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아빠와 아이스크림 #두 동생 #전학에의 선물 #부반장

2017.11.30 13.
글 입력 2017.12.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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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아빠와 아이스크림

언젠가 한번 아빠와 단 둘이 외출을 한 적이 있었어요.
외출의 목적은 심심하니 둘이 뭐라도 하고 오라는 엄마의 지시에 따른 동네 마실.

엄마가 아닌 아빠와의 외출은
평소 엄마가 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날이지요.

우선 아빠 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자 창문부터 다 내리고 바람을 즐겼어요.
기관지가 약해서 조그만 바람에도 금방 기침을 해서
한번도 창문을 모두 내리고 달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때다 싶어 차의 온 창을 열고 달려보았답니다.

뭘 하고 싶냐는 아빠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 떠오른 것은 아이스크림!

이 또한 목이 약해서 찬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기침을 해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온전히 먹어본 것이 손에 꼽혔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31개의 종류로 가게를 시작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어요.
너무 많은 종류에 뭘 먹어야 하나 쭉 살펴보다
특이한 이름에 아빠와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힌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골랐어요.

특이한 이름에 갸웃거리며 주문하는 아빠와
곧 손에 쥐어진 아이스크림 하나는 그날의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아이스크림 하나만을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창문을 열고 오후의 차지 않은 바람을 즐기며
동그란 초코 아이스크림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야무지게 먹었던 시간으로 꽉 차있었지요.

사실 오늘에 와서는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31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따로 있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생각이 나는 아빠와의 아이스크림 외출.
아마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던 날이라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나 봅니다.





#56 두 동생

친 동생은 아니지만
지금의 친 동생이 생기기 이전에
저의 동생이었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모라고 부르는 엄마의 절친한 친구의 딸로,
저보다는 1살, 4살이 어린 두 친구는
어린 날의 저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동생이었지요.

바쁜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오시기 전까지
매일같이 이모네 집에 가서 동생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집 앞 놀이터에서 누구인지 모르는 또래와 놀거나,
역할을 나누어 세상 누구보다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언니인 제가 잘 못하는 종이접기를 열심히 연구하여 알려주기도 하며,
매일 만나 놀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하루의 끝을 보내려 같이 잠들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무슨 놀이를 그렇게 했는지
스마트폰도 없고 티비를 많이 보지도 않았는데
그 많은 시간을 동생들과 즐겁게 보내곤 했었답니다.

동생들과 함께한 일들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참 많지만
특히 이야기 하고 싶은 기억이 있어요.

앞선 유년의 기억 글들에서도 말했지만
어린 시절 저는 꽤나 소심하고 말이 없던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싸운 일도 한번도 없었는데,
어느 날 동생들을 위해 화를 내고 싸우게 되었답니다.

셋이 함께 수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한 못된 남자아이가 저의 두 동생을 놀리고 괴롭혔어요.

동생들에게 말로만 듣다가 괴롭히는 장면을 보니
처음으로 버럭 화를 내게 되었어요.

동생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나의 동생이라고.

평소 조용하던 아이가 화를 내는 모습에
잠시 놀라서 벙쪄있던 못된 아이는 곧
너가 뭔데 소리를 지르냐며 큰소리를 내었어요.

잘못했으니까 화를 내지. 나는 얘네 언니야!

라고 다시 소리를 지르자
이내 할말이 없어진 건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건지
아무 말 하지 않고 동생들을 괴롭히려고 일으켜 세웠던 몸을 고쳐 앉았어요.

동생들을 지켜줬다는 생각에 뿌듯해진 순간이었어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건 잘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지만
소중한 나의 동생들을 언니로서 보호해주었던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당당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지요.
더 어른이 된 것만 같았어요.

이야기를 쓰니 새삼 보고 싶은 두 동생들,
곧 만나야겠어요.





#57 전학에의 선물

이제 좀 친구도 사귀고 학교에 완전히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될 즈음
두 번 째 초등학교를 떠나게 되었어요.

원치 않는다고 전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도,
나이도 아니었기에 받아들여야만 했어요.

마지막 날, 청소까지 다 마치고 학교 1층 현관으로 나가는데,
친했던 친구 4명이 달려왔어요.
이별이 아쉽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친구들은 잘가라고 인사를 건네었어요.
그리고는 한 아이에 손에 들려 있던 손바닥만한 분홍 수첩을 건네 주었지요.

꼭 나중에 보라고 신신당부하는 친구들의 말에
가방 속에 잘 넣어 두었다가
짐을 다 정리하고 떠나는 날 차 안에서 꺼내보았어요.

그 수첩에는 자신들의 어머니께서 앨범에 소중히 넣어두었을
더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붙어있었고,
글씨만 보아도 누구인지 딱 알아챌 수 있는 편지들이 적혀있었으며,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에 대한 짤막한 추억 거리도 쓰여 있었어요.
(볶음밥의 이야기도요.)

각자의 집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끝으로
수첩은 반 정도만 채워진 채 뒤는 백지로 남아있었어요.
아마 짧은 인연을 뜻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 그 수첩을 보고 아무도 몰래 많이 울었어요.
고마움과 아쉬움의 감정이었겠지요.

친구들의 관계는 나름 몇 달간의 전화 통화로 이어졌지만
몸이 멀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소원해질 수 밖에 없어
결국에는 연락이 두절되었어요.

게다가 그 수첩은 찾을 수가 없어졌어요.
그렇게 소중한 수첩을 어디에 버렸는지, 왜 없앴는지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이지만
그래도 세 번째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후 100번은 넘게 본 수첩이기에
이렇게 기억에 있으니 다행이다 싶어요.

또 이별에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 친구들이 너무나 고마워요.
결국엔 이름도, 연락처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고맙답니다.





#58 부반장

학급 임원이 되는 것에 아직까지 큰 욕심도, 관심도 없던 저에게
처음으로 맡아본 임원은 두 번째 초등학교에서의 2학년 2학기 부반장입니다.

전학 온 아이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말 안하고 종일 앉아 있기만 하는 아이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어쨌든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옆 반까지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조금 지켜보니 모자란 아이는 아닌 것 같다는 판단과
왜인지는 모를 반 아이들의 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이 적극적인 임원 추천에까지 이어져 단독 후보로 부반장이 되었지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부반장이라는 책임이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대화하며 학교에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부반장을 함으로서 학급 일을 돕고,
1학기에 이어 2학기까지 반장을 한 아이가
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학급의 시간 속 일들까지
많이 이야기해주어서가 아닐까 해요.

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에는
이 역할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부반장의 책임을 즐겁고 성실하게 수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이후
학급 임원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임원으로서의 기억과 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이때가 유일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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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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