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능에 대한 초상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1.1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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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최현정


수능 전날에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편지'라는 그 단어 안에는 내 고등학교 고민들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지금 마음에 안드는 내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에는 ‘쓸데없어, 그냥 공부해서 대학이나 잘 가지.’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그 고민들이 너무 필요했다. 지금 그 때로 돌아가면 나는 또 똑같이 고민하고, 똑같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것 같다.

내가 너무도 대답이 절실했던 질문은 ‘잘 지내니? 수능이 끝나면 나는 나를 잘 알게 될까?’라는 물음이었다. 나는 이 물음들에 너무 답하고 싶었다.응 나는 너무 잘 지내고 수능이 끝나니까 완전 절대자가 된 기분이야. 전부 해내고 있어.”라고.
물론 아니었다. 나는 수능이 끝나도 저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었다.

수능이 끝나도, 삶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삶에 대한 게으름이나, 공허감, 절망도 마찬가지였다. 인생 최대 악이자 장애물이었던 수능은 쪼개져서 더 크고 새로운 악으로 나를 쫒아다녔다.

지금은 ‘앞으로 더 행복하게 될 거야!!’라고 자신만만하게 그 편지에 쓰지 않을 것 같다. 무책임하니까. 하지만 앞으로 ‘너가 너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라는 말은 챙겨가야 한다. 필요하니까. 내가 나 스스로를 안아주는 어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진실에 닿기 전에 무너져버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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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조차 이 시간들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 실패가 낳을 결과들을 특히 두려워하고 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너무. 그래서 거짓말이라도 믿어보고 싶은데, 문제는 그 거짓말을 믿기가 마땅치가 않다. 삶에는 반증 사례들이 넘쳐나서 거짓말을 내뱉는 순간 ‘거짓말!!’하고 내 머리가 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 게으르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기보다는 그냥 누워서 성공하고 싶다. 개소리인 건 알지만 하여튼 그렇다. 누군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빳다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심지어 그 누구가 누구인지도, 어떤 사람인지 밝히기도 너무 귀찮다. 사실 너무 쉽고, 너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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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내 식탁에 앉아서, 내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다, 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누군가가 맛있어? 라고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내 스스로의 위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냥 먹을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먹을 것을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것과 나의 자리가 잘 마련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잃어버린 삶의 방식이고, 지금 나이로는 그 방식을 되찾기 어렵다, 고 말할 수 있다. 왜?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귀찮다. 그냥 정부의 잘못, 그리고 너와 나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초등학교 시절 꾸준히 학습되던 그 잘못이라는 기준을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넘어섰단 말이다.

수능이 끝나고,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모두 손에 잡힌 모래들처럼 사라져간다.
수능이라는 관문을 넘어서, 이상한 나라에 왔다. 고민을 모두 머리에 이고 왔다.
내가 이렇게 들고 와버린 고민을 버려 버릴 데가 없다.

그냥 하던 일을 꾸역꾸역 열심히 할 뿐이다. 바보 같다.
수능 전에, 내가 쓴 편지에 적혀 있던, "채윤아! 우리 진짜 행복하게 살자. 우리는 그럴 수 있어. 우리는 이 삶을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어!"라는 말이 생각나서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 미안해, 나는 너가 가고 싶었던 곳을 다 가지 못했고,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하지 못했어. 그건 마치, 내가 수능에서 점수를 잘 받지 못했던 이유랑 똑같을 지도 몰라. 나 또 열심히 살지 않았던 거 같아. 미안해. 나는 이렇게 발전 가능성이 저조해. 수능 이후 어떤 발전이나 진화는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어. 너무 느려. 이게 나야.

우리가 같이 봤던 하늘은 참 아름다웠지. 그냥, 그것 뿐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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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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