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2.0]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글 입력 2017.11.2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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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었을 때, 끝을 내지 못하고 ‘ㄴ’에 맺혀버리는 이 말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독자가 내려야 할 책에 대한 정의를 저자가 알아서 먼저 내린 것 같기도, 아니면 저자가 독자에게 제목의 완성을 온전히 내맡긴 것 같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책을 모두 읽고 내린 결론은, 그 의도가 전자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시끄럽고 어떻게 가까웠다는 것인가?


 1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은 아마추어 발명가이자 탬버린 연주자이며 셰익스피어 연극배우이자 보석세공사이면서 평화주의자인 9살 오스카다. 스토리는 9.11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의 탐험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세계대전을 겪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한데 얽혀 무려 3대에 걸친 이야기가 맞물리기 시작한다.
 

 '매번 집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아빠에게 가까워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겁기도 했죠. 엄마와 멀어지니까요.'

 9.11 테러로 아빠를 잃은 상실감에 젖은 오스카는 우연찮게 발견한 아빠의 옷장 속 파란 물병을 깨뜨리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봉투를 하나 발견한다. 봉투 속에 들어있는 건 정체불명의 열쇠. 봉투에 적혀있는 건 정체불명의 이름, ‘Black.’ 아빠와 매번 탐사 놀이를 하던 오스카는 이 열쇠가 아빠가 내준 수수께끼라 여기고, 아빠의 흔적을 찾아 뉴욕 전역에 있는 Black들을 찾아 나선다. 어깨를 으쓱대는 아빠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오스카.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는 일, 그리고 엄마를 지키는 일이 레종 데트르(존재 이유)인 그는 아빠의 죽음으로 무거운 부츠를 신고, 제대로 울지도 못한 채 주말마다 길을 떠난다.

  
 '너 거기 있니?'

 비록 세상에 없는 사람이기에, 그의 목소리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9살다운 듯 9살답지 않은 오스카가 조잘거리며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에는 아버지가 듬뿍 묻어난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보석상이 된 사람. 가정에 충실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었던 사람. 어깨를 으쓱대고 빨간펜으로 활자에 표시를 하는 게 습관인 사람. 아들에게 온갖 잡다한 지식을 전해주기를 즐겼던 사람. 오스카는 9.11 테러 영상을 들여다보며 건물 바깥으로 추락하는 사람들 중 사랑하는 아빠를 찾고 또 찾는다.
 사실, 그의 진짜 목소리도 남아있다. 비록 건물이 붕괴하기 직전, 자동 응답기에 다급히 남긴 다섯 개의 메시지들뿐이긴 하지만. 그는 마치 오스카가 그곳에 있다는 걸 확신한다는 것처럼, 그리고 동시에 간절하게 몇 번을 묻는다. ‘너 거기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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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그래도 미안합니다. Yes or No. 4,7,4,8...! '

 오스카의 할아버지인 그는 젊은 시절 아내의 언니인 애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전쟁 당시 폭격으로 그는 애나도, 애나 뱃속의 아이도, 심지어는 목소리도 잃은 채 삶과 세상을 방황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찮게 마주친 애나의 동생, 오스카의 할머니와 결혼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가 상실감에 젖다 못해 중독된 것인지, 무언가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일에 환멸을 느낀 것인지, 무언가를 잃기도 전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먼저 도망쳐 버린다는 것이다. 아내 뱃속에 든 아이, 오스카의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던 그는 입대신 손으로 토해낸 글자에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 평생을 달고 살아온 물음표 끝에, 그는 보내지 못한 편지들을 아들과 함께 묻는다.

 이렇게 세 명의 삶에 더해 오스카의 할머니가 적은 ‘나의 감정들’까지 더해져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인생들이 책 속에서 서로 다른 시간 속에, 그러면서도 동시에 펼쳐진다. 그러니, 이 책이 엄청나게 시끄러울 수밖에.


 2 크지만 가까운 도시 뉴욕, 먼 줄 알았으나 누구보다 가까웠던 그들     

 세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발원지가 누구인지,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결국 또 내가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세상이 넓은 것 같으면서도 얼마나 좁은가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는 주말이 되면 뉴욕에 사는 472명의 블랙들을 만나러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고 서서히 지쳐갈 때 쯤, 나침반이라도 되는 냥 목에 늘 걸고 다녔던 열쇠가 두 번째로 찾아갔단 애비 블랙의 전남편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과거에 자신의 아버지를 만났다는 사실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 열쇠는 오스카의 아버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세계 최대 도시인 뉴욕을 겁도 없이 헤매고 다니는 오스카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뉴욕조차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저마다의 삶으로 가득한 소설 그 자체라는 걸 으레 알게 된다. 그만큼 세상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정말 좁디좁은 것이다.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가장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오스카에겐 가족이 그렇다. 그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거짓말들로 둘러대며 Black들을 찾아 헤매고, 이 사실을 할머니와 엄마에겐 비밀로 한다. 그게 바로 오스카의 부츠가 무거웠던 이유였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건, 생각보다 끈질긴 인연인가보다. 오스카의 엄마가 아들의 탐사 놀이를 끈질긴 인내로 참아내며 마음껏 방황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보호했던 걸 보면 말이다. 할아버지도 그렇다. 솔직히 처음엔 오스카와 할머니의 사이가 가까울 뿐이지 할아버지의 존재가 뭐가 중요하다고 자꾸 나오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안아본 적도, 눈에 담아본 적도 없는 아들의 죽음을 듣고 홀린 듯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핏줄이 사는 바로 맞은 편 집, 아내의 집에 세를 들어 숨어 지낸다. 양심도 없다고 사람들이 삿대질을 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스카는 전혀 모르는 사이 그가 할머니에게 돌아온 것처럼, 곁에 없었다고 해도 할아버지는 결국 그들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허무한 여정을 계속하는 사이, 멀게만 보였던 것들이 하나하나 오스카 곁을 채워가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덕분에, 오스카의 부츠도 조금은 가벼워졌을까.


 책을 읽고 나서 같은 내용의 영화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하여 내친김에 영화와 책을 비교하는 글을 써볼까 하는 숙제 같은 마음으로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보았더랬다. 하지만 노트북 가득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숙제보다 훨씬 버거운 슬픔만이 남았다. 스토리상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생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등) 무엇보다도 분위기의 차이가 극심했다. 책을 읽으면서는 아버지를 잃은 소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슬프지가 않았다. 주인공 오스카가 블랙을 찾는데 몰두하는 똑똑한 소년이어서 그랬고, 아이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극도로 절제된 그리움만이 표현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숨기고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담담함이 더 크게 다가와서인지 오스카가 울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줄곧 스산하기만 한 날씨, 푸른빛이 감도는 장면들, 울부짖으며 한없이 흔들리는 오스카. 너무나도 느낌이 달라 비교는커녕 받아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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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한 고민 끝에 영화가 아닌 책을 선택한 것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 작가의 원작에서만 볼 수 있는 '시도들'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책 중간 중간 끼어 들어간 사진들, 백지, 덜렁 문장 한 줄, 갑자기 찍찍 그어져 있는 취소선, 점점 가까워지다 결국 시커멓게 변해버린 문장들...작가가 ‘굳이’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영화보다 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것은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건방진 판단으로, 글을 썼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이 나처럼 조금 더 시끄럽고, 따듯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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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보암보암 2.0을 시작합니다.
같은 말도 상황과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오곤 합니다.
<보암보암2.0>은 대사, 혹은 가사를 중심으로 
거기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느낌을 보암보암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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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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