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레의 진수를 보여준 고전 [공연]

글 입력 2017.11.1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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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의 호수> 문화 초대를 받았을 때 굉장히 감회가 새로웠다. 마지막으로 봤던 발레 공연이 초등학생 때였는지 중학생 때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발레는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굳이 찾아서 보러 간 적이 없었다. 대사를 통해 스토리가 진행되는 다른 장르와는 달리, 무용은 모든 것이 몸짓으로 표현되는 장르이기에 은연중에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발레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가게 되어 약간 긴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무언극을 보았을 때 만족스러웠던 경험으로 인해, 또 다른 말 없는 장르인 발레 공연은 어떨지 기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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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고, 궁정을 배경으로 하는 1막의 무대를 보고 느꼈던 것은 굉장히 고전적이라는 것이었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웅장한 오케스트라, 여러 명이 나와 앙상블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면 오페라와 흡사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무용 중에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발레,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작품인 ‘백조의 호수’ 무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때서야 실감 났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은 사람의 몸이 그려내는 곡선과, 춤과 음악과의 조화였다.

무언극에서는 직관적이고 디테일한 동작이 그려내는 현실감이 언어의 자리를 대신했다면, 발레의 무용수들은 직관적이면서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작으로 언어의 부재를 극복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승부하는 예술의 총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전달하는 수단인 언어의 힘은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력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없을 때 그 자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힘이 대단한 것이다. 물론 언어가 없기 때문에 스토리 상에 있어 어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백조의 호수> 중 4막만 봐도, 내용상으로는 서로 공격하던 중 왕자가 로트바르트의 날개를 꺾는 장면이지만 결투의 긴장감보다는 동작 자체가 더 부각되어 아름답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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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내용의 전달보다는 예술성 그 자체에 충실한 쪽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극도의 아름다움은 무용수들의 몸 자체에서도 드러났다. 단련된 그들의 근육은 섬세하고 균형 잡힌 모양이었고, 관절의 움직임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끊임 없는 수련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이 느껴졌는데, 보편적인 아름다움이란 누구나 이런 감탄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언급한 것이다. 백조의 목을 표현하는 발레리나들의 팔은 마치 실제 동물의 목뼈가 그렇듯 여러 개의 관절을 가진 것처럼 보였고 쉴 세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다리는 상체를 가볍게 지탱하며 무대를 가득 채우는 동작들을 실행했다.

그 모습은 그 자리에 있기까지 무용수들이 겪었을 고통과 노력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수면 아래서 부지런히 발버둥치는 백조의 절박한 노력과 겹쳐 보였다. 어쩌면 백조의 모습이 무용수들 그 자체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백조의 호수>가 발레의 고전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흰 백조들의 화려한 기교와 그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만들어 내는 하얀 장관이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팔짱을 끼고 고개와 다리만으로 추는 ‘네 마리 백조’ 춤이 가장 인상 깊었다. 팔을 움직일 수 없다는 핸디캡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일사불란하고 날렵한 군무에, 아직도 눈을 크게 뜨고 본 기억이 생생하다.

한편으로는 어떤 강렬한 요소가 단순한 스토리라는 한계를 상쇄하기도 했다. 바로 한 사람이 동시에 연기하는 오데트와 오델의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흰 백조로 표현되는 오데트의 표정과 동작에서는 지고지순하고 가녀린 아름다움이 엿보이지만, 검은 백조 오델은 춤도 표정도 그와 극단적으로 반대이다. 오데트 파트와 같은 테마이지만 더 빠른 템포의 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오델은 음악 자체에서도 느껴지듯 더욱 적극적이고 유혹적이며, 왕자와 추는 춤에서도 보다 주체적인 동작을 보여준다. 궁정을 돌며 춤을 추는 그들의 곡선은 너무 아름다웠다. 오델을 연기하는 발레리나는 무려 32바퀴를 회전하는 테크닉을 선보이는데, 이는 오델의 매력을 독보적으로 부각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데트보다 오델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한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백조의 호수> 하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도 빼 놓을 수 없다. 역시 생생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니 음악이 주는 감동이 몇 배로 느껴졌다. 고전은 항상 “이걸 만든 사람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압도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백조의 호수> 같은 경우에는 음악이 분위기를 주도하며 어느 정도 스토리를 이끄는 역할도 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 장조 느낌의 메인 테마는 분위기를 극도로 고조시키며 그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의 동작 또한 긴박해진다. 이런 일치는 무대 위에서 내내 이어지는 특징인데, 동작이 박자에 맞게 깔끔하게 떨어져서 음악과 발레, 내용이 균형을 이루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걸 계산하고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도 대단하지만, 그 의도를 실제로 무대 위에서 실현시키는 무용수들 또한 장인이 아닐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최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하는 발레의 예술성을 체감하고, 고전은 역시 고전이구나 느낄 수 있었던, 최선을 다해 완성된 무대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노력이 빛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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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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