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의 매개체들 :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음악 등등 [일상]

글 입력 2017.11.2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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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공간들에는 생각나는 음악들이 있다. 그곳에서 들었던 음악, 음악과 함께 있었던 일과 풍경들이 하나로 연결될 때가 있다. 그래서 그것 중 하나를 경험할 때면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그 장소에 가면 그 음악이 떠오르고, 그 음악을 들으면 그 장소가 떠오르고. 중학생 시절 다니던 영어학원 뒤쪽 언덕을 올라가면 밑으로 동네가 펼쳐지는 포인트가 있었다. 학원에 가기 전 거기에 가만히 서서 저녁 하늘과 주택가를 멍하니 보고는 했다. 마침 그 방향이 해가 지는 방향인 덕에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었다. 그 장소에서 처음 멍하니 있었을 때 들었던 노래는 루시드폴의 ‘고등어’였다. 그래서일까 그 자리에서 들은 많은 음악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등어’다. 지금도 ‘고등어’를 들을 때면 그 자리가 떠오르고, 그곳에 가면 당연하게 그 노래를 듣는다.


루시드폴 앨범 자켓.jpg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 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 루시드폴 고등어 中


 누구에게나 자신의 일부를 담고 있는 장소들이 있다. 일상 속에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또 어느 순간 변해버리는 장소들이 있다. 재수생 시절 초등학교 때 2년을 살았던 아파트가 재건축을 거의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걸어갔다. 한 45분을 걸어서 도착한 그곳은 그대로였다. 지낸 시간은 2년뿐이지만, 그리고 한 10년 만에 간 곳이었지만 학교 가던 길, 놀이터와 나무들, 단짝 친구의 집, 문방구와 분식집 자리 등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사람들도, 차도 없는 쓸쓸한 풍경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살던 그때의 풍경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이런 기분을 향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장소뿐만이 아니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어떤 풍경일 수도, 분위기일 수도, 버스일 수도, 영화일수 도 있다. 그런 스위치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떠오르는 것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감정일 수도, 느낌일 수도, 구체적인 기억일 수도, 어떤 사람일 수도, 어떤 시간들일 수도 있다. 그런 스위치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스위치들을 통해서 똑같은 일상에서 다른 것들을 불러올 수 있다. 평소와 같은 출근길에 고등학교 시절을 불러오고, 돌아오는 길에는 여행을 불러올 수도 있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듯이 그때그때 기억을 골라 먹는 느낌이다.


거리1.jpg


- 일상이 이렇게 흑백으로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2.

 웃고 싶을 때보다는 울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웃을 때 옆에 있으면 좋은 사람들은 많지만 울고 싶을 때 옆에 있어도 괜찮은 사람들은 적어서일까. 그래서 웃고 싶으면 웃을 수 있지만 울고 싶어도 울을 수 없다고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웃는 것이 더 쉬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우는 것이 웃는 것보다 더 비일상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걸까.

 옛날에도,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주는 복받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들 중에서도 참 좋아했고 동경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따라다니고 따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이 해준 말 중에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것도 필요해.”라는 말이 있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말만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것이, 기억 속의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같이 감당하며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이 눈물을 흘리던 기억은 없다. 어쩌면 자신이 못하는 것이기에 말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 쪽이 정답이든 진짜 감사한 것은 그때 우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물론 배웠을 뿐이지 슬프게도 익숙하지는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처음 울 수 있었다. 그래도 울고 싶을 때 우는 법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처럼 진실로 귀중한 것이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면 조용해 기억들의 매개체를 골라본다. 대부분은 음악이다. 밖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고, 그렇게 떠오르는 느낌과 감정에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맡긴다. 그 여행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아름다운 기억들임에도 경우에 따라 그 기억이 아프기도 하고, 그 기억이 기억이라는 사실이 마냥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기억들을 골라보는 것은 선물상자를 열어보는 것 같다. 포장의 모양이나 크기를 보고 대략 무엇인지는 알 수 있지만 정확한 것은 마지막까지 알 수 없듯이. 때로는 울으려다가 웃어버리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이 울어버리고 싶어지지만 울지 못할 때도 있다. 당연한 것이 아닐까. 감정을 우리가 자유롭게 부릴 수 있었다면 감정에 휘말리는 재미는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비행기 엘범 자켓.jpg


“지친 나날들 속에서 도망치듯 떠나도
그 누가 뭐라 해 그리 어렵진 않지
떴다떴다 비행기 날아라
하늘 높이 더 높이 날 데려가 줘”

- leeSA ‘비행기’ 中



0.

 울고 싶을 때뿐 만이 아니다. 행복함을 느끼고 싶을 때에도, 무언가가 그립고 싶을 때도, 설렘을 느끼고 싶을 때도, 방관자 같은 거리감을 느끼고 싶을 때에도 기억의 매개체를 들춰볼 수 있다. 지친 나날에 도망치듯 비행기를 타는 것은 어렵지만 기억 속을 높이 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상을 탈출해버리는 것은 어렵지만, 그 일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은 괜찮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매개체는 여러 종류이다. 음악을 항상 듣는 필자는 거의 대부분이 음악이지만 항상 글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문구일 수도 있고, 사진과 친한 사람이라면 사진이 그 매개체일 수도 있다. 매개체가 있다 해도 필자가 처음 기억 속에서 우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처럼 처음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억을 통해 느낌과 감정을 골라 먹는다는 것, 그럴 수 있는 기억이 있다는 것은 참 축복이다.


[김찬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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