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마리 로랑생㞟-색체의 황홀

글 입력 2017.12.1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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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㞟- 색체의 황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17.12.09-2018.03.11


마리로랑생포스터-01.jpg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이며,
그림만이 영원히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마리로랑생-


"마리 로랑생의 예술은 우리시대의 명예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자화상, 1905년경, 목판에 유채, 40x30, Musee Marie Laurencin.jpg

 
마리로랑생
[Marie Laurencin]

1883.10.31 ~ 1956.6.8


프랑스의 화가.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와 양식화 속에
자기의 진로를 개척하여,
감각적이며 유연하고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흑인예술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에 영향을 받아,
점차 자유로운 화풍 속에서
여성다운 섬세한 관능을 표현했다.

-두산백과-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의 주인공이이자 그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마리 로랑 생’은 1905년 당시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공동 작업실이었던 ‘세탁선’(Bateau Lavoir)에서 피카소, 아폴리 네르, 장콕토, 모딜리아니 등과 교류하며 ‘단순한 형태와 감미로운 색조에 의해 슬픔을 표현한 시적인 여 성상’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냈다.

마리 로랑생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당대 유럽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가된 부르주아 여성 이데올로기 를 거부하고, 화가로서, 문학가로서, 자신의 길을 당당히 견지한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또한 인테리어 디 자인, 무대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시각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밤의 수첩』(Carnet des nuits, 1942)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는 등 문학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다.





우선 나는 아주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려서 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릴때 선이나 형태보다도 더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이 색 이다. 스케치가 마음에 들때는 혹여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망칠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어떤색으로 채워나갈지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정말 즐겁다.

그래서일까 정말 좋아하는 화가이자 색체로 유명한 또 다른 화가 마르크샤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색체과 여성스러움을 억누르거나 버리기 보다는 강점으로 드러낸 것같은 우아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또 유려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그림. 아직 직접 전시를 관람 하지는 않았지만, 사진을 통해 본 마리 로랑생의 그림은 보게 된 순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림과, 문학, 패션,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아름답게 꽃 피우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프랑스 파리.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으로 '벨 에포크'라고도 불리우는 이때의 파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전쟁과 가난, 차별등으로 고통받는 나라가 많다고 하지만 커다란 전쟁없이 평화롭고 글로벌한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지금의 서울을 포함한 뉴욕이나, 도쿄, 지금의 파리와 급성장하는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이 더 화려하게 느껴지지만, 2차대전을 전으로 과거 이전에는 볼 수 없을 많큼 아름답게 문화가 번영하는 시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파블로 피카소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있는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디자인에서는 아르누보라는 스타일이 등장했고, 가브리엘 코코샤넬이 등장하는 시대이기도 한다.

이 아름다운 시대에 여성으로서 다른 남자화가들 사이에 당당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 여성화가 바로 마리 로랑생이다.





작품 미리 만나보기▼

샤를 델마스 부인의 초상, 1938, 캔버스에 유채, 100x73, Musee Marie Laurencin.jpg
 샤를 델마스 부인의 초상, 1938
캔버스에 유채, 100x73, Musee Marie Laurencin


성(城)안에서의 생활, 1925, 캔버스에 유채, 114.4x162.3, Musee Marie Laurencin.jpg
성(城)안에서의 생활, 1925
캔버스에 유채, 114.4x162.3, Musee Marie Laurencin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jpg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





마리로랑생은 또한 후에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는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예술가들의 사랑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다음의 시는 그녀와 5년 열애 후 결별을 아쉬워하며  아폴리네르가 지은 시 '미라보 다리'이다.

이 시는 세계적인 샹송 가수인 이베뜨 지로(Yvette Giraud)와 음유시인 레오 페레(leo Ferre) 등이 불러 불후의 명곡이 됐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로 즐겨 불린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미라보다리’ 중에서)


30세, 아폴리네르와 노르망디의 여행에서, 1913.jpg
(노르망디를 여행하는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





7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는 내면의 열정을 지닌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가. 19세기 말 여인으로 태어나 자신만의 색체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인 동시에 일러스트레이터, 인테리어디자이너, 패션, 무대디자이너, 시인이기도 했던, 그리고 정열적인 사랑을 한 연인이기도 했던 마리로랑생.

그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설렌다.

또한 이번 전시회는 국내 첫 특별전인 동시에 도쿄 마리로랑생 뮤지엄 건립에 따라 마지막 전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마리로랑생포스터-02.jpg
 

[류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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