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2.0]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글 입력 2017.12.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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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동사 : 궁금하다, 궁금해하다
명사 : 경탄, 경의, 기적


 ‘원더’라는 제목을 봤을 때, 그리고 포스터 속 꼬마아이가 쓰고 있는 거대한 헬멧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헬멧 속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의 모습과 이 작은 아이가 내 인생에가져올 변화가 정말 ‘원더’했기 때문에, 영화가 던진 미끼를 기꺼이 덥석 물기로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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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와 엄마 이사벨
 

 태어나자마자 27번의 성형수술을 거쳐 그나마 비장애인에 가까운 얼굴은 갖게 된 아이, 어기 풀먼. 10살이 될 때까지 세상에 나서본 적 없는 그를 엄마 이사벨은 과감히 중학교에 입학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진중한 교장선생님과, 섬세한 담임선생님이 곁에 있긴 하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사실 친구들이 아닌가. 하지만 어딜 가든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신만만함을 폭력적인 방향으로 행사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기의 가족 모두가 걱정했듯이, 어기가 학교에서 보낸 첫 날은 결코 순탄치 않다. 아무도 어기를 만지려 하지 않고, 같이 밥을 먹으려 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어기의 옆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 벽은 생각보다 높고 단단해서, 누군가를 왕따시켜본 적도, 왕따 당해본 적도 없는 그저 10살 남짓의 어린아이는 결국 허물어져 버린다. 안전한 집으로 돌아온 어기는 겨우 벗어놓았던 헬멧을 다시 가져다 쓰고 말한다. "나는 왜 그냥 괜찮다고 하면 안돼?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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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남방을 입은 아이가 잭 윌이다.


 학교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잭 윌은 다른 건 몰라도 과학은 월등히 뛰어난 어기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여느 때와 같은 점심시간, 늘 어기를 못살게 구는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전교에서 처음으로 어기 앞에 앉은 잭 윌을 향해 어기는 말한다. "나는 누가 내 앞에 앉아서 밥 먹는거 싫어해. 유인원 같아 보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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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머와 어기


 이제서야 학교 가는 일이 즐거워졌을 때 즈음, 그것도 어기가 좋아하는 할로윈 파티에서, '내가 그렇게 생겼으면 자살했을거야' 라는 말을 듣는다. 가까스로 열었던 빗장을 다시금 꼭 닫아걸고 어기는 잭 윌도, 그 누구도 친구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어기를 비웃는 친구들에게 신물을 느낀 여자아이 섬머가 어기에게 직접 다가선다. 그런 섬머를 향해 어기는 말한다. "넌 왜 여기에 앉아? 교장 선생님이 친하게 지내라고 해서 그렇지?" 


 영화이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에 따라 우리는 누구의 시선에서든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입밖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가끔은 답답하리만치 '표정'으로만 말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게 현실에 더욱 가깝다. 분명 <원더>는 영화이기에 어기의 마음을 독백으로 처리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기는 친구에게, 가족에게,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자기 입으로 직접 내뱉는다.

 어기 풀먼을 당당하고 밝은 아이로 설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감독이 아니라서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고 믿는다. 어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 덕분에 "이렇게 잘생겨지려면 성형수술을 여러 번 받아야 돼" 라고 할 만큼 유머러스하게 자랐기 때문에, 어기는 솔직하고 매력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어기가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이야기한다고 해도 크게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 한 명을 알게 되었고, 그런 아이의 내면이 어떻게 곪아가는지 또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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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줄기만 보면 영화 <원더>가 딱히 새로운 점은 없다. 장애를 가진 한 아이가 세상 속으로 첫 걸음을 내딛고,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를 그저 컨텐츠의 측면에서 ‘진부하고 뻔하다’고 평가하는 게 얼마나 무례한가. 엄밀히 말하면 어기도, 어기의 스토리도 픽션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딱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운 건, 우리가 실제 어기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되는데, ‘얼마나 상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장애인이라면 평범하지 않으니 당연히 불편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문다.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을 알 수 없을 뿐더러 안다고 해도 완벽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살아온 배경과 일거수일투족을 안다면, 그 디테일을 상상할 수 있다면 최소한 쉽게 상대를 무시하거나 혐오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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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의 누나, 비아


 사실 이 영화엔 어기 뿐만 아니라 어기의 누나 '비아', 처음으로 어기의 친구가 되어주는 '잭 윌', 비아의 베스트 프렌드 '미란다'의 시선까지 골고루 담아낸다. 비록 비중은 작지만 짧은 시간 동안 굵직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수 많은 등장인물들 중에 왜 하필 이렇게 4명이었을까.

 어기처럼 부모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형제를 둔 아이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심 많은' 비아도 마찬가지다. 어른스러운 척 하지만 사실 방황하는 사춘기 소녀일뿐인 비아는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해주었던 할머니를, 부모님의 따스한 손길을 늘 그리워한다. 잭 윌은 부잣집 아이들과 어울리긴 하지만 그의 집안은 대단하지 않다. 만인이 평등할 것 같은 교실에서조차, 그 격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도하고 아름다운 미란다도 알고 보면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비아를 부러워해왔다. 이들 모두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소외'라는 하나의 접점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 <원더>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각양각색의 외로운 내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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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와 잭 윌


 속마음을 털어놓기 보다는, 누군가의 속얘기나 비밀을 듣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 <원더>는 내게 딱 맞는 작품이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명의 이야기를, 이렇게 굵직하고 예리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니. 영화를 보면서 노다지라도 발견한 냥,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빴다. 한편, 이 영화가 모두에게 감동적일 것이라는데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조금 허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두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다보니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경우도 있고, 각각의 인물에 빠르게 이입해야만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영화 <원더>를 권한다. 어찌 됐든 이 영화는 '다름'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아, 어기처럼 외모가 다르면 이런 마음이겠구나. 단란한 가정에서도 비아처럼 그림자에 감추어진 아이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인물이 직접 자신을 대변하도록 함으로써 관객의 영혼에 상상력을 불어넣고 그 시선을 따스하게 바꾸는 영화, <원더>. 결과적으로 영화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당찬 소년 어기의 입을 빌려 전한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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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홍재희, <그건 혐오예요>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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