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기꺼이 불편해진다 - 도서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글 입력 2017.12.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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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입체).jpg


박소현, 오빛나리, 홍혜은, 이서영 지음
135*210mm│232쪽│2017년 7월 31일 발행
13,500원│여성학 ‧ 에세이
아토포스 출판사
 
 
‘나쁜 페미니스트’ 를 읽고 일상 생활 속의 ‘거북함’을 느끼게 되었고,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한국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와 변질된 의미들로 다툼이 만연한 지금.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아프게 다가오고,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 방법은 각자 다르겠지만, ‘평등’이라는_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_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라 믿고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의 인생을 옅 보면서 공감하고 고민했듯이 다른 사람의 인생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인 나. 우리의 할머니, 엄마, 언니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나의 동생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나의 아이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 갈까.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이 당신의 지금, 거기의 페미니즘에 가 닿는 것이다. 사적인 이야기들이 모여 세상을 향해 함께 던질 수 있도록. 지금, 거기의 페미니즘을 묻는다”(p.9) 지금 여기, 4명의 여성들의 사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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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후에 오는 것들-박소현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큰 고통이다. 여성은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p.34)

저자는 페미니스트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82년생 김지영’씨의 모습과 참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결혼, 임신, 육아로부터 ‘나’를 지키는 일이 멋있게 느껴지는 현실이 먹먹하기도 했다. 임신을 하고 자연분만을 하는 것은 당연한 섭리로 여겨져 왔다. 제왕절개는 자연분만이 힘들 경우, 위험한 상황에서 행해지는 수술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제왕절개수술을 ‘선택’하여 출산했다. 고통 속 출산만이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 이었다. 그 누구도 출산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산모의 고통이 고충으로 받아들여지고, 엄마가 되는 당연한 과정의 일부로 여겨진다. 임신 직후부터 엄마 다워져야 하고 아이를 낳은 여성은 모성애로 가득 차야 한다.

누군가에게 ‘결혼’은 당연한 미래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 결혼은 ‘당연’한 미래 쪽이다. 다만 다른 점은 스스로 그렇게 마음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것이라는 전재가 깔린 질문이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은 여자도 능력 없으면 시집 못 가’ ‘시집가서 애 낳고 잘 살아 야지’ ‘결혼하면 우리 가족 아니다’ ‘결혼할 날도 얼마 안 남았네’ ‘이제 결혼할 나이 다 됐네’ 등등… 수 많은 질문 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냥 웃음으로 넘어갔던 말들이, 이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선택이 아닌 의무, 임신과 출산은 당연히 따라 오게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게 지금 내가 느끼는 현시이다. 오늘도 ‘내 인생’이 남들의 ‘걱정 어린 충고’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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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의 인생이 게임이 아니라는 거 확신해요?-오빛나리

“우리 팀에 여자 있어? 아, 망했네”(p.97)

‘여성’게이머로서 겪어야 했던 모욕적인 말들. 게임 속 만연한 성차별들. 게임을 좋아하는 여성에게는 공감을, 그렇지 않은 여성에게는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다. 게임 이라고는 ‘테트리스’ 밖에 안 해본 나에게, 게임세계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게임을 할 수 있고, 게임 속에서도 ‘스토리’가 존재하는 사실이 신기했다. 하지만 게임 속 ‘여성 혐오’적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직접적으로 느낀 것도, 들은 것도 없지만 저자의 경험만 들어도 노골적인 차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일까? 남성의 공간에 여성이 ‘침범’했다고 느낀 걸까? 당연히 여성은 게임을 망칠 것 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미디어 속 주인공은 항상 남자고, 그런 주인공을 유혹하거나 타락시키는 인물은 여자이다.(p.72) 남자 같은, 여자 같은, 남자 다움, 여자 다움의 기준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실 역할이 따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은연중 남성의 역할, 여성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여성이 (은연중)남성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최초의 여성’이 되고, 남성이 (은연중)여성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최초의 남성’이 되는 것이다. ‘남자 같은’ ‘여자 같은’ 구분은 어릴 적부터 쌓여온 것 같다. 나는 ‘여자 답게’ 놀고, 입고, 행동했다. ‘여자가’ 하면 안되는 일들은 하지 않았고 ‘남자 답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릴 때 은연중 쌓여온 남녀 역할 구분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만 봐도 그렇다.

난 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그 시대에서 이런 상상력과 연출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내용도 정말 재미있고, 영화 속 인물들도 개성 있게 참 멋있었다. 시리즈를 보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스타워즈 캐릭터 피규어를 사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 많이 모였다. 그냥 그 영화가 좋았고, 하나 둘 씩 사다 보니 욕심이 생겼고, 많아진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런 나를 보며 ‘남자 같다’고 말했다. 나는 ‘프랑스 자수’를 즐겨한다. 시간은 걸리지만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즐겁고, 남들에게 선물을 주면 그 반응이 기쁘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 ‘여성스럽다’고 했다.

남자 같은 것, 여자 같은 것 은 없다. 두개 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취미일 뿐이다. 여자가 ‘스타워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우스울 것도, 남자가 ‘프랑스 자수’를 좋아한다고 해서 우스울 것도 없다. 그냥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우리 모두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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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홍혜은

“페미니즘을 아는 것을 흔히 ‘빨간 약을 먹었다’고 표현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이 세계의 진실을 알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기꺼이 불편한 진실을 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의미 에서다”(p.158)

강남역 살인사건 시위에 참가한 저자는, 알 수 없는 눈총을 받았다. ‘연기하는 자아’에 충실히 살아왔고, ‘개념녀’ 행세를 했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엄마에게 “우리는 모녀사이로 잘못 태어났으니 앞으로 다시 보지 말자”고 이야기 한다. 과거, 여성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욱 힘들었던 시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

사실, 페미니즘에 접하기 전에는 일련의 부당한 것들이 당연 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받았던 차별이 ‘폭력’인지 모르고 지나쳤던 시절들. ‘빨간 약’을 먹고 나니, 그 불편한 것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이 도서의 저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폭력에 맞서고, 다툼에 끼어들며 기꺼이 불편해지고 있다.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한발짝 나아갈 수 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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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치명적인 상대와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이서영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를 선언한다는 것은 자기 내부에 있는 성차별을 인지하고 맞서 싸우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p.215)

저자는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살아가야하기에 겪은 이야기들 속에서 남성에게도 “남자 다워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 모두 “동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동지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에야 여성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억압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p.222)

이런 내용의 댓글을 읽었다. 여성과 남성의 저울이 이미 많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애초에 평등하게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이미 남성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역차별’은 불가피 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댓글은 많은 공감을 받기도, 질타를 받기도 했다. 역차별을 논하며 서로가 피해자가 되려 애쓰는 모습. 우리는 모두 피해자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자매애”가 아닌 “동지애”를 인지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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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이 서 있는 지금 거기의
페미니즘을 듣고 싶습니다.




도서소개

_사적이어야 마땅한 페미니즘

“여성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어떤 형태로 숭배되고 배제당하는지, 보편적인 여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구하는 것만이 페미니스트의 일은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는 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서문 중에서)

나이, 성장 환경, 경제적 조건, 종교, 정치적 입장까지 모두 다른 네 명의 저자가 털어놓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는 여성으로서 겪는 성차별, 타자화,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의 질긴 뿌리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프리랜서 출판편집자 박소현,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 ‘탈선’의 대표 오빛나리, 문학을 전공하다 망했다고 자조하는 넷페미니스트 홍혜은, 소설가 이서영은 자신의 삶에 얽히고설킨 그 뿌리들을 질문과 사유의 힘으로 헤치고 나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직시한다. 직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온전한 ‘독대’로써 가능하지만 그러한 직시가 모이면 ‘연대’가 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연대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학문이기 이전에 우리의 삶이다. 성차별과 가부장주의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공고한 이데올로기를 이론의 영역에서 해체시킬 수 있지만 그러한 문제의식의 계기는 우리의 삶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다. 학문적 영역의 페미니즘 연구 주제가 연구자 자신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사회를 비판하기 이전에, 또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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