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6가지 혐오 : 여성, 장애인, 외노자, 군대, 성소수자, 그리고 동물

글 입력 2018.01.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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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면서 한창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두고 대학생들 간에 논쟁이 오가던 때였다. 당시는 학교 축제가 다가오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있는 줄도 몰랐던 성 소수자 동아리가 최초로 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성 소수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앨라이’들에 의해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친구에게 축제 소식을 전했다. 그 때 친구 입에서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단어는 ‘극혐’이었다. 당시의 나는 싫은 소리를 할 줄 모르는 탓에 그저 화제를 돌리는 것으로 그쳐버렸다. ‘그래, 싫을 수도 있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1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한 남자친구에게 밤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몇 분에 걸쳐 ‘넌 내가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지?’라는 말을 연거푸 반복했다. 애먼 말만 한참을 늘어놓던 그 친구는 끝내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털어 놓았다. 아, 그 친구에게 여지껏 여자 친구 좀 사귀라며 장난으로 툭툭 던졌던 말들이 도리어 가슴을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가감 없이 내뱉었던 그 친구가 떠올랐다. 혐오와 더불어 혐오의 타깃까지도 늘 내 주변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혐오자가 아니라고 믿어왔으나 실은 방관자였고, 결국 혐오자였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그 이후로 혐오의 문제는 내 삶 속으로 점차 스며들기 시작했다.

 혐오가 나쁘다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이는 대다수가 공유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처럼 피상적인 합의 이면에는 혐오를 재생산하는 핵심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우선, 가해자가 스스로 가해를 일삼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알면서도 ‘장난’이나 ‘관습’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혐오를 자행한다. 그것은 쿨한 것이고, 유머러스한 것이며, 여유로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임에도, 혐오의 정의와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기 일쑤다. 알면 알수록 해서는 안 되는 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늘어나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지는 무자비한 폭행으로, 보이지 않는 위협은 실질적인 위협으로 이어진다. 불편함이란 사안을 간과하도록 하는 원동력이고, 혐오가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리고 <그건 혐오예요>의 저자이자 독립영화 감독인 홍재희는 이렇듯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혐오의 진원지를 분명히 짚고 있다. '혐오 입문서'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건 혐오예요>는 이론적,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비주류의 길에서 오랜 시간 ‘혐오’라는 주제에 침잠해온 여섯 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직접 부딪힌 그 높고 단단한 혐오의 벽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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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자 작가인 홍재희


혐오는 인간의 존엄성을 산산조각 내
그 사람을 하찮게 여기도록 한다.
차별과 혐오는 바늘과 실이다.

누군가를 차별하면
그 대상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차별당하는 사람을 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의 악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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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여성이 혐오하는 여성은 누구인가 : 경순 감독



애먼 여자들을 두들겨 패는 이유
“개새끼들, 뭣도 모르면서...”
‘그 여자'와 나는 다르다는 구별 짓기
페미니즘은 실로 남성에게도 이롭다


 홍재희 작가가 여성이니만큼, <그건 혐오예요>의 첫 주제는 여성혐오다. 혐오엔 논리가 없어서 그것을 논리로 이길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논리가 있는 게 더 위험하다. 자신만의 언어로 철두철미하게 만들어 낸 혐오의 논리는 실제 혐오에 무관심한 이들을 쉽게 설득하기도 하고,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못해 사고의 전환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은 논리로 승부하는 일이다. 왜 혐오가 잘못된 것이고, 어째서 혐오로 인해 약자가 고통받는지를 그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페미니즘과 관련해 세간에는 수많은 논쟁들이 있다. 그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논리'가 전파될 때,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에 금이 갈 때, 사회는 변화하는 게 아닐까. <그건 혐오예요>는 여성으로 시작해 동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혐오를 비판하는 짧고 굵은 논리들로 뜨겁게 아우성친다.


소위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선거권이 주어진다고 해서
즉 여성이 좀 많아졌다고 해서
더 많은 올바름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남성이 많다고 해도 마찬가지고요.

남녀평등이 뭐냐고요?
남녀 양쪽 힘겨루기가 비슷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바로 실질적 평등이에요.

p.30-31


:)  이 책에 등장하는 감독들의 작품을 직접 만나보는 것도 혐오와 대면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소개해본다. 저서에 나오는 감독 소개를 바탕으로 한다.

 <민들레>(1999), <애국자 게임>(2001), <높은 언덕>(200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쇼킹 패밀리>(2006), <가난에 대한 연대 - 사우스레일 주민들의 이야기>(2008), <잼 다큐 강정>(2011), <레드 마리아>(2011), <레드 마리아2>(2015)



2장 - 그건 장애인 혐오라고 조목조목 알려 줘야죠 : 이길보라 감독



“그건 혐오야” 조목조목 알려 주기
우리는 언젠가 장애인이 된다
그의 자리에서 그의 삶을 상상할 것 
“우주에선 청각장애인들이 가장 잘 소통할걸요!”


 얼마 전 에세이 <보암보암>에서 영화 <원더>를 주제로 기고한 적이 있다. 글의 끝에서, '참고' 란에 지금 소개하는 이 책, <그건 혐오예요>를 넌지시 새겨 놓았는데, 이는 사실 일종의 떡밥이기도 했다.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책에 대해 궁금해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던진.

 에세이에서 참고했던 부분이 바로 이길보라 감독의 '상상력' 이었다. 역지사지, 감수성 등 타인에 대한 이해를 역설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이 있으나 상상력이라는 단어만큼 와닿은 적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과 장애인이 겪는 고충과 슬픔을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상상할 수 있다면 과연 쉽게 혐오를 입밖으로 내뱉을 수 있을까?


 지금 그 말은 혐오야.
조목조목 조곤조곤 알려 줘야죠.
그게 왜 혐오인지를 차근차근 알려줘야죠.

p. 58

남의 일을 내 일로 여길 수 있는 마음, 역지사지
그것이 바로 인권 감수성이자 공감 능력인거죠.

p. 68

 
:) 길 위에서 배우는 '로드 스쿨러'인 이길보라 감독은 탈학교 청소년과 부모님의 이야기를 거쳐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이다.

 영화 <로드 스쿨러>(2008),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
 저서 ⟪길은 학교다⟫(2009), nbsp;⟪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



3장 - 한국인들은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알아요 : 주현숙 감독



    자기 나라에선 그들도 빛나는 존재
    “한국인들은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알아요”
    가장 모욕적인 말 “너희 나라로 가!”
    분풀이 대상이 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아무리 혐오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그건 보통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우가 많다. 내가 외국인 노동자보다는 여성혐오와 동성애 혐오에 더욱 분노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본업이 사회 운동가가 아닌 이상 어떤 사안을 두고 항상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몰라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소한 알아야 하고, 고민해야 하며,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나를 대신해 전면에서 혐오와 투쟁하는 이들에게 응원이 되고, 사회를 보다 빠르게 변화시키는 저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3장은 나의 무지와 무관심을 꾸짖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서구 백인 중심의
    촌스럽고 천박한 차별 의식인 거죠.
    한국 사람은 국적,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해요.

    예를 들어 우리는 같은 아시아인인데도
    동남아에서 온 사람과 일본인을 구별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가 백인인 줄 알아요.

    p.103-104


    :) 주현숙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일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이다.

     <여정>(2003),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2004), <멋진 그녀들>(2007), <가난뱅이의 역습>(2012), <족장, 발 디딜 곳>(2014), <니가 필요해>(2014), <빨간 벽돌>(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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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 ‘개인’을 지우는 군대를 거부합니다 : 김경묵 감독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싫다
      군대도 감옥도 자아를 지운다
      공포 사회를 기획하는 자들
      군사주의와 성소수자는 공존할 수 없다
      남자들은 상처받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남성 감독인 김경묵 감독. 남성의 군복무 문제는 개인적으로 상상력이 한없이 부족한 분야이기에 새로운 지점이 많았다. 그는 군대가 단순히 남성만의 문제가 아닌 자유와 개성에 대한 탄압이며, 전체주의의 열정이라고 주장한다. 연예인들의 경우 군대에 다녀오면 '까방권'을 획득한다고 한다. 당당하게 군대에 다녀온 사람은 악플로부터 어느 정도 방어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온갖 비리를 이용해 제도로부터 특혜를 받는 이들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비리'를 이용했기 때문이어야지 단순히 '군대에 가지 않아서'가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경우도군대를 가지 않거나 공익 혹은 면제인 경우 은근히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와 반대로 군필자라는 자부심과 자만심은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솔직해지자. 군대가 남성에게 불이익만 준다고 할 수 있는가? 불이익만 주는 존재가 어떻게 자존감을 드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단순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아닌가? 군대는 누구때문에 갔는가? 진짜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가? 징병제는 정당한가?


      사실상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다 군대 체제예요.
      군대 시스템 아닌 곳이 없어요.
      가정부터 시작해서 학교, 회사, 조직 전부 다.

      p.135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자기 시간을 박탈당한 게 맞고,
      이에 대한 정당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이 필요해요.

      하지만 여성들도 한국의 군사주의 문화와
      가부장제의 피해자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남성이 여성을
      공격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여성이 박탈당하고 배제당한 자기 권리를 찾으러
      남자처럼 군대를 가야 하는 문제도 아녜요.
      그들의 분노가 향해야 할 방향은
      이 병역 제도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는
      국가와 기득권층이죠.

      p.145


      :) 제도를 따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지켜나가는 김경묵 감독. 남성과 여성, 동성애와 이성애,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가는 작품을 만든다.

       <나와 인형놀이>(2004), <얼굴 없는 것들>(2005), <청계천의 개>(2009), (2009), <줄탁동시>(2011),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2013)



      5장 - 처음은 성소수자겠지만, 마지막은 누가 될지 모른다 : 이영 감독



        동성애 싫어한다고 말도 못해?!
        어떻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죠?
        ‘종북 게이’라는 프레임의 정체
        누구나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선호와 혐오, 그 흐릿한 경계를 헤매는 나를 향해 이영 감독은 분명히 말한다. 단지 누군가를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러한 증오 표현이 공적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발화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적인 발언도 어쩌면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혐오한다'고 말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증오를 굳건히 하는 동시에 그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대상을 혐오하는 게 자랑은 아니지 않은가?


        혐오 발언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더욱 힘을 얻고 있어요.
        이 사람들은 '내가 싫어한다는데,
        내 생각을 마음대로 말도 못해?'라고 이야기해요.
        어떤 분들은 '너희들이 권리를 주장하니까,
        우리도 혐오하는 거야'라고 말해요.

        P.160


        :) 오늘날 최전선에 서 있는 여성 퀴어, 이영 감독.

         <거북이 시스터즈>(2003), <이반검열>(2005), (2007), <불온한 당신>(2015)



        6장 - 장 보듯이 동물을 사는 사회 : 황윤 감독



          손쉽게 쓰다 버려지는 ‘비인간 동물’
          살처분과 홀로코스트
          동물이 살기 좋은 곳이 인간이 살기 좋은 곳
          ‘채식’은 내 먹거리를 선택하겠다는 선언
          살아남고 싶다면 축산업을 해결해야


           개인적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 혐오 중 가장 무지했던 혐오가 동물 혐오였다. 동물을 무서워 하다보니, 그들이 겪는 고통에도 무관심했던 것이다. 아마 나와 같이 혐오의 대상으로 동물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좁은 닭장에서 끊임없이 달걀만 낳게 하는 일이, 두들겨 패야 맛있다며 동물에게 폭력을 행하는 일이, 정신병을 앓아가며 대중들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일이, 그리고 동물과 인간 사이에 위계를 두는 일이 혐오가 아니라면 달리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채식을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최소한 동물들의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해가면서 사육할 수는 있다. 동물은 혐오하면서 다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황윤 감독의 생각이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표현에는
          '인간은 동물이 아닌 다른 존재',
          '인간은 동물의 지배자, 관리자, 보호자'
          라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표현 대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다소 낯설고 길지만,
          우리가 동물임을 잊지 않을 때
          거기서부터 많은 지배-피지배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p.215

           
          :) 환경과 생태, 생명에 대해 지속적으로 발언해온 황윤 감독은 인간 중심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녀는 동물과 인간을 이어 주는 중개자이자, 전달자다.

           <작별>(2001), <침묵의 숲>(2004),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



           

           책 읽는 속도가 무지하게 느린데도 불구하고 가끔은 단숨에 읽히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내뱉었더랬다. "책 정말 잘 골랐다!" 혐오와 혐오의 논리, 그것이 재생산 되는 과정, 그리고 혐오로 인한 피해에 이르기까지 좁은 지면에 차곡차곡 담고 있는 책, <그건 혐오예요>. 여섯 감독의 이야기를 저자가 다시금 편집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 측면에서 이를 또 다시 가공하는 것은 본 리뷰가 할 역할이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그건 혐오예요>라는 책과 혐오라는 문제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이미 여섯 가지 혐오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에게는 공감을, 몰랐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책의 끝자락에 이르러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불편해지면서까지 혐오를 알아야 하는 그 이유를 반문할 수도 있겠다고. 그 때, 미리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그건 혐오예요>는 내게 시 한 편을 건넸다. 나는 이 시가 문제의식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는 이들에게 답이 되리라 믿는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에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처음 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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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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