터 안느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상태의 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죽음은, 죽음의 공포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뛰어 넘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젖어가는 부부의 사랑은 더욱 뚜렷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사랑과 죽음을 멀리서 관조하는 우리는 부부의 감정 호소 없이도 서서히 영화에 빠져든다. 악몽처럼, 밀려들어오는 물처럼,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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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처음, 그리고 끝은 너무나 깨끗해서, 나는 감정을 생각이라는 그릇에 담아낼 정신조차 없었다.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구성은 온전히 영화를 보고도 다시,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처음에서 끝으로 가며 비슷한 장면을 반복 제시한다. 반복되는 장면들은 똑같다기보단, 오히려 반대되거나 아주 유사하다.

  소방관들이 문을 따며 들어간 부부의 집은, 방문이 모조리 잠겨있다. 이후 시점은 연주회로 돌아가는데, 집으로 돌아온 롱테이크에서 조르주는 안느의 코트를 받아주고, 조르주는 혼자 코트를 벗고 두 사람은 각자의 장소로 들어간다. 영화가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이 장면을 새롭게 마주한다. 죽은 안느는, 혹은 죽은 안느의 영혼, 어쩌면 조르주가 원하는 안느의 환영은 조르주와 함께 외출을 한다. 여기에서 재밌는 점은 외출하는 중에도 조르주가 안느의 코트를 입는 것을 도와준 후, 혼자 코트를 입고 나간다는 것이다. 그 후, 조르주와 안느의 죽음 이후 그들의 딸 에바가 집을 찾는다. 놀랍게도 에바가 방문한 집의 문들은 모조리 열려있다.

  그 밖에도 영화에는 사소한 복선이나, 전조현상, 시간을 뛰어넘은 재미, 반복되는 느낌이지만 상황이 다른 장면이 곳곳에 깔려있다. 계속 해서 장면이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감독의 의도임을 알게 된다. 계속 반복되고,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들어맞는 것. 그 것은 이 영화의 소재가 사랑,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과 연관 지어진다. 사랑과 죽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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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영화가 다 끝났는데도 안느와 조르주, 서로를 향한 눈빛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사랑이, 계속 내게 머무는 것 같다. 등진채 걷고 있으면 어디선가 졸졸 싱크대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물소리는 찰박찰박 내 발 밑으로 들러 어느새 내 가슴팍까지 차오른다. 잠깐 방심한 틈을 타 죽음이, 혹은 죽음보다 더 질긴 사랑이 내 등 뒤를 덮칠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그 악몽과도 같은 사랑과 그리고 죽음에 옷을 적셔야할 것이다. 조르주와 안느의 사랑이, 내게 그럴 것이라고 미리 가르쳐주고 있다.





포스터 및 스틸컷 _ 네이버 영화 '아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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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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