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레이폴(Pray for)] 1. for Spark [영화]

'주말(Weekend, 2011)'
글 입력 2017.11.0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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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Weekend, 2011)'_앤드류 헤이 作


Spark 1.[명사] 불꽃, 기폭제
           2.[명사] 건강하고 명랑한 남자,
멋진 젊은이
           3.[동사] 구애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나는 그 사람과 대화하면서 느끼곤 한다. 돌아보면 어렴풋이 남아 있는 첫사랑의 기억은 모두 그와 나눈 대화뿐이다. 갓 말리고 와 붕 떠 있는 머리카락을 두고 놀리듯 웃어댔던 어느 주말의 오전과 늦도록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끝내고 주황색 가로등 아래를 두런두런 하잘것없는 말로 채웠던 밤, 그 끝 그의 집 앞 자그마한 다리에서 끊어질 듯 한 시간이 넘게 이어가던 대화가 아직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이제는 시간의 무게를 덧입어 애틋하게 다가오지만 당시에는 설레고 조금은 긴장도 되며, 위태롭기도 했다. 혹시 실수하지는 않을까, 내 말이 거슬리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다음 말을 조심스레 골랐던 마음이 우리의 대화를,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었으리라.

  사랑은 어쩌면 주고받는 대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격정적인 섹스보다는 관계가 끝나고 침대에 누워 맥없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더 이끌릴지 모른다. 인적 없는 골목길에서 거칠게 입술을 맞부딪히는 것보다 고요를 깨뜨리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더 빠르게 사랑을 피워낼지 모른다. 말은 곧 생각을 담아내고 감정을 전달하는 일종의 호소이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는 그의 마음을 한 겹 한 겹 들여다보게 된다. 그토록 농밀하고 내밀한 감정의 교류는 다른 어떠한 것으로도 재현하지 못하고, 도달할 수도 없다. 따라서 대화는 때에 따라 시각적 포르노그래피보다 선정적일 수 있고, 서로에 대한 완전한 탐닉으로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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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명의 남자가 있다. 러셀글렌. 늦은 밤 게이바(Gay Bar)에서 만난 둘은 짐짓 서로의 마음을 떠보다 결국 관계를 가지게 된다. 원 나잇 스탠드(One-night Stand). 당장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행위. 여기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한 번의 만남은 한 번으로 끝낼 것. 번호를 교환하거나 먼저 연락하는 것은 구차하고 지질하게 여겨진다. 쾌락을 위해 조성된 일시적이고 인조적인 시공간, 두 사람이 거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공간이다. 문란하고 도착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행위는 실은 거의 유일한 만남과 교류의 수단일 수 있다.

  하룻밤의 정사와 아침의 커피 한 잔으로 가볍게 끝날 수 있던 이들 관계는 글렌이 녹음기를 꺼내들면서 상황을 달리하게 된다. 그는 러셀에게 섹스의 대가로 어젯밤부터 지금까지의 일, 정확히는 두 사람이 처음 마주쳤을 때의 감정에서 시작해 현재의 기분까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요구한다. 민망히 여겨 거절하던 러셀은 지속되는 주문에 하는 수없이 입을 연다. 클럽에서의 정황, 섹스의 세부적인 과정은 물론 자신한테서 땀 냄새가 날까봐 걱정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까지도. 외설에 가깝도록 은밀한 이야기를 소곤거릴 뿐인데 이 장면은 에로틱하면서도 동시에 낭만적이다. 스쳐가는 감정을 포착함으로써 둘은 일시에 그쳐야 했던 관계를 영구적으로 붙들어 두었다. 그렇게 둘은 서서히 서로에 대한 탐닉으로 잠기어 갔다.

  영화는 함부로 감정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듯 배경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의 대화, 숨결, 주변의 소음에 집중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넓게는 연애에 대한 어떠한 낭만이나 환상을 욱여넣지 않고 일상의 단면을 뚝 잘라내어 편집해 묶어 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인위적이거나 도식적이지 않다. 영화의 톤에 맞추어 차분하고 때론 지나치게 건조한 느낌마저 준다. 이는 영화 군데군데 놓여 있는 스케치에도 이어진다. 거리와 건물을 오래 비추는 카메라에는 한 명의 사람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쓸쓸하고 황량한 영상과 연출은 영화가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영화에서 대화의 주체는 둘로 나뉜다. 글렌과 러셀, 그리고 보통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 글렌과 러셀의 대화가 관계의 기반을 다지는 감정적 성질을 띤다면 후자의 것은 소모적이고 가볍다. 특히 그들에게 동성애자는 흔한 농담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이다. “넌 항상 계집애 같아” 혹은 게이 친구를 두고 비방하는 대사들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이들에게 만연해 있는 만성적 혐오는 글렌과 러셀, 둘의 생활을 본격적으로 침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사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러셀은 집 안에서는 게이인 게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밖에만 나가면 소화불량인 듯 속이 답답하다고 고백한다. 현대 사회에서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침전하고 은닉하는 것이라는 것을 역시 ‘대화’로 풀어내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글렌은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을 ‘게이들의 통과의례’라고 정의한다. 집에서 쫓겨나든, 스스로 집을 나오든, 드물게는 인정 받든 그것은 세상의 폭력을 가늠해보는 첫 시도이자 외침이다. 열여섯 살에 집을 나온 글렌이 고아인 러셀에게 “고아들은 꽤 섹시”하다고 언급하는 장면은 그가 가진 상처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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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어딘가에 비친 모습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울, 창문, 타일 벽 등 둘은 본래의 모습 그 자체만큼 반영으로 보일 때가 많다. 자기 존재 자체보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한 그들, 남들의 기준에 맞추고 스스로를 감추는 사람들. 글렌은 분석하듯 이렇게 말한다.


그건 마치 네가 빈 종이가 되는 것과 같아. 그리고 네가 되고자 하는 것을 그 캔버스 위에 투영시키기 위한 기회가 주어지지.


  이렇듯 존재를 흔드는 외풍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영화는 존재 자체, 관계의 본질에 더 눈길을 준다. 주말이 지나면 글렌은 외국으로 떠나야 했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이틀이라는 시간만이 주어졌다. 이 시간 동안 그들은 세 번 만난다. 처음 돌아가는 길에는 무심했던 글렌이 두 번째 한두 번 러셀의 집을 뒤돌아본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관계는 깊어지고 마음은 두터워진다. 그러나 전 남자친구로 인해 생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글렌의 마음을 자꾸만 닫으려 한다.

  키스할 듯, 팔을 뻗어 포옹할 듯 다가가지만 둘은 쉬이 가까워지지 못한다. 결코 진하게 입술을 맞추지도 몸을 껴안지도 않고 다만 나란히 창가에 선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어깨에 손을 얹는다. 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대화였다. 밤 새워 대화를 나눈다는 것, 하물며 내일이면 떠나는 사람과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 둘은 마침내 완전히 속내를 뒤엎고 몸을 밀착시킨다. 천천히 부드럽게 서로를 애무하고, 관계를 가진다.

  서로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 만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 감정이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 이성적으로 우리는 불가하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며 단정할 수 있다. 순간의 호감을, 스치는 감정을 착각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단순히 서로의 외로움과 욕구가 강한 자석처럼 상대를 끌어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진정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며 우리에게 찾아온 주말을 이대로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순간의 감정을 무시한 채 영원도 함께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강범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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