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네 산책_홍대와 신촌 사이 [문화 공간]

글 입력 2017.12.3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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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을 때면 언제나 단번에 대답하기 힘들다. 아파트 이름을 말한들 동네 주민이 아니면 모를 것이며, 어느 역에 가깝다고 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답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매번 다르게 나온다. 서강대역 근처, 신촌역과 광흥창역 사이, 홍대와 신촌 사이. 모두 우리 동네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이렇게 흔히 약속장소로 선정되는 ‘만남의 장소’들이 대부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동네 밖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북적이지 않으면서 아늑한 장소들을 찾아간다. 이런 곳들이 차곡차곡 쌓여 애매한 나만의 산책로가 생겼다. 20년 넘게 이 동네에 살아온 붙박이가 선정한 ‘홍대와 신촌 사이’ 산책 코스이다.

앞으로 소개할 장소들은 평소에 바쁜 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던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이 거리를 들여다 보면, 개성을 갖춘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번화가의 소음과 복잡함이 지겨울 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1. WA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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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마저 동네로 다니며 도보로 통학하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동네 붙박이였던 나의 평소 생활패턴은 집-학교로 굳어졌다. 그래서 첫 번째 산책 코스는 학교 앞이다. 학교 앞 하면 떠오르는 소박한 이미지와 달리, WATCO는 공연이나 전시를 열기도 하는 등 활발하게 운영되는 문화 공간이다. 또 WATCO는 ㄱ자 건물의 양쪽에 각각 신발 셀렉트숍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독특하고 희귀한 브랜드의 신발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물론 희귀한 만큼 비싸기 때문에 잠시 둘러본 뒤 카페로 들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탁 트인 카운터를 마주 보고 창가에 앉으면 아늑한 실내에서 볕을 쬘 수 있다. 몽환적인 bgm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2. 히노키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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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O에서 나와 서강대역을 지나쳐 길을 건넌 후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 작은 밥집을 찾을 수 있다. 히노키공방은 일본 가정식 전문 음식점이다. 사실 이 곳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라 때를 잘 맞춰 가지 않으면 웨이팅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음식이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쓴 소스와 꼬들꼬들한 밥이 어우러진 텐동도 좋고, 추운 날씨엔 뜨끈한 가츠나베가 일품이다. 뿐만 아니라 “이 곳은 맛집이 아니라 그저 동네 밥집”이라고 쓴 사장님의 마인드 덕분인지 분위기도 굉장히 편안하다. 꿀팁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직후에 가면 바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3. 경의선 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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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노키공방에서 골목길을 따라 땡땡거리 쪽으로 이동한 후, ‘참새방앗간’ 앞까지 오면 정겨운 기차 신호등과 기관사 동상이 보일 것이다. 이제 홍대입구역 방향으로 기찻길을 따라 쭉 걸으면 경의선 책거리가 나타난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길이지만, 거리를 장식한 조형물과 책 컨테이너들이 산책길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평일 저녁 전에는 컨테이너가 열려 있어 들어가서 구경할 수도 있다. 나에게 이 길이 특별한 다른 이유는 바로 동물들 때문이다. 사람들이 데리고 나오는 강아지들은 매번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가끔 만질 수 있는 고양이를 만나면 광대가 승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동물을 좋아한다면 이 산책길이 정말 좋아질 것이다.



4. Turntabl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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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 은색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오면 빨간 벽돌 건물 1층에 조명으로 꾸며 놓은 유리 벽과 동그란 간판이 보인다. 외관만 보면 왠지 ‘혼모노’ 음악쟁이들만 드나들 것처럼 느껴져서, 지나다니며 탐색한 끝에 들어간 적이 있다. 적당히 어두운 실내에 비틀즈 노래가 나오고 있었고, 금요일 저녁답게 취한 직장인들이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종류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맛있는 맥주들이 있고, 걸어 다니는 주크박스 같은 사장님(?)이 컴퓨터와 턴테이블로 번갈아 음악을 틀어주신다. 내가 LP로 처음 들은 곡은 “Let it be”였는데, 고전의 참맛에 왜 사람들이 LP를 사는지 깨달았다. 그야말로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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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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