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냥꾼으로 성장하는 것 [영화]

글 입력 2017.11.3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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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토커>에 관한 글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인간의 두 본성


박찬욱 감독은 1963년에 태어났으며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많은 작품이 있지만 그 중 유명한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복수 시리즈 3부작 <복수는 나의 것>(2001), <올드 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가 있으며 <박쥐>등이 있다. 이후 7년의 공백기 후 <설국열차>(2013)로 화려하게 돌아왔으며 최근 <아가씨>(2016)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시각들이 마치 인간의 3대 본능 식욕, 성욕, 수면욕 외에도 ‘살육’이 있다고 설득하고 정당하게 말하는 것만 같다. 피하고 싶은 잔인한 면들이 계속해서 눈을 끌게 하고 발목을 붙잡는다. 사실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보면 인간의 성격구조를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3가지로 나누었다. 원초아는 본능에 충실하며, 초자아는 도덕적인 원리에 따르는 자아이다. 원초아와 초자아의 대립에서 자아는 적절히 조절하며 따른다. 자아는 현실원리에 따르며 원초아의 본능과 초자아의 도덕성을 균형을 맞춘다. 여기서 원초아 즉, 이드는 본능을 의미하는데 이는 두 가지로 나눈다. 삶의 본능인 에로스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이다. 에로스는 사랑, 성(性)이고 타나토스는 공격성이다. 박찬욱 감독은 인간의 두 본능,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한 선상에서 놓고 있다. 인간의 잔인한 본성인 타나토스. 이를 일깨워나가는 <스토커>를 파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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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개



저도 지금
엄마의 블라우스 위에 아빠의 벨트,
삼촌이 사준 구두를 신고 있죠.
이게 나에요


<스토커>는 한 소녀의 성장 통이다. 엄마의 블라우스, 아빠의 벨트, 삼촌이 사준 구두를 신고 있다. 이렇게 나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주위 영향을 받으며, 그 영향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져서 나를 있게 한다. 아픔과 혼돈, 혼란을 겪으며 소녀는 숙녀가 된다. 우리는 주인공 인디아가 어떻게 성인으로 성장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벽한 사냥꾼’이 되었는지 알아보겠다. 이어온 가문의 핏줄부터, 타고난 사냥꾼의 자질, 이를 잘 막아준 아빠, 북돋아 키워주고 발견하게 해준 삼촌, 자신을 직접 낳아주었지만 자신을 미워하고 사랑하는 엄마까지. 그 외에도 모든 복합적 요소가 인디아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자세한 요소들을 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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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냥꾼의 피 Stoker


<스토커>는 스토커 가문의 이야기이다. 가족의 성씨가 제목이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토커(Stoker)의 뜻은 사전적 의미로 ‘남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람’이 있지만, 두 번째로 ‘(슬그머니 접근하는)사냥꾼’이란 뜻도 있다. 두 번째 의미인 ‘사냥꾼’이 바로 영화 제목이다.

스토커 가문은 인간 사냥꾼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걸 듣고, 작거나 멀어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지녔다. 주위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보면 스토커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좋다. 아빠 리차드, 삼촌 찰리, 그리고 나 인디아까지 모두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가문에서 특징적인 것은 찰리와 인디아이다. 이들은 타고난 예민한 능력으로 살인을 즐긴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찰리는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즐기지만 아빠에게 사냥을 배운 인디아는 참고 기다리며 치밀하게 살인을 한다. 이 가문에서 엄마 이블린은 예외적인 존재이다. 결혼을 해서 가문에 들어왔지만 스토커가문의 피를 잇지 않아 알게 모르게 소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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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디아 India


영화가 시작할 때 인디아는 푸른 숲속을 달려오다 운동화신은 발의 물집을 터뜨린다. 이는 푸른 자연 속에서 자신의 아픔을 깨는 것을 의미한다. 또 아빠의 선물을 찾기 위해 정원의 둥글고 큰 돌 사이를 뒤져본다. 테니스장의 테니스공을 쏟아내고, 둥근 케이크와 둥근 식탁에서 인디아가 굴리는 달걀까지가 모두 원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박제된 새의 둥지에 나온 알까지 연결되며 알들은 모두 성장 전 인디아를 뜻한다.

인디아는 마침내 선물상자를 찾았지만 매년 받았던 운동화가 아니라 열쇠를 받게 된다. 인디아는 아빠의 장례식 후, 침대에 누워있었다. 선물 받은 운동화에 둘러 싸여 누워있는 모습은 마치 관에 누운 것처럼 보인다. 관 속에 누운 아빠를 떠올리는 모습은 인디아가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운동화는 삼촌에게 받을 구두와 대비되는 상징물이다. 구두가 여성만이 신을 수 있다면 운동화는 성별 구분 없이 신을 수 있다. 여성으로, 성인으로써 자립하기 전의 아이모습을 운동화를 통해 보여준다.

찰리와 이블린이 인디아를 놓고 놀러갔을 때, 인디아는 메트로놈을 켜놓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똑-닥-똑-딱’소리를 배경으로 인디아는 속옷 차림으로 자신의 침대에서 헤엄치듯 몸을 움직인다. 이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단조롭고 무료한 생활에 질린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찰리가 어렸을 때 막내 조나단을 모래에 묻고 그 위에서 헤엄치는 행위와 똑같은 것으로 보아 찰리와 인디아가 은연중에 닮았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학교 미술 시간에 미술 선생님은 설명한다. ‘시간을 갖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잠깐 기다리면, 우리의 내면은 마침내 그 대상의 내면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인디아는 스케치북에 빨간색과 노란색 패턴을 그리고 열심히 색칠한다. 눈앞에 화분이 놓여있지만 인디아는 화분 안의 패턴을 그렸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스토커의 내력, 인디아의 특징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인디아의 뜻은 India, 인도를 뜻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인디오(Indio)는 ‘푸른, 푸른 빛깔의, 청색’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디오의 활용형이 인디아이다. 인디아의 이름은 청색을 뜻한다. 청색, 푸른색은 이지적인 면모가 강하다. 차가운 색이며, 냉정하다. 파란색은 보통 지적인 색으로 통용된다. 인디아는 똑똑한 스토커가의 일원이지만, 가족들 중에서도 더욱 더 지적(知的)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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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리차드 Richard



때론 나쁜 일을 해야
더 나쁜 일을 안 하게 된다.


삼촌이 찾아오기 전, 아빠는 인디아의 본능을 조절할 수 있게 사냥하는 법을 알려준다. 사냥을 알려주고 그 속에서 기다리는 법을 알려준다. 치밀한 사냥꾼이 되기 위해서. 무자비한 찰리와 다른 사냥꾼으로 키우기 위해서이다.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빠의 벨트이다. 찰리는 아빠의 벨트로 진 고모와 휘프를 죽이고 엄마까지 죽이려 한다. 그러나 인디아는 벨트를 매기만 할 뿐 살인도구로 쓰진 않는다. 살인을 할 때도 총으로 신중하게 기다렸다가 쏜다. 인디아는 성장해서 삼촌 찰리보다 발전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아빠의 18번째 생일 선물은 어린 시절 사진과 찰리의 편지를 넣은 서랍의 열쇠이다. 열쇠를 준 이유는 성인이 되면 숨겨온 삼촌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차드는 이름은 ‘강한 지배자’를 의미한다. 리차드는 영화 속에서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전반적인 부분에서 계속 언급되고, 존재하는 느낌마저 든다. 딸 인디아에게 인내하는 법을 알려주어서, 결론적으로 살욕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아내 이블린과, 동생 찰리는 알고 보면 리차드의 사랑을 갈구한다. 이블린은 딸에게 리차드를 뺏겨 시기, 질투를 하고 찰리도 또한 막내동생에게 쏠린 리차드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든다. 영화에서 가장 적게 나왔지만, 사실상 영화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가는 ‘지배자’는 리차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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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찰리 Charlie


찰리는 인디아가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해 많은 힌트를 준다. 첫 번째로 놀러 갔다 온 후 아이스크림을 선물로 준다. 빨간 통과 노란 통에 든 초콜릿과 바나나 맛 아이스크림 선물을 하지만 인디아는 소용돌이 모양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각기 따로 먹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로 섞여진 맛을 좋아하는 것은 복합적으로 성장하는 인디아를 암시한다. 찰리는 지하실에 아이스크림을 놓으라고 보낸 것도 인디아가 시체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찰리가 인디아가 태어난 해의 와인을 건네고 노란 우산을 건넨 것도 모두 가까워지기 위해 한 행동이다. 그러나 인디아는 ‘NO, Thank you’라 하며 심리적으로 거리를 둔다.

인디아는 남자를 찌른 노란 연필을 깎고, 필통을 열고 닫으면서 지하실과 찰리를 생각한다. 다리에 오르는 거미로 오르가즘을 느끼며 피아노를 찰리와 함께 연주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삼촌과 엄마가 가까워지자 인디아는 혼란을 느끼며 도망친다. 인디아는 찰리를 성적 대상으로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디아를 덮치려는 휘프를 삼촌 찰리는 웃으면서 아빠의 벨트로 살인한다. 직접 눈앞에서 죽는 광경을 본 인디아는 집에 와서 샤워하면서 자위를 하게 된다. 살인의 순간을 생각하며 절정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인디아는 자신이 두려워 마지못했던 살인의 기쁨과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인디아가 찰리와 함께 살인을 하고 비로소 가까워졌을 때, 찰리는 계단 꼭대기에서 인디아에게 구두를 신겨 준다. 18세 생일 선물. 살인에 눈을 뜬 인디아에게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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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를 기다렸어.
내가 한 모든 짓은 너를 위해서였어,
인디아.


이렇게 인디아의 존재는 찰리에게 특별하다. 찰리는 인디아의 사랑을 갈구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디아와 찰리의 관계는 계단이란 장소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계단에서 첫 만남은 인디아가 아래에 있다. 삼촌의 존재를 몰라서 당황했다는 인디아에게 찰리는 ‘네가 내 아래에서 보고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인디아는 천천히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찰리보다 한 층 더 올라간다. 인디아가 찰리보다 더 위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인디아는 계단에서 편지를 흘림으로써 찰리의 편지가 모두 같은 곳에서 보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삼촌의 실체를 파악한 장소이다. 마지막으로 계단 끝에서 찰리는 인디아에게 구두를 신겨준다. 같은 위치에서 구두를 신겨줌으로써 인디아는 이제 찰리와 동등한 존재가 되었다.

‘바보’라는 뜻을 가진 찰리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천진난만하다. 노란 색의 우산도, 자주 입는 노란색 상의도 모두 아이와 같은 순수성을 의미한다. 아이처럼 자신의 욕망을 참고 기다리지도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방해가 되면 가차 없이 죽인다. 진 고모와 가정부, 조나단과 리차드처럼. 진고모를 죽일 때 tv나레이션은 동시에 말한다. ‘먹을 게 귀할 땐 가족 관계는 의미가 없고 형제를 위한 사냥이 아닌 걸 이놈은 압니다. 형제간 경쟁은 잔인한 것 같지만 궁극적으론 그게 최선인 거죠.’ 찰리의 살인이 잔인하지만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tv 나레이션은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같은 찰리는 이블린을 죽일 때 인디아를 급하게 부른다. 마치 칭찬받기 위해서 찾는 행동과 같아 보인다.

찰리가 인디아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인디아가 찰리의 형인 리차드의 딸인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찰리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리차드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막내 동생 조나단을 질투해서 죽여 없애버릴 만큼. 그는 아이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형의 사랑을 원한다. 받지 못하자 결국 죽이고 만다. 찰리는 어떻게 보면 무지하기 때문에 더욱 잔인해질 수 있는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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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블린 Eveline



넌 누구야?
넌 날 사랑해야만 하잖아? 응?


인디아는 이처럼 스토커 가에서 미리 도움을 준 아빠와, 자신을 깨어나게 해준 찰리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스토커의 피를 이어받지 않은 엄마 이블린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인디아는 ‘엄마의 블라우스’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블린은 스토커가에 오기 전에는 부잣집 고운 딸이었을 것이다. 찰리와 대화에서 보면 완벽한 프랑스어 발음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블린의 이름은 프랑스의 주 이름이며 이블린은 프랑스와 가깝다는 걸 보여준다. 곱게 자란 이블린은 스토커 가문에 시집을 오고 외딴 저택에 갇혀서 지내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오후에 일어나고 시간조차 모르며 무기력하게 지낸다. 이블린은 딸이 태어나자 소외되기 시작했다. 항상 요리를 해주던 리차드는 딸과 사냥을 다니고, 징그러운 박제품만 가져다준다. 이블린은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딸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딸이 빼앗아 갔다고. 인디아의 살갑지 않은 성격도 이블린이 미워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인다아가 이블린의 머리를 빗어주려 왔을 때 많이 놀란다. 처음으로 가깝게 행동을 하지만, 직접 대화하지 않고 거울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이블린과 인디아는 거울에 비춰진다. 여전히 거리가 먼 것을 알려준다. 이블린의 방은 눈이 아플 정도로 온 면이 빨갛다. 빨간 방은 그대로 이블린을 나타낸다. 빨강은 열정을 뜻하기도 하지만 광기도 의미한다. 자신을 잃어 미쳐가는 이블린을 나타낸다.

이블린은 리차드 다음에 온 찰리마저 인디아에게 뺏기자 마침내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불안정한 시선과 화면의 구도에서 이블린은 독백한다. 다른 부모들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인디아가 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이블린은 속옷을 입고 딸과 남편이 사냥한 동물 박제를 모두 태우며. 리차드와 인디아의 정도 함께 태운다. 그리고 마지막 밤 찰리에게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인디아가 태어나기 전, 스토커와 만나기 전 자신의 본모습으로.

하지만, 증오하는 모습만이 이블린의 전부는 아니다. 찰리가 이블린을 죽이려 하자, ‘대신 내 목숨을 가져가고 내 딸에서 떨어져’라고 외친다. 아무리 미워한다 해도 결국은 딸을 사랑하는 엄마인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이블린은 인디아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애증의 관계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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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몽타주


박찬욱 감독의 독특한 편집 기법이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장면 간의 연속과 충돌로 이미지 그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다. 인디아가 처음에 지하실에 내려가서 전등을 켰을 때, 전등이 흔들리면서 엄마와 찰리의 웃음을 번갈아 나타난다. 인디아의 엄마와 찰리에 대한 불안감을 흔들리는 전등으로 나타냈다. tv다큐프로그램의 나레이션과 찰리가 진고모를 죽이기까지 이블린과 인디아의 행동들이 계속 연이어 부딪혀 나온다. 나레이션과 장면들이 하나가 되어갔다. 쇼트들이 점점 짧아지면서 극적인 효과가 났다. 바로 장면이 나오는 것 보다 편집해서 장면들의 충돌로 더욱 더 충격을 주었다. 인디아가 책장을 넘기는 것과 지하실 전등이 이어지는 것, 학교 남자애를 찌른 연필을 깎고 필통을 열 때 지하실 박스 뚜껑이 동시에 열리는 것은 모두 인디아가 지하실과 가깝다는 것을 상징한다. 지하실은 찰리뿐만 아니라 인디아도 의미한다. 휘프를 죽이는 장면과 인디아의 샤워하면서 자위하는 장면, 어린 시절의 찰리와 큰 찰리가 리차드를 죽이는 장면까지 모두 중요한 내용은 많은 장면들을 번갈아 빠르게 편집함으로써 충격을 더 크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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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장을 위해선



꽃이 자신의 색을 선택할 수 없듯이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우리의 책임이 아니에요.


이렇게 인디아는 성장했다. 자질을 갖추고 태어났지만, 이를 잘 보조하고 살려준 것은 엄마와 삼촌, 아빠의 존재이다. 이 환경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피와 같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인디아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취합했다. 자신의 사냥 본능을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인디아가 마지막에 집을 나설 때 입고 있던 옷들은 각각 의미가 있다. 엄마의 블라우스는, 엄마의 여성성과 사랑을 의미한다. 블라우스는 여성만이 입을 수 있고, 아빠와 삼촌과는 다른 모녀만의 특별한 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빠의 벨트. 벨트는 삼촌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아빠가 벨트를 있는 그대로의 벨트로써 옷을 흘러내리지 않게 잡아주는 본기능, 제구실대로 쓰고 있다. 자제력을 의미한다. 삼촌이 사준 구두는, 앞서 말했던 여성으로서의 의식이다. 그리고 발에 신는 것은, 다치지 않게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 있게 한다.

‘나’는 여러 영향을 받고 만들어지며, 그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데 있어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살인’도 타고난 본능으로써 주어지지만, 이를 일깨우고 아파해야 비로소 완전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도 이와 같다. 아픔과 혼돈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간다. 타고난 것과 선택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다. 그리고 우리는 환경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능동적으로 조절하고 수용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성장하고 있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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