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이규호 Kyo_mono '여름감기' - 구미공연

'뮤지션이 사랑하는 뮤지션', 이규호(Kyo)가 앓았던 여름
글 입력 2017.11.0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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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다.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던 만큼 모처럼 겨우 시간을 내서 만든 자리였고, 쌓인 할 말 만큼이나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고, 아득한 왁자지껄함 속에서 나는 지금이 쭉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순간을 지내다보면 시간이 지나서도 그 순간을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나.
 
그리고 집에 와서는 뜬금없게도 조금 많이 우울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공기는 유독 적막했고, 몽롱한 와중에도 기억은 더없이 또렷했다. 다음에 또 보자, 의 ‘다음’이 언제부터 당연했던 거라고. 어쨌든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의 길을 걸어가고 있고, 앞으로 그 간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니까, … 왠지 기약 없는 안녕처럼 느껴졌다.
 
‘빛이든 아니든 헤매이다 닿을 수 없는 내 가장자리를 끝도 없이 맴돌아가는 아린 별...’
그리고 틀어놓은 음악만이 방 안을 웽웽 맴돌았다. ‘술취한다’ 라는 다소 직설적인 제목처럼, 호젓하고 희미한 밤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내게 이규호는 늘 이렇다. 위로가 필요할 때면 늘 음악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주는 느낌. 나긋한 목소리는 마음을 일렁이게 만드는 우직한 힘이 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영화가 끝나고 혼자 끝까지 앉아 엔딩 크레딧을 보는 기분’이라고 이야기하던 누군가의 말처럼, 유려한 목소리는 늘 따뜻한 울림을 동반한다.



 

공연장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마음은 이미 달뜬 상태였다. 공연장이었던 '옴스'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오밀조밀하게 예뻤고, 속속이 도착하는 모든 관객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북적거림과 설렘 속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이규호는 관객의 환호와 함께 무대로 등장했다. 천천히 무대를 향해 걸어가던 그의 모습이 왠지 신비로워 보였다.


# 여름감기
 
‘세상이 멍멍 짖어대는 것 같아…’ 모든 관객이 숨을 죽인 가운데, 미공개곡 ‘여름감기’를 첫 곡으로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노래 제목이 이번 공연의 타이틀인 만큼 ‘여름감기를 앓으며 되돌아본 기억을 음악에 담아냈다’는 공연의 의미가 잘 녹아있는 곡이었다.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는 어렴풋한 매미소리와 푸른 녹음, 그리고 그 사이 무력하게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10월 중순에 완전한 여름의 정취를 맡게 해주었다.
 
구미는 첫 방문이라며 수줍은 인사를 건네던 아티스트는, ‘여름감기’라는 공연 타이틀에 걸맞게 감기를 앓으면서 느꼈던 생각을 들려주며 관객과 호흡을 맞췄다. 아파서 누워만 있어야 했던 첫날부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를 지나, 모든 것이 그대로인 세상에 대한 미움을 거쳐, 아프면 빨리 병원을 가야한다는 명백한(!) 결론을 얻었던 열흘째까지. 건강할 때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던 아티스트의 너스레에 모든 관객은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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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이어지는 노래는 ‘시냇물’과 장필순의 ‘맴맴’이었다. 개인적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봤던 ‘시냇물’ 무대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아티스트의 손짓과 표정,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좋았다. 아티스트 특유의 고운 목소리로 완성한 ‘맴맴’ 역시 여름에 들려오는 물소리처럼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나나나, 맴맴, 나나나, 맴맴. 정말이지 더없이 아름다웠다. 한 대의 피아노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음악은 너무나도 깨끗했고, 덩달아 자연스럽게 넋을 놓고 감상했던 것 같다.
 
‘여름감기’ 공연은 발매되지 않은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수의 음악을 이규호만의 느낌으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았다. 박학기의 '여름을 지나는 바람'은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전혀 촌스럽지 않았고, 이승환의 ‘그저 다 안녕’을 들으면서는 ‘이규호가 노래하는 절절한 감정은 이런 것이구나-’ 새삼 깨달았던 것 같다. 여리지만 강한 목소리가 공연장의 모든 공기를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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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만큼 선명했던 음악들은 가슴에 남아
 
평소에 자주 찾아듣던 뮤지션이었지만, 사실 음악과 사진으로만 접한 그에게는 늘 특유의 아우라가 풍기고 있었다. 좋은 사람일 것 같고 친해지고 싶은데, 뭐든 다 잘할 것 같고, 그래서 막상 쉽게 다가가기는 힘든 선배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공연장에서 바라본 이규호는 알고 보면 누구나 그렇듯, 풋풋하고 친근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부끄러워하고, 예쁜 조명에 감탄하기도 하며, 가끔씩은 실수도 하는 모습은 덩달아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물해주었다.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을 ‘사실 자주 뭔가를 깜빡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바로 전날 공연 장소였던 전주에서 카메라를 놓고 왔었고, 사실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그리고 그런 자신을 생각하며 만든 미발표곡 ‘Tarot 10’은 이전의 곡 ‘그저 다 안녕’과 반전되는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음악에 맞춰 하나 둘 박수를 쳤고, 나는 혼자서 통통 튀는 소리를 따라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니 실수할 수도 있지 뭐…’
 
그리고 발랄한 멜로디와 달리, 소용돌이같던 고민을 한 줄로 정리해주는 ‘촌철살인’ 가사는 내 안에 아로새겨졌다.
뭐랄까, 개인적으로는 사실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늘 무거운 걱정부터 앞서던 요즘이었다. 과거의 실수는 끝끝내 오늘날 자책으로까지 이어졌고,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도 두려움이 무의식중에 늘 함께하고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그런 내가 밉고, 멀어 보이기도 하면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잘하기는 쉽지 않고, 결국 나를 책망하게 만드는 것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 누구나 다 실수하고 그런 거지 뭐. 당연한 사실은 망각되기가 쉽다. 웃어넘길 수 있는 실수에도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건 다른 사람도 아닌 나라는 것을, 이규호의 노래로 다시금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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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바랄수록 오히려 멋이 나는 것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음악은 늘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법이다. 트렌디한 대중가요 속에서도 이따금씩 순수하고 앳된 감정이 그리워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겠지. 얼마 전 <팬텀싱어>에서 출연자들이 ‘꽃’을 부르던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시간과는 별개로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구나, 하고.
이규호가 이승환의 ‘세 가지 소원’과 ‘꽃’을 이야기했을 때, 관객들은 환호했다. 물론 나 역시도. 상대방에 대한 오롯한 사랑이 온전하게 느껴져 듣는 내내 왈칵했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규호의 음악은 하얀 도화지 위에 은은한 색깔로 덧칠된 그림 같았다. 게스트 없이 90분을 오로지 피아노와 자신만으로 채웠고, 그럼에도 부족함이라곤 하나 느낄 수 없었다. 가을의 한 중턱에서 모처럼 느껴본 여름 냄새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노래를 부르는 그의 표정과 피아노를 치는 손짓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어 더욱 감회가 달랐던 공연이었다.
 
해는 일찍 달아나고, 온기는 흐릿해지는 계절이다. 상상했던 풍경을 하나씩 실천해나갈 때면 성취감을 느낀다던 그에게 한 달여에 걸친 ‘여름감기’ 공연은 어떤 경험으로 기억될까.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를 가을이 벌써 겨울로 넘어가려 하는 지금, 문득 피아노 하나만으로 꽉 찬 무대를 보여주는 아티스트의 다른 공연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는, 클래식앙상블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이번 ‘Kyo_몰린’ 공연이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0월 22일에 진행된 공연인 만큼 시간이 꽤 흘렀지만, 피아노와 함께 공간을 채우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분간 공연이 아니면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그의 미공개 곡은 자꾸만 그리워진다. 흐릿해지는 기억이 아쉬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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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간
11.10 (금) ~ 11.12 (일)

공연장소
언더스탠드에비뉴

주최
AW엔터테인먼트

예매하기


사진 출처 _ AW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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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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