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의 친밀한 언어

_ 적어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글 입력 2017.11.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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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의 친밀한 언어
_ 적어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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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우린 비밀스러운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긴밀한 너에게 남들은 알 수 없는 말을 건넨다. 영화 <러브픽션> (2012)에서 주월은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 희진을 향해 “나는 너를 방울방울해”라며 사랑을 고백하고 명대사를 남겼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화자는 문득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말을 만들었고, “클로이를 마시멜로 한다고” 했다. 사랑하는 그들은 서로만 알아차릴 수 있는 기호를 마련하는 일을 통해 사랑을 재발명한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사랑은, 적어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 밀리미터의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알랭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116쪽
 
   
사랑하는 우리가 언어를 만드는 일은 어떤 종류의 일인가. 나는 왜 너만이 알아듣는 언어가 필요할까. 사실 나는 너만 알아차릴 수 있는 미묘한 변화들과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수많은 환상들, 그리고 너에게만 들려줄 수 있는 비밀스런 기도가 있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들춰져선 안 되는 이 모든 것들은 오직 너에게만 기꺼이 선보이고 싶은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투명한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만이 알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겪은 것, 공간과 시간, 대화와 침묵, 체온이나 호흡. 그 모든 것들에서 언어는 탄생한다. 이 모든 것은 일화 자체보다는 그와 함께 연상되는 것들을 통해 특별한 지위를 부여 받는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한 언어는 때로는 농담으로,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내가 그 때, 그 순간에 만들어진 그 언어를 툭 꺼내 보일 때, 너는 그 때, 그 순간으로 호출되고 우리가 나누었던 짧은 호흡까지 몽땅 기억해 낼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순간을 기억하는 너를 보며 우리의 사랑을 확인받을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너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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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그들에게는 사회에 통용되는 기호의 의미들은 무의미하다. 너와 나 사이의 기호는 다른 누군가는 결코 발 들일 수 없는 새로운 의미의 지평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나의 ‘이’ 농담 앞에서 ‘너’처럼 웃을 수는 없고, 그 누구도 너의 ‘그’ 말이 사실은 농담인 것을 ‘나’처럼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만든 우리만의 지평, 새롭게 창조된 세계다. 이걸 가지고 적을 무너뜨리거나, 또 다른 세상을 점령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우리만의 세계를 창조할 때, 이 세계의 시간과 공간은 모두 높은 밀도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 너를 통해 처음 이루었던 것들, 혹은 영영 너와만 하고 싶은 것들. 그런 것들로 우리는 세계의 곳곳을 꾸미고, 하루하루 지평을 넓혀 간다. 너와 나의 세계는 드넓게 펼쳐지고, 우리의 약호들은 보다 섬세해 진다. 둘 만의 세계는 비밀로서 만연하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끝없이 재발명된다.



* 그림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 중 일부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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