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공간09. 빛이 안내하는 고궁

글 입력 2017.11.1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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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안내하는 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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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에 닿는 것들 중에서 그림자가 없는 존재가 있을까, 생각해 본 적 있다. 그런 실없는 감상을 붙들고 종이 위에 시 비슷한 것을 끄적거리다 보니 어떤 문장들이 놓여있었다.


빛에도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면


  진지한 시적 사유들로 뻗어나가지는 못했던 문장이다. 이 정도에서 그쳐버린 생각이지만 어찌됐든 나는 내 발상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림자로 분열되지 않고 스스로 선명한 빛. 그 완전함이 새삼 신기했던 것 같다. 환하고 유일한 무언가.

  인간은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과학적 사실도 발견해냈고, 이것을 이용해 화려한 예술 퍼포먼스를 행하기도, 조명을 비롯한 여러 장치들을 통해 일상 곳곳의 빛을 통제하기도 한다. 이제 빛은 인간에게 단지 밝은 시야만 선사하는 도구 정도가 아니다. 세상을 ‘선택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무대 조명, 인테리어 무드등, 네온사인, 카메라 등등을 보라. 빛에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순간’에 더 집중하고 있거나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미디어 아트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빛의 가능성은 훨씬 더 무궁무진해졌다.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영역이 빠르게 넓어질 거라는 전망은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선, 누리면 그만이다. 빛이 안내하는 길로 천천히 잘 따라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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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그래도 며칠 전, 빛 관련 야외 프로젝트를 하나 보고 왔다. 11월 말까지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다. 이 전시의 진가는 입체적인 ‘빛’에 있기 때문에 어둑해진 밤에 더 탁월하게 아름답다. 고궁의 아우라와 함께 현대 시각예술의 재기발랄함을 즐겁게 체험할 수 있다. 고종과 덕혜옹주를 담고 있는 설치사진들, 격동하는 근현대사 속 덕수궁의 풍경을 여러 겹으로 드로잉한 영상물, 황제의 서재를 상상적으로 구현해 놓은 책가도 등 여러 작품이 은은한 빛 요소와 함께 입체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덕수궁의 과거와 현재. 그 시간 위에서 빛들이 뛰노는 것을 구경하는 전시라 봐도 되겠다.
  
  현대인에게는 도심 속 공원 같은 곳이 되어버렸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여 덕수궁의 역사적 숨결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번 전시의 ‘빛’은 바로 그 숨결을 목격한 목격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지랑이에 투영된 저 너머의 세계처럼 고궁을 흐르는 알 듯 말 듯한 기운에 대해 예술가들은 귀를 기울였다. 이곳을 거닐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들의 자취, 스쳐지나갔던 공기와 바람, 산업화라는 거대한 물살이 통과했던 시대의 아우성, 몰락의 기운, 대한제국 선포 이후 1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추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전부 덕수궁이 품고 있는 이야기라 생각해본다면 받아들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제대로 형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뭔지 모를 것’에 납득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가 요즘 전시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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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본다는 것’은 빛의 뒤를 느리게 좇으며 스스로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행위다. 예술가들은 바로, 멀리 있는 그 빛을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발견해 뛰어가는 사람들이고.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어렵게만 보이고 막연하게 느껴지던 예술의 장벽이 그리 높지만은 않다고 믿게 된다. 인간의 감각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깊이 신뢰 받았으면 좋겠다. 눈앞에 놓인 작품들을 보며 ‘왜 굳이 저렇게 표현해야해?’가 아니라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하는 열린 마음. 그런 마음을 기다리고 있을 작품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반짝이는 밤의 고궁을 걷는다면 충만함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겠나.
  
  5년 만에 돌아온 덕수궁 야외프로젝트다. 궁에 입장만 한다면 전시는 무료로 구경할 수 있다. 입장하는 순간부터 전시에 발을 들여놓는 거라 산책하는 동선 그대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입장인원이 한정된 다른 궁들의 야간개장과 달리 덕수궁은 9시까지 상시개장하고 있기 때문에 저녁부터 밤까지 변화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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