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의 클래식 메카, 도쿄 ②

글 입력 2014.02.0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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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의 부음이 들려왔다. 20세기말과 21세기초 최고의 명지휘자로 군림했던 아바도의 타계는 저물어 가는 거장들의 시대를 선포한 장엄하고도 서글픈 만종(晩鐘)이었다. 글머리를 아바도의 부음으로 대신한 까닭은 지난 10월 도쿄를 찾은 이유가 실은 아바도를 보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루크너를 들려줄 계획이었다. 도쿄 산토리홀에서 예정된 총 네 번의 무대는 전세계 클래식팬의 이목을 집중시킨 빅이벤트였다.


그러나 연주회를 보름여 남기고 주관사인 가지모토 매니지먼트사는 돌연 공연취소를 통보해 왔다. 아바도의 급작스런 건강악화로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방일무대가 무산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잦은 건강악화로 예정된 무대를 적지 않게 취소한 아바도였지만, 이번만은 더 이상 아바도를 지상에서 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예정된 프로그램이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브루크너 최후의 미완성 교향곡 9번이었기 때문이다. 흡사 거장이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감한 듯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세 달이 흐른 2014년 새해 벽두에 아바도의 부고기사를 읽게 됐다. 불길함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도쿄의 최첨단 클래식요람, 스미다 트리포니홀





▲ 도쿄 스미다 트리포니홀 외관 (사진출처-Sumida Triphony Hall)


아바도의 마지막 일본무대는 이렇게 무산됐고 아바도도 영영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나는 그처럼 비중있는 무대를 주선한 일본이라는 나라의 클래식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도쿄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클래식 거장들의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그 중심이 산토리홀과 신국립극장, NHK홀이다. 그러나 도쿄에는 이들 세 연주회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외에도 눈부신 꿈의 연주회장이 도쿄에는 여럿 흩어져 있다.



▲ 도쿄 스미다 트리포니홀 내부 로비 (사진출처-Sumida Triphony Hall)
▲ 도쿄 스미다 트리포니홀 내부 객석 (사진출처-Sumida Triphony Hall)
▲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진출처-Sumida Triphony Hall)


그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스미다 트리포니홀이다. 니켄 세케이사의 주도로 설립된 스미다 트리포니홀은 1801석의 메인홀과 252석의 스몰홀을 갖추고 있으며 1997년 개관했다. 음향은 나가타 음향회사가 맡았다. 지난 10월 14일 월요일은 일본의 국경일인 체육의 날이었다. 이 날 오후 2시부터 이 곳에서 시모노 타츠야 지휘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접한 나는 스미다 트리포니홀의 격조있는 분위기와 탁월한 어쿠스틱에 그대로 매혹되었다. 깨끗하고 세련되기 이를데 없던 극장 내관과 무대 정면 상부에 웅장하게 박혀 있던 파이프오르간의 위용, 그리고 지상 2,3층 높이에 위치해 있는 콘서트홀의 자태는 유례없는 장관이었다. 거기에 이 콘서트홀을 보금자리로 활용하는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너무도 그윽했던 소노리티는 매우 흥분스런 체험이었다.



▲ 시모노 타츠야 지휘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진출처-Takashi Fujimoto)


루이지 피오바노 협연으로 연주된 슈만 첼로 협주곡보다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이 이 같은 나의 흥분을 가중시킨 명연이었다. 1972년 오자와 세이지의 이니셔티브로 창단된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40여 년의 길지 않은 역사에도 강인한 톤과 풍만한 소노리티를 머금은 특급 악단이었다. 이 같은 악단의 비상한 연주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보금자리가 바로 스미다 트리포니홀이었던 것이다. 악단과 악단을 품고 있는 연주회장은 유럽에서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미 일심동체의 불가분의 한몸이 된지 오래된 듯 보였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의 풍경은 악단과 연주회장이 따로 겉도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내에도 콘서트홀과 콘서트홀이 품고 있는 상주악단의 개념이 정립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오케스트라의 질적 성장이 가능케 될 것이다.








도쿄의 심장에 박혀 있는 도쿄예술극장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 도쿄 예술극장 정면 (사진출처-Tokyo Metropolitan Theatre)
▲ 도쿄 예술극장 로비 (사진출처-Tokyo Metropolitan Theatre)
▲ 도쿄 예술극장 무대와 객석 (사진출처-Tokyo Metropolitan Theatre)


이 밖에도 스미다 트리포니홀에 못지 않은 클래식명소가 도쿄에는 여럿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무대가 도쿄 이케부쿠로역 근처 도쿄 메트로폴리탄 아트스페이스 내에 위치한 도쿄예술극장(Tokyo Metropolitan Theatre)이다. 1990년 개관해서 도쿄도 역사문화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도쿄예술극장은 1999석의 콘서트홀과 841석의 연극 극장 및 일군의 소규모 공간을 품고 있는 종합아트센터다. 저명한 일본건축가 아시하라 요시노부가 설계했고 역시 나가타 음향회사가 어쿠스틱을 총괄했다.


지난 10월 17일 목요일 저녁에 이 곳에서 접한 고바야시 겐이치로 지휘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무대는 굵직하고 풍만한 음향 덕으로 감동이 배가된 무대였다. 1940년생의 원로지휘자 고바야시 겐이치로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명지휘자로 줄곧 신들린 지휘를 선보였다.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과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마리 엔도 협연),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무결점의 비르투오시티로 끌고간 고바야시의 명지휘와 이에 기민하게 반응하던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즉각적인 흡수력은 일본악단이 구가하고 있는 클래스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서구 메이저악단 부럽지 않은 탁월한 연주력을 하나 같이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고바야시 겐이치로 지휘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진출처-Yomiuri Nippon Symphony Orchestra)


이 밖에도 10월 15일 화요일 저녁에 찾은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도 인상적인 무대였다. 1997년 9월 10일 오자와 세이지 지휘 사이토 키넨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바흐 ‘마태수난곡’으로 개관한 이 연주회장은 상기한 도쿄의 음악명소에 비해 시설이 낡아 보였다. 그럼에도 슈박스 형태의 내부설계와 떡갈나무로 홀 전체가 마감된 덕분에 걸출한 음향을 뽐내는 것으로 정평있는 연주회장이다. 전체 1632석의 객석수도 알맞아 보이는 이 콘서트홀은 현재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무대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1930-1996)는 죽기 전까지 도쿄 오페라시티 문화재단의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이 연주회장의 탄생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10월 15일 저녁에 하바르드 김제의 반주로 이 곳에서 들은 일본의 명바이올리니스트 가미오 마유코의 리사이틀은 그녀가 뽐낸 명불허전의 비르투오시티 뿐 아니라, 그에 더해 이 콘서트홀의 탁월한 어쿠스틱을 절감케한 자리이기도 했다. 무대와 객석은 리모델링을 필요로할 정도로 낡고 벗겨진 태가 완연했지만, 음향만은 천의무봉이었던 것이다. 무대 정면을 여지없이 수놓은 파이프오르간의 육중한 스케일 또한 이 연주회장의 가치를 더욱 드높이고 있었다.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는 클래식명소가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이었다. 도쿄 최고의 번화가인 신주쿠에 위치해 있는 54층의 도쿄 오페라시티 타워 속에 이런 보석 같은 무대가 숨어있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도쿄의 가장 고전적인 클래식무대, 도쿄문화회관






끝으로 도쿄를 대표하는 음악명소 한 곳을 추가로 언급해야겠다. 도쿄 우에노공원 인근에 위치해 있는 도쿄분카카이칸, 즉 도쿄문화회관은 마에카와 구니오의 설계로 건립되어 1961년 개관한 일본의 유서깊은 연주회장이다. 1998년부터 1999년 사이 개보수 공사가 진행됐고, 2303석의 대극장과 649석의 소극장으로 이루어진 가장 고전적인 도쿄의 연주회장이다. 이 역시 도쿄예술극장처럼 도쿄도 역사문화재단이 운영을 맡고 있다. 이 곳의 대극장에서 나는 지난 10월 19일 토요일 오후 일본 K-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이다 가츠히로가 지휘한 도쿄 씨어터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일본의 대표발레단인 K-발레단의 무용수들이 풀어낸 춤사위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1999년 출범한 K-발레단은 2004년 7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런던 로열 발레단과 함께 초청무대를 가지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드높였다. 왕년의 저명한 발레리노 앤써니 도웰이 명예의장으로 있을 정도로 이 발레단의 실력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정평나 있다.


막상 도쿄문화회관 대극장 1층 객석에서 확인한 이들의 기량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클래스에 도달해 있었다. 이들을 넉넉하게 품었던 도쿄문화회관 대극장의 무대도 그 광활함이 후련하게 다가왔다. 1961년 4월 도쿄도 주정부가 도쿄시의 500주년을 기념하고, 오페라와 발레를 전문적으로 공연할 극장에 대한 도쿄시민들의 욕구에 발맞춰 건립된 도쿄문화회관은 건립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쿄의 대표극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첫 대면에서부터 어딘지 모르게 고풍스러워 보였던 외관과 로비, 객석은 인근에 위치한 우에노공원이 풍기는 운치 가득한 옛스러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 날 도쿄문화회관에서 구경하려 했던 공연은 K-발레단의 무대가 아니라, 소극장에서 있었던 명피아니스트 브루노 레오나르도 겔버의 리사이틀이었다. 그러나 일찌감치 조기매진된 겔버의 방일공연 티켓은 끝내 구할 수 없었다. 꿩 대신 닭을 찾는 심정으로 대신 찾은 대극장의 K-발레단 무대는 그러나 나에게 기대치 않은 충족감을 안겨주어 겔버의 리사이틀을 놓친 마음을 달래 주었다. 지금도 도쿄를 다시 방문한다면 나는 도쿄분카카이칸, 도쿄문화회관부터 찾을 것이다.한때 내가 빠져지냈던 일본의 명영화감독 나루세 미키오(1905-1969)의 걸작 ‘산울림’(1954)에서 하라 세츠코와 그녀의 시아버지로 분한 야마무라 소가 작별을 고하던 엔딩씬의 우에노공원은 바로 도쿄문화회관과 지척의 장소였기에 나는 더더욱 도쿄문화회관부터 찾게 될 것 같다. 그것은 내 뜻 이전에 본능이다. 귀소본능과도 같은 그러한 본능.. 현대화된 최첨단의 도쿄가 아니라 반세기 전 노스탤지어를 머금고 있는 옛날의 도쿄를 찾는 당신이여. 우에노공원과 우에노공원의 한켠에 자리잡은 도쿄문화회관부터 찾아갈 일이다. 그 곳에는 당신의 영혼을 아득한 과거로 되돌릴 향수어린 그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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