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핍진하길 기대하는 지금의 이야기 : 연극 < 경남 창녕군 길곡면 >

글 입력 2017.12.2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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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신화


사회 속 스트레오타입화된 이미지들은 ‘현대의 신화’를 담아낸다.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많은 이미지들, 수사들을 생각해보시라. 여성의 이미지, 남성의 이미지, 약자의 이미지, 특정 직업군의 이미지, 연인의 이미지, 가족의 이미지. 실제로 이 이미지가 실재 세계 사람들의 모든 것을 설명해낼 수 있는가? 혹여 문화적으로 고안되고, 사회적으로 창조된 상상화는 아닌가? 롤랑 바르트의 지적대로, 이 현대의 신화는 ‘누구나 당연시하고 넘어가는 것’이지만, 그 자명성의 가면을 치워내면 말간 허구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나 바르트에 따르면, 이 현대의 신화는 자명함을 내걸고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수행한다. ‘여성’, ‘남성’, ‘약자’ 등에 특정한 의미가 붙어 작동하며, 이에 따라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어렸을 적 봤던 많은 드라마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시련을 딛고 결혼에 성공하여, 그 행복의 마지막 단계로서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임신 소식을 알고 기뻐하는 부부, 양측 부모 모두에게 축복받는 임신, 태아를 한없이 사랑스러워하는 여자의 모성애. 장르와 서사 진행 방식에 따라 상이하긴 했으나, 우리가 익히 학습해왔던 출산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출산과 가정, 결혼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들. 여전히 통념 속에서는 결혼은 일생일대의 이벤트이고, 출산은 너무나도 숭고한 어떤 것이고, 엄마란 마땅히 모성애를 가져야하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 세계엔 신화가 담지 못하는 고통과 고민들이 즐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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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야기는

 

벌레의 이동은 나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나무는 자궁이 적출된 여자처럼 헤프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허리를 숙인 채 구멍 속에 손전등을 비춰봤다. 밑둥이 뻥 뚫려 있었고, 이상하게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깊숙한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벌레가 기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여러 종류의, 수천 마리도 더 돼 보이는 벌레들이.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김애란, 「벌레들」, p.74)


김애란의 단편 「벌레들」에선 이 스트레오타입화된 출산을 끔찍하게 전복시킨다. 경제적으로 불안한 소시민 여성 화자가 임신에 대해 느끼는 불안함, 자신의 몸에 타자를 키우는 것 자체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혐오스러운 벌레로 인식되는 생명의 이미지. ‘나’의 삶의 조건이 스트레오타입화된 이미지들, 문화적 의미들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질 때, 출산이란 그저 번식의 일종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만, 이 소설에선, ‘나’의 인식 이유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들을 순 없다. 이 폭로와 전락까지가 단편의 역할일 뿐, ‘왜?’, ‘무엇을?’이라는 답은 좀 더 긴 서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세밀한 선택지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역시나, 한 소시민 부부가 임신을 계기로 변화를 맞게 된다.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여자와 낳지 말자고 하는 남자, 이 부부 사이의 갈등에서 우리는 사회의 단면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앞서 소개한 단편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더 온건한 방식으로 임신과 출산, 결혼과 가정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애란의 「벌레들」이 출산과 모성애에 대한 신화를 폭로했다면,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오히려 상상화에서 벗어나,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 세계의 모습을 핍진하게 담아내지 않았을까. 결혼이란, 출산이란 무엇인가, 이 사회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출산을 한다는 것은, 그 조건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자명함이 벗겨진 빈 자리에, 부디 나만의 의미들이 채워지기를, 감히 기대해본다.



시놉시스


부부인 종철과 선미는
밤에 TV를 보면서,
또는 함께 식사하면서 잡담을 즐기고
휴일을 즐기는 평범하고 소박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지적인 것도, 부유한 것도 아닌 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각각 배달 운전수와
판매 직원으로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미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이들의 대화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즉 선미는 낳고 싶어하고 종철은 반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차츰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공연정보



INTRODUCTION

기    간
2017년 12월 15일(금) – 2018년 1월 21일(일)

시    간
평일저녁 8시 / 토요일 4시 / 일요일 4시 
*월요일 공연 없음
*12월 25일 월요일 4시
*12월 26일 화요일 공연 없음

장    소 :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

주최·주관: 극단 산수유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 만 15세
러닝타임 : 90분
관 람 료 : 30,000원


CREATIVE STAFFS

작    가 :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
번    역 : 이정준
번안·연출 : 류주연
무    대 : 이희순
조    명 : 박성희
음    향 : 이준혁, 이지혜
의    상 : 최  원
디자인·사진 : 김 솔
기    획 : 강선영
조 연 출 : 홍성호, 박성은
출    연 : 이주원, 김선영, 주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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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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