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극 속 여성들의 삶 [문학]

비극에 나타난 다양한 여성들의 삶에 대하여
글 입력 2017.11.13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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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속 여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여성은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혹 누군가의 여자 형제로 존재한다. 남성이 중심이 되었던 시대에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극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는 여인들이 있다.
 
 

강자에 의해 희생된 여성

『아가멤논』(아이스퀼로스)의 이피게네이아와 카산드라. 두 여성은 강자에 의해 희생당한 약자이다.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의 아버지 아가멤논의 명예욕 때문에 희생당하였고, 카산드라 역시 아가멤논과 클뤼타이메스트라에 의해서 희생된 인물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드린다. 그 속을 살펴보자면, 신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산 그는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탁을 듣는다.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제물로 바치는 동안 그녀는 모두에게 살려 달라 애원을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아가멤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총사령관’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는 나라에 절대적으로 강자이다. 전쟁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 약자를 희생시키는 아가멤논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또한 강자에 의해서 희생당한 카산드라. 트로이아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온 카산드라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희생된다. 이피게네이아의 어머니가 그녀를 위해 복수를 해주지만, 카산드라는 누구도 그녀를 기억해 주지도 않고, 누구도 그녀를 위해 복수를 하는 자도 존재하지 않다. 그녀는 침묵으로 이야기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어떤 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말을 하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피게네이아와 카산드라, 두 여성은 이야기를 하지만 강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리고 누구도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목숨을 바쳐 권력에 저항한 여성

『안티고네』(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가부장제에 맞서 목숨을 바쳐 저항한 인물이다. 그녀의 오라비가 반역자로 나라를 위협했던 인물이었다. 크레온 왕은 그의 오라비를 매장하는 사람은 죽이겠다고 온 나라에 선포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라비의 시체를 매장하고 붙잡힌다. 그녀는 죽음에 대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내게 그런 포고령을 내린 것은 제우스가 아니었으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지 않았으니까요. 나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중략)… 나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리스에서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이 여성의 영역이었다. 시체를 매장하지 말라는 명령은 여성의 영역, 모계사회를 부정하는 일이다. 부당함에 저항하는, 국가에 저항하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기의 죽음을 예상했고, 여성의 영역을 국가가 침범한 것에 분노했다. 결국, 그녀는 권력에 저항하다가 죽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자라고 칭송한다. 모두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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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매장하다 잡혀가는 안티고네



악녀가 된 여성

『메데이아』의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의 남동생을 죽인 여인이다. 그녀는 오직 사랑하는 이아손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하지만 이아손은 그녀를 배신하고 코린토스의 공주와 혼인을 한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두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메데이아는 가부장제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실천했던 적극적인 여성이다. 공주라는 신분을 버리고 사랑했던 이아손을 따라 타지로 갔다. 타지로 간다는 것은 그곳에서 소속되지 못한 타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메데이아는 그를 따라 코린토스로 간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동생을 죽이고, 심지어는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두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을 알지만,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인다.

신의 뜻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행동으로 운명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통해 그녀에게서 남이 아닌,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 영웅의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악녀’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전해져 왔다. 사랑과 복수를 위해서 아버지를 배반하고, 동생을 잔인하게 죽인, 그리고 두 아들마저 자신의 손으로 죽인 악녀로 해석되었다.(김미란, 2009). (물론, 그녀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반대로『아가멤논』에서, 아가멤논도 자신의 명예욕 때문에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악남(惡男)(?) 아닌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불렸다. 왜 그녀를 영웅이 아닌 ‘악녀’로 부른 것일까? 용서받지 못한 행동 때문일까?

‘자신들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크레온도 이아손도 자기 뜻대로 메데이아를 복종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메데이아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파괴되었다. 크레온은 메데이아의 영리함을 두려워하여 그녀를 내쫓으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은 죽게 된다. 이아손도 메데이아가 자신의 아이들을 죽임으로 영웅적 면모를 잃게 되었다. 즉, 메데이아는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여성이지만, 남성들이 그 여성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성적 시각에서는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여성이 두렵지만, 그녀를 무너뜨릴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그녀가 영웅으로 묘사된다면 자신들이 다져놓은 체제를 그녀가 흔드는 것이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것을 염려한 나머지, 그녀의 잔인성에 초점을 두고 그녀를 악녀로 부른 것이다.
 
“한편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오염의 메타포는 그것이 겨냥하는 대상이 지배계급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음을 함의한다. ‘더럽다’는 말은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김현경,『사람, 장소, 환대』)

남성들이 오히려 메데이아를 ‘악녀’라고 부른 것이 그녀를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일 뿐이었다. 즉, ‘악녀’라는 것은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공격인 동시에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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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을 살해하려는 메데이아





■참고문헌
 
현대연극 : 문학 속의 여성들 -안티고네, 이피게네이아, 메데이아 (김미란)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80p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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