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그럼에도'로 답하는, 연극 그럼에도 프로젝트

글 입력 2017.11.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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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내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골몰하던 시기가 있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기도 하고, 코트와 패딩, 여름과 겨울, 듣는 것과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것들을 데려다 놓고 청기백기놀이 하듯 좋아하는 걸 골라내보기도 했다. 이렇게 생긴 게 진짜 나일까, 불호와 호로 정의될 수 있으면 그게 진짜 나일까를 고민하면서.

 한때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눈을 감고도 골목골목 찾아갈 수 있는 익숙한 고향에서, 구글맵 없이는 한 발자국 떼는 게 겁이 나던 이국의 길바닥에서도.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내가 보일까, 내가 느껴질까 싶어서.
 
 물론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완전하진 않았지만, 흐리멍텅했던 나의 형상이 조금은 뚜렷해졌고 발걸음처럼 머릿속을 배회하던 생각들도 속도를 늦추더니 얼추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나에 대해 알고자 하면 할수록 도통 알 수가 없었고, 다시 혼자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절대 혼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다. 가족, 친구, 연인, 교수님, 하물며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평생을 규정당하고, 그 틀에 스스로를 어거지로 끼워 맞추거나 때로는 잘라내 왔기에, 나는 '고유한 한 사람’일 수 없었다. 구름이 그렇듯 나도 한 데로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샌가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당시 내가 내렸던 결론은 그래서, 포기와 수용이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외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의 본질을 찾는 걸 포기했던 것이다.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연극 <그럼에도 프로젝트>는 잠잠해진 낙엽 더미를 사라락 뒤집어놓듯이, 바람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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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프로젝트>는
우리가 길러진 시점부터의 이야기를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엮어,

나 자신의 정체성보다는
다른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길러진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해 그려냈습니다.

이 짧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해받지 못한 나,
위로받지 못한 나,
그리고
나와 다른 너를

‘그럼에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연극 <그럼에도 프로젝트>의 ‘에피소드들’은 6명의 배우들이 각자 자신이 가족 혹은 사회로부터 길러진 방식에 대해 공유하고 이해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 엮어낸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무대 위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내가 아닌 사람을 연기하는 것과 스스로를 연기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딱히 다를 것도 없다. ‘나’역시 하나가 아닌 여럿이고, 나조차도 자신을 잘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연극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만든 이들에겐 이미 충분히 익숙한  사실일 것이다.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그럼에도’ 다. 아니, '그럼에도'가 주는 ‘여운’을 자주 사용한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삼각구도와 사람들의 이름이 그러하듯이, 3은 가장 안정적인 숫자다. 그것을 넘어서면 왠지 길거나 불필요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에는 그 밖에도 어쩔 수 없음, 미련스러움, 왠지 모를 희망이 배어 있으며, 단정적이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연극 <그럼에도 프로젝트>는 나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강구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에 바로 ‘그럼에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과거의 내가 내렸던 포기와 수용이 아닌 다른 결말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조금은 체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붙들어 보려하는 연극 <그럼에도 프로젝트>. 나를, 그리고 다른 이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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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보

주취 및 주관 ㅣ 창작집단 봄의 주막

작/연출 ㅣ 공동창작 황지현(연출), 박예선(협력연출)

장소 ㅣ 소극장 혜화당

기간 ㅣ 11.23~12.17

시간 ㅣ 평일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 7시 월요일 없음

티켓 ㅣ 전석 3만원

문의 ㅣ 010-9232-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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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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