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버려진 사람들이 사랑하는 거처럼

퐁네프의 연인들
글 입력 2017.12.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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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람들이 사랑하는 거처럼
_ 퐁네프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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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크기만큼 갈증을 느끼게 하며, 상대방을 소유할 수 없을 때 또는 상대방을 잃어버렸을 때는 죽음 못지 않은 고뇌를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것은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어떻게나 소중한지 잃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래서 상대방을 끌어안은 채 고통 속에 살기를 욕망하는 그런 것이다.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 


*


퐁네프의 연인들

감독 레오 까락스
출연 줄리엣 비노쉬 드니 라방


그가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는 기세는 실로 무서울 정도였다. 그는 어차피 버려진 사람이다. 낡고 부서진 다리에 사는 사람이고 도둑질한 날 생선을 먹으며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꺼지지 않는 사람이다. 불을 머금고 뱉으며, 잠드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길 버려진 사람이 살아내는 것과 같이 했다. 마음 껏 내달리고 웃어 제끼고 뒹굴고, 날 것을 먹고 헐 벗고 취하고 거짓말을 하는 삶과 사랑이었다. 그와 그녀를 보고 있자면 오래도록 내버려질 거고 언젠가 그렇게 죽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죽었으면 했는지도. 그녀의 귀를 막고 눈을 막아도 그녀는 어떻게든 그녀가 있을 자리가 퐁네프 다리 위도, 더더욱 그의 곁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녀는 어느 날 문득 그에게 나타난 거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릴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거짓말을 하고 그녀에게 그를 제외한 어떤 것도 주어질 수 없도록, 오직 그녀가 그만을 바라보고 들을 수 있도록 다른 세상을 지우려 한다. 그래도 겁이 날 땐 그의 몸을 스스로 헤친다. 그녀의 존재 앞에 그는 보잘 것 없는 어느 부랑자. 널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었어, 날 잊어. 그녀는 그에게 잊는 법을 가르쳐 준 적도 없이 여전히 잔인하게, 여전히 그를 하찮게 만들며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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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일, 좀 더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 사실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하는 일, 사랑했다는 과거, 아니라는 지금. 그런 것들은 무섭고 너무 무서워서 우습다. 사랑하고 이제 그만 사랑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과 그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것. 반복한다고 뭔가를 깨닫거나 다음 차례에는 좀 더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할 것이다. 여전하거나 확대된 고통의 범주를 오가며 우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나의 의지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명령 앞에 굴복하고 있다는 걸 느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그 밑바닥을 들여다볼수록 어찌나 소중한지, 잃는다는 생각만으로 우린 아찔할 것이고, 그래서 상대방을 끌어안은 채 고통 속에 살기를 욕망한다.


퐁네프의 연인.
왜 떠날 수가 없니,
왜 그렇게나 사랑하니.


그들의 사랑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살기 위해 아무 설명도 필요 없이 무조건적인 생의 욕망이 들끓듯이 사랑하면 그만이었다. 아무 문법도 약속도 없는, 무질서하고 참혹해지는 방식이다. 나의 사랑도 지극하고 지대하게, 날뛰거나 열광하며, 발가벗은 채로 질주할까. 사랑하는 일이 나의 소관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여태 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거나 스스로 멍청해지고 슬퍼지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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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은 내가 하는 생각 중에 가장 쓸모 없고 하찮은 생각이었으면 한다. 정확한 거, 마치 손에 잡힐 듯한 그런 어떤 분명함이 없다 해도 멍청하고 미련하게 무작정 믿을 수 있다. 나는 조롱거리가 될까. 어린아이들은 빙글빙글 돌을 던질까. 사랑 앞에 확신에 찬 고개짓이란 제일 멍청한 짓이겠지만,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크게 할 것이다.

버려진 사람의 자세로 사랑하고 싶다.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단 하나 버려진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 버릴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단 하나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것. 그런 것을 대하는 사람처럼 무엇보다 간절해서 무서우리만치 사랑하고 싶다. 영영 깜깜하고 차갑거나 섬광으로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을 때까지도. 맹목적으로 말이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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