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는] 슬픈 짐승, 아니말 트리스테 (animal triste)

_ omne animal triste post coitum, 모든 짐승은 교미를 끝낸 후에는 슬프다
글 입력 2017.12.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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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아니말 트리스테
(animal triste)


_ omne animal triste post coitum,
모든 짐승은 교미를 끝낸 후에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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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그것이 대답이었고, 그 문장을 마침내 말로 꺼내 얘기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나는 그 대답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있어? 라고 물었을 때, 너를 사랑하는 일, 너로 인해 나를 진탕 망쳐버리는 일이라고 한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짐작할 수 없는 너의 표정이 두려워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입 속에서 여러 번 굴리다만 말들을 언젠가는 꺼낼 수 있겠지 뭐. 다만, 나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에게 ‘슬픈 짐승’을 읽으라고 권하는 일이었다. ‘슬픈 짐승’이라는 책 알아? 정말 좋아. 읽어 봐. 이 정도의 추천평.

‘나를 더 많이, 온통 사랑해줘’라는 요구였고, 너의 사랑을 갈망하는 나의 슬픔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너로 인해 나의 삶을 망치는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아무튼 난 그에게 ‘슬픈 짐승’을 읽어보라 했고,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그가 이 책을 읽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사랑이 안으로 침입하는 것인지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조차도 아직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일의 불가항력과 그것을 인정한 사람의 망가짐. 이 소설은 한 여자의 ‘짧은 사랑, 그 사랑의 슬픔에 잠식당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어느 날 원인 모를 발작 증세를 경험했고, 그때 그녀는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1년 후 그녀는 ‘프란츠’(사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를 프란츠라고 부른다.)를 만난다. 그녀가 사랑했기 때문에, 그 이름마저 특별했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발음으로 그녀를 매혹했던 ‘프란츠’. 그러나 그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었고, 결국 그의 가정으로 돌아가길 택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녀의 삶은 멈춘다. 그녀는 오로지 그에 대한 생각만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감각들을 되새길 뿐이다. 그의 체취, 그의 음성. 그가 두고 간 안경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눈을 망치는 일, 그의 향기가 배어있는 침대 시트를 꺼내 펼쳐보는 일. 야생의 꽃들이 잔뜩 그려진 침대 시트 위에 나란히 누워 사랑했던 그 때의 감각들을 되짚어 보는 일.

그녀의 삶, 그녀의 사랑. 그건 사고였다. 너무나 강렬했고, 이전의 모든 것을 파괴했으며, 한 순간에 불과했다. 그녀의 삶에 부딪혀 온 사랑, 그녀가 겪은 고통은 사고 이후의 그것이었다. 회복될 수 없는 그녀는 참혹한 잔상이 되어 사랑인지 고통인지 분간 안 되는 그것의 표상이 된다.


‘자신에게 전부인 하나를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_ 신형철


사랑은 언제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난 단 한 번도 포기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사랑은 아무 것도 주장할 수 없게 한다. 사랑은 끊이지 않는 고통 앞에 무력하게 주저 앉고서야 다시금 살아났고, 그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듯 했다. 사랑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없음에 대한 고통, 그러니까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책임지는 것이나, 그보다 덜한 고통, 그러니까 사랑하는 일의 고통을 견디는 것 둘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결국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일의 고통 앞에 어쩔 도리 없이 있어야 할 뿐이다. 선택은 커녕 우린 그냥 죽지 않길 바랄지도 모른다. 그녀가 표상하는 사랑은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내가 하는 사랑이 이런 일이라는 걸 종종 까먹는다. 사랑의 아픔 앞에 분하고 화가 뻗친다. 무작정 나 말고 다른 걸 탓하고, 억울해한다. 그럴 때 이 슬픔 앞에 그냥, 나를 내어줘버릴 수 있도록, 그녀는 종종 등 뒤에 선다. 웅성웅성, 사랑을 떠드는 많은 소리 가운에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목소리다. 나는 슬픈 짐승, 슬픔에 점령당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일에 저항할 수 없다. 납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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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팀 아이텔의 그림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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