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꼭 만나고 싶었어요, 마리 로랑생展

그녀의 그림 속 색채는 정말 ‘황홀하다’.
글 입력 2017.12.0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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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 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展



나는 예술도서관의 내 사물함으로 가서 우리 강의의 주교재인 H.W.잰슨의 『서양미술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두꺼운 책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500쪽에 이르러서야 17세기 초 이탈리아 바로크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우리는 지금까지 여성 예술가를 만나지 못했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노트에 옮겨 적은 후, 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기며 끝까지 읽었다. 뒤표지까지 왔을 때 여성 화가들 열여섯 명의 이름이 적힌 목록이 완성되었고, …… 800쪽이 넘는 책에서 단 열여섯 명만이 ‘공식적’으로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전부였다.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서문 -


학교에서 배운 화가들 중 여성 화가를 뽑으라 하면 딱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없다. 과거 어느 분야든 그랬듯이, 화단 역시 남성 위주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서는 화가의 성별을 몰라도 대충 남자이겠거니-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여성 화가는 매우 드물어서 여성이면 여성이라고 토를 달기 때문이다. 문학사에서의 ‘여류 작가’, 영화사에서의 ‘여성 감독(혹은 작가)’라는 호칭과 같은 맥락이다-‘여배우’ 역시 이 예시에 들어갈 수 있겠다-. 미술사를 따로 배우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문학사에서는 시대별로 작가를 배울 때 여류 작가를 따로 떼어 배운다. 영화는 가장 최근 시작된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교재에서 감독이 여성일 땐 꼭 여성임을 밝힌다. 심지어 남편이 유명한 사람이라면 ‘~의 아내’라는 호칭도 들어간다. 대표적인 예로 몰리 헤스킬이 그러했다. 반면 그녀의 남편인 앤드류 새리스를 배울 때, 나는 그가 몰리 헤스킬의 남편인지 알지 못했다. 전혀 그런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예술에서 여성이 얼마나 소외받았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미술은 오죽했겠는가.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는 남성의 시선이 판치기 일쑤였다. 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했다. 마리 로랑생은 그러한 화단에 굳건히 존재한 한 명의 여성 예술가였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도 제 자신의 스타일과 감각을 쌓아낸 화가다. 서울에서 그녀의 작품과 인생을 만나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마리 로랑생전’이다.


키스, 1927년경, 캔버스에 유채, 81.2x65.1, Musee Marie Laurencin.jpg
키스, 1927년경, 캔버스에 유채
81.2x65.1, Musee Marie Laurencin 

꽃과 비둘기, 193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5x125, Musee Marie Laurencin.jpg
 꽃과 비둘기, 193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5x125, Musee Marie Laurencin

성(城)안에서의 생활, 1925, 캔버스에 유채, 114.4x162.3, Musee Marie Laurencin.jpg
성(城)안에서의 생활, 1925, 캔버스에 유채
114.4x162.3, Musee Marie Laurencin


그녀의 그림 속 색채는 정말 ‘황홀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따금 그녀를 ‘뮤즈’라는 이름으로 몰고 가는 것에 나는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녀가 누군가의 예술에 영향을 주었든,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 누군가가 영감이 되든, 일방적으로 여성은 다른 예술가의 뮤즈라 불리고 만다. 심지어 그녀 역시 예술가였음에도, 마리 로랑생은 일방적으로 한 예술가가 사랑했던 그녀로 치부되었다. 물론 그녀가 인생의 후반기에서, 작품에 대해 커다란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색채와 스타일이 주는 느낌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안겨준다. 또한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 그녀가 새롭게 추구한 자신만의 회화는 충분히 가치 있다. 당시 야수파나 입체파가 날뛰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러니 그녀를 ‘뮤즈’라고 부르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하지만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한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의 열 여섯명의 이름에서조차도, 마리 로랑생을 찾을 수 없다. 마리 로랑생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여성 화가들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다고 난 단언할 수 있다. 그러다 나는 문득 돌이켜본다. 나 스스로는 남성 예술가의 아내와 여성 화가 중 어느 쪽의 이름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가? ‘리 크래스너’라는 이름을 한 명의 화가로 알고 있었는가? 혹은 잭슨 폴록의 아내로 알고 있었는가? 나는 대답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 수많은 뮤즈와 모델의 이름을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작 여성 예술가의 이름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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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무렵, 마드리드에서, 1916


그렇기 때문에 마리 로랑생전은 더더욱 중요하다. 여성의 시선으로, 본인만의 감각과 스타일로, 그리고 색채로, 예술 혼을 불태웠던 여성 예술가 마리 로랑생. 그녀의 작품을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남성의 이름으로만 칠해져있던 미술사가 서서히, 제가 가지고 있던 숨은 명사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 전시가 뚜렷하게 이러한 가치와 목표를 가졌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가 뜨면 낮이 온다. 나는 이러한 낮의 가치에서 이 전시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마리 로랑생展 ; 색채의 황홀


일자 : 2017.12.09(토) ~ 2018.03.11(일)

*
1월 29일(월), 2월 26일(월) 휴관

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입장마감 오후 6시 30분)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티켓가격
성인 13,000원
청소년 10,000원
어린이 8,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KBS

주관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KBS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문의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02-396-3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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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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