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리 로랑생, 그림에 자신의 색을 입히다

글 입력 2017.12.2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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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아트인사이트 문화 초대를 받아 기대를 안고 마리 로랑생 전시회를 다녀왔다. 목요일 4시, 전시를 보기 애매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은 그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볐다. 전시회는 따뜻한 그녀만의 색깔로 큐레이팅 되어 그림의 색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총 8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무명 화가였던 그녀가 당대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어, 그녀의 일생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의 일생을 함께 엿보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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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로랑생' 전시회 모습


 
마리 로랑생, 그녀를 만나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평화의 시대였던 '벨 에포크' 시대. 마리 로랑생은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을 가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예술가의 예술가로 꼽힌다. 그녀의 인생을 압축해놓은 사진들을 시작으로 우리는 마리 로랑생을 만나게 된다.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혼외자식이라 자식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 없이 자랐다. 하지만 금전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그녀는 좋은 학교에 다니며 교사를 준비했지만 문득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초창기 무명 화가였던 그녀가 그린 작품들은 이 사진들을 넘어 '청춘 시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그녀는 보통 인물의 초상화, 자화상을 그린다. 자신의 재능에 확신이 없었던 그녀의 모습이 작품을 통해 나타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큐비즘의 대가로 소개되며 화가로서 창창한 길을 걷게 된다. 확실히 다리, 발 등이 기본적인 도형의 모습을 띠는 것을 통해 그녀가 큐비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jpg
▲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
 


탁한 색깔 사이 속 분홍색과 푸른색 희망


 '열애 시대'에 들어서면 우리가 아는 그녀의 특징적인 그림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기욤을 만나고, 화가로 인정받은 삶을 살며 그녀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회색과 흰색이 두드러져 어딘가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그녀의 그림들이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운명의 연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헤어지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망명하며 색감이 변화한다. '열애 시대'에서 '망명 시대'로 넘어가는 벽 한 면에 적힌 "나는 아주 슬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분홍색과 푸른색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문구는 그녀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망명 시대'로 넘어가며 그녀는 남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기욤의 죽음까지 겪으며 피폐한 삶을 산다. 또한 1차 세계대전 이후 고향인 프랑스에 가지 못하게 된 후 좌절한 채 작품에만 몰두한다. 지나친 회색과 어두운 빛깔 등을 통해 당시 그녀의 심리 상태를 볼 수 있었다.



다시 마리 로랑생으로,


 그 후 그녀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다. 특히 '콜라보레이션' 부분은 그녀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약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 전, 우울감에 휩싸였던 그녀의 그림들은 그녀만의 색채로 다시 입혀진다.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북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진다. 전시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그녀만의 색채를 다시 마주한다. 끝까지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은 작가, 마리 로랑생. 어쩌면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나다움’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년경, 캔버스에 유채, 97.3x131, Musee Marie Laurencin.jpg
▲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년경
캔버스에 유채, 97.3x131, Musee Marie Laurencin
 


마리 로랑생을 바라보다


 마리 로랑생은 성공한 화가처럼 보인다. 그녀의 삶은 사랑의 관점에서는 다사다난했지만 다른 화가들보다 평탄해 보였다. 혼외자식이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정치인 아버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으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아 노년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을 할 수 있었다. 이는 평생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다른 화가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또한 후반으로 갈수록 무대 의상, 작화 등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삶은 화가의 삶으로서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삶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남성 주류의 사회에서 고통을 호소했던 그녀의 기록들에서 알 수 있듯, 그만큼 자신의 색채를 표현하기 어려웠던 여성 화가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그녀의 전시가 초석이 되어 여성 화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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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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