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나이에 따라 변할 사람 같냐 [문학]

인천 재개발 단지 가정동과 그 안에 숨어 살던 청소년들의 기록
글 입력 2017.12.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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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이에 따라 변할 사람 같냐


<내가 나이에 따라 변할 사람 같냐>는 열 여섯 살 이후로 나를 옭아매던 죄의식과 약속에 대한 책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담긴 3개의 파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잠을 자야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청소년기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인천에서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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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동은 인천 최대의 마을이었는데, 시에서 뉴타운 사업을 이유로 주민들을 이주하게 시켰습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고 그 상태로 8년간 방치되었습니다. 놀이공원 하나 만한 크기의 마을이 건물만 남아 있는 채로 8년 동안 방치된 것입니다. 텅 빈 폐허에 몰려든 것은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그곳에 숨은 청소년들이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2011년, 12년의 나는 가정동에서 새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어른들을 욕 하고, 자책하고, 돈을 벌고 싶어하고, 동네를 좋아하면서, 한편으로는 언제 여기를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억울해지고 슬퍼졌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작은 이해와 관심 약간의 겸손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에게 잘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도덕적으로 그들은 나의 부모가 맞으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 정답일까.

도덕이란 올가미처럼 우리 목을 감쌉니다. 우리는 도덕을 지키려고 많은 것을 참습니다. 그런데 도덕이 우리에게 해주는 건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밤마다 주차장에 가서 자동차 문을 열었습니다. 금요일 밤이면 번화가에서 대기했다가 술 취한 아저씨들에게 아들인 척, 돈을 타냈습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겼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나를 이렇게 만든 사회의 잘못이다' 친구들과 합리화했습니다. 남들의 위선을 볼 때 내가 얼마나 정의로운지 알게 됩니다. 내 자신의 위선을 볼 때 내가 얼마나 관대한 지 알게 됩니다. 나는 그 차이를 죄의식이라는 방식으로 느꼈으나 살아남기 위해선 무시해야 했습니다.

2011년 겨울. 우리는 홍대에 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바꿔 놓은 상태로 5m 이상 가면 인형을 드립니다. 자전거를 잘 타는 내가 시범을 보였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실패를 하는 아저씨들이 짜증이 났는지 시비를 걸었고 급기야 우리를 때리고 돈을 바닥에 던졌습니다. 나는 신나게 밟히면서도 돈을 주우려고 홍대 바닥을 기었고 그런 나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봤습니다. 언젠가부터 죄도 삶의 일부라고 합리화하던 내가 돈과 물질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진 모습을 실감했습니다. 억누르고 있던 죄의식이 폭우처럼 쏟아졌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로 돌아와 친구들은 돗자리에 누워 울었고 나는 밤새 자우림의 가시나무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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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 친구들과 로이킴과 딕펑스 중에 누가 슈스케를 우승할 거 같은지 토론하고 있는 와중에 고양예고 문창과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는 마포 전골목에 갔습니다. 그날 친구들과 약속했습니다. 꼭 우리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멋진 어른이 되어 돌아와서 우리 같은 소녀, 소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미래를 바꿈으로서 과거까지 바꾸겠다고. 우리도 너네와 같았지만 이 폭력 가득한 세계에서 자라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오피셜 책 소개 발췌: 인천 재개발 단지 가정동과 그 안에 숨어 살던 청소년들의 기록





가난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목숨보다 사랑하게 된 반려 동물을 쉽게 치료해주지 못하고, 꿈을 주는 학교에 합격했더라도 학비를 받는 것이 어려운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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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워드로 온 '서울병' 스티커 중에서


또한 소중한 것이 상실된 그 마음의 무게를 홀로 견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삶의 좋은 방법을 알려주거나 좋은 상황이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결핍을 맞닥트렸을 때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 않을 방법. 빼앗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사과하는 방법. 그리고 마음에 든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을 훔치고, 얻어맞고, 사기를 치고, 욕을 먹어야 합니다. 주어진 것은 좋은 것이 상실되며 상실하고 있는 삶, 더 이상 놓치지 않기 위해 몸뚱이라도 걸어야 하는 삶입니다. 가난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상황에서 착하고 상냥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 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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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의 나이대는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입니다. 주인공은 특별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전교 1등, 부회장, 회장, 시인, 래퍼 등 주인공의 꿈은 계속해서 바뀝니다. 이 때 주위 어른들은 주인공이 영웅을 지향했을 때 잘 실패하고, 잘 몰락하는 법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른들은 그 영웅의 꿈에 자신의 실패한 욕망을 투사합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실패하고 말 인간의 길에 대한 연민을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잘 떠나보내지 못해 썩어버린 자신의 욕망을 꺼내 자위하고, 그 모든 책임을 중학생에게 떠넘깁니다. 손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비난만 하는 것은 너무 쉬운 것 같습니다. 가난이 생존인 문제에서, 그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즉 실패하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감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모든 것들을 겪은 ‘나’만큼은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나’를 데리고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소설의 제목은 ‘내가 나이에 따라 변할 사람 같냐’라고 외치는 것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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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병' 스티커 중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소설에서 부유한 사람들의 부유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치 경성을 배경으로 한 몇몇 일제강점기 소설에서 경성을 4분의 1가량 차지했던 일본 민간인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병'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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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스타 발췌


이 소설의 두 번째 흥미로웠던 점은 소설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자서전과의 경계가 모호하며, 마지막 주인공의 모습이 신화적 영웅의 모습인지, 비극적 영웅의 모습인지 흐릿하다는 것입니다.

잠시 두 종류 영웅의 성격을 비교해 보자면, 신화적 영웅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승리하거나, 명확한 해답을 얻습니다. 이는 흔히 그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신이 된 남자'와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비극적 영웅 같은 경우에는 고통과 당혹감에 빠져 의식적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이는 그리스 비극에서 볼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극적 영웅은 이야기 내에서 희생양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쉽게 말하면 해피 엔딩과 새드 엔딩의 경계가 흐릿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 경계들이 흐릿했기 때문에, 결말은 제 삶을 향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을 만한 내용으로만 꽉 채워 냈던 일기장을 벗어나, 이 소설을 읽으며 '그때 그 시절'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제가 본 '그때 그 시절'은 모두가 영웅이 되려 발버둥치던 전쟁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죽음과 실패에 대해서는 공포만 있을 뿐, 연민이나 관용은 없었습니다.

제 윤리학 수업 기말고사 문제 중 하나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문득, 영웅이 되지 않고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은 모두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피곤한 얼굴의 사람들이 가득한 아침 8시 지하철에서 떠올랐습니다.


중학생 시절, 긴 시간 가출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재개발 동네에 숨어 살았던 제 경험을 토대로 완성한 소설입니다.
제 과거를 풀어내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인 우리에게 '서울', '돈', '대학'이 어떤 존재인지 묻고 만약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 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삶의 공허함을 채워줄 용기를 줄 수 있는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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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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