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7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내한 공연 < 클래식의 위대한 도전 >

글 입력 2017.11.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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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i Gavrilov

언젠가 지나간 역사의 순간들을 뒤따라 되짚어보며 내가 그 시대에 없었다는 사실을 아쉬워하고 있었을 때, 떠오른 것이 있다. 

'내가 흘러간 시간을 그리워하며,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이 시간도 언젠간 역사로 쓰여지리라.'

그 때의 나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현실에 집중하자는 다짐을 했었던 것 같다. 

지나간 예술사조는 그 시대를 풍미하는 것으로, 아무리 잡아보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이미 지나간 일들이고, 현재는 현재 나름대로 왕성한 사조와 문화와 많은 사건들이 있을터이니, 그것을 잘 향유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하나의 역사로 만드는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해야할 도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최근, 어떠한 역사의 순간이 될만한 장소에 몸을 담그고, 아주 크나큰 감동을 느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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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내한 공연. 무려 롯데 콘서트 홀에서 펼쳐지는 공연으로, 내한 사상 최초로 지휘와 협연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

짧게 그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1955년 모스크바에서 다국적의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가브릴로프또한 선조가 독일인이며, 20세기 중반의 러시아 화단을 이끌었던 화가 중 하나였다. 그의 어머니, 아싼네타 이퀴제리안은 하인리히 노이하우스(겐리프 네이가우스)에게 피아노를 배운 아르메니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가브릴로프는 만 2세에 그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이렇게 예술가 집안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란 현재의 그는 강렬하고 날카로운 테크닉을 가진 러시아 현대 피아니스트들 중 으뜸가는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 속 지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그대로 갈고닦아 후세에까지 아름다운 음악을 남기는. 내가 위에서 말했던 것 처럼, 현세를 사는 사람으로서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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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은 총 두 곡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너무나도 유명하고 인기있는 곡인지라 공연 관람 전부터 큰 기대를 안고 있었다. 공연 전 여러가지 정보를 찾아보던 도중,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서술한 이 곡의 설명이 너무 인상깊어서 잠시 발췌해본다.

아마도 피아노라는 악기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유명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초연된 지도 어느 새 15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과 유명세는 점점 더 증폭되어왔지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의 이 대곡은 ‘피아니스트’라면 응당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해야만 하며, 이 곡을 통해 비로소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을 정도로프로 연주자로서의 가능성과 예술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총 세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 가운데 1번 협주곡만이 유독 유명하다.

피아노를 귀로 즐길줄만 알지, 손으로 연주하는 것에는 서툰 나같은 향유자의 입장에서는 단지 화려한 기교와 테크닉이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쳐버리지만, 이 곡이 이렇게 대단했던 곡이라니, 잘은 모르겠지만 그만큼 위대하고 유명하며 피아노 연주곡의 척도가 되는 곡이리라 생각한다.

웅장하게 시작되는 도입부의 멜로디를 속으로 따라부르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이 롯데 콘서트홀에서는 가장 첫 부분인 도입부가 제일 강렬하고 인상깊구나!' 라고 말이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이 곳에서 울려퍼지는 정갈한 첫 음은 공연장에 있는 모두의 심금을 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하나 놀라웠던 것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펼쳐지는 지휘와 협연의 동시작업이었다. 누구보다 절도있게 움직이며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해내는 가브릴로프는 ‘천재’라는 단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아노가 관객석을 등지고 놓여있어서 감동이 덜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오히려 그가 연주를 격정적으로 느끼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져서, 나에게까지 그 전율이 느껴졌다.

피아노에 앉아 춤을 추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화음의 별똥별같은 소리를 내며 온갖 기교를 부리더니, 어느샌가 벌떡 일어나서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그를 보며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고 집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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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프로그램곡. 바로 내가 좋아하는 곡중 하나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잔잔한 전조가 깔리면서 묵직하지만 청아한 음색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소개된 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고, 죽기전에 꼭 실제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들어보고 싶었던 곡이었다. 그랬는데, 이런 러시아 클래식의 거장의 손으로부터 연주되는 버전을 처음으로 듣게되다니! 정말 영광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곡의 1악장은 거의 입으로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질리고 지겹도록 많이 들었기 때문에, 공연 내내 속으로 흥얼거리며 곡을 즐겼다. 엄숙하고 딱딱할 것으로 예상되는 클래식공연장의 분위기애 맞지않게, 나는 혼자 신이나서 모 아이돌의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2악장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차츰 재우고, 숙연한 마음으로 오케스트라 위주로 감상했다.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프라임 필하모닉은, 처음 들어보는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귀를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를 이어나갔다. 상당히 엄숙하고 경직되어 있는 것 같지만, 곡의 흐름이 이어질 때만큼은 모두가 오선지에 올라타, 한 마음이 되어 음표들과 함께 두둥실 떠다니는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특유의 잔잔한 판타지스러움으로 이어지다가, 강렬한 전개와 화음으로 끝을 맺은 2악장. 그리고 바로 3악장이 시작되고, 나의 기대도 최고조에 달했다. 경쾌하게 이어지지만 꽤나 어려운 테크닉을 요구하는 3악장. 원래 항상 마지막 악장은 설레고 떨리는 법. 혹여나 여기까지 와서 실수하진 않을까, 졸여지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그러한 걱정들을 몽땅 깨부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손가락에 모터가 달린 것 마냥 연주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피날레,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주고받기가 이어지면서, 감동적인 선율과 끝을 알리는 멜로디가 공연장을 타고 퍼져나갔다.

눈물이 나올 것 만 같았다. 이런 감동의 순간에 내가 있다는 것이, 하나의 역사 속에 들어와있는 것만 같은 이 느낌이, 너무 감사하고 벅차게 다가왔다. 꿈만 같았다. 나는 그 꽉채워진 멜로디와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침을 삼키는 소리로만 가득찬 그 공연장에서, 단지 그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느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연주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따라라란 빰! 이라는 다소 유치하지만 이것만큼 정확한 표현이 따로없을 것 같은 박자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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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마친 가브릴로프의 두터운 회색 니트는, 저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양복에 넥타이에, 한껏 꾸미고 연주하는 요새의 젊은 연주자들과는 달리, 평소와 같은 차림에 단지 조금 더 단정하게 격식을 차렸을 뿐-이라는 느낌의 복장으로 온 그는, ‘난 언제나 매사에 모든 순간 순간 이런 식으로 열정을 담아 연주합니다.’라는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평가가 어떻든지간에, 충분히 열심히 달리듯이 연주한 그는 박수 갈채를 받아 마땅했다. 사실 나는 좀처럼 오지 않는 내한의 기회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앙상블 보다는 그의 독단적인 기교와 테크닉을 더 기대하고 있었고,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에는 합격점을 이미 웃돌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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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클래식 공연은 언제나 나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은, 내 머릿속에 더욱더 오래 기억남고 그 감동을 언제라도 다시 곱씹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던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연주자가 고인이 되고, 내가 연주자의 나이 정도 들었을 때, ‘그 때 그 내한공연에 내가 있었고, 난 아주 큰 감동을 받았었지.’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그 때. 나는 그제서야 그를 위해 기꺼이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않을까?


[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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