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년이 온다 [문학]

영혼이 부르짖는 비극
글 입력 2018.01.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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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순된 사건을 다룬다. 운명을 거스른다면 그 인간은 파멸한다. 그럼에도 비극 속에서 영웅은 드러난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받아드리고,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비극은 시와 다르게 순간을 다루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는 광주에서 계엄군의 잔인한 학살에서부터 그들이 석방되고, 대통령의 죽음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 결코 순간의 감정, 생각을 다루지 않고, 긴 시간 그들의 감정이나 생각이 변화되는 과정을 다룬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총에 맞거나 곤봉에 맞아 죽는 사람들을 보고 만약 자신이 그 시대, 장소에 있었더라면 ‘자신도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공포를 느낄 것이다. 또한 죽고, 고문을 받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따라서 『소년이 온다』 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소년이 온다』 중 자신의 운명을, 주어진 상황을 바꾸려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드리는 영웅성이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고, 희랍 비극의 특징인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는’ 인물도 등장한다. 김진수와 한 조였던, 이름 없는 남자의 삶을 통해서 이 소설이 비극이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그는 죽음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고뇌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인물을 통해서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맛본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가 인생의 목표인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가 어떤 이유에서 도청에 남아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청에 끝까지 남아있었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것이다. 그가 죽기를 각오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는 계속해서 죽음 앞에 용감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한다. 계엄군이 도청에 다다르기 전까지, 그는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도청에 남아있음으로 운명을 피하려고 노력했고, 그의 의지를 발휘했다. 도청에 남아 있었을 때, 아직 그는 죽음에 대해서 깊이 느끼지 못했다.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그는 자기 안에 숨어있던 ‘양심’을 느낀다. 죽음 앞에서 더 이상 두렵지 않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양심을 느낀다.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끼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허파가 터질 듯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결국 그는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는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고문을 받는다. 그는 석방되었지만, 그의 삶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파멸 끝에 그가 얻은 것은 인간은 잔인하다는 깨달음 뿐이었다.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또한 그는 자신의 영혼의 존재를 깨달았다. 영혼이 깨지기 전에는 영혼의 존재도 몰랐다. 그가 죽음에 대해서 고뇌하고, 그의 삶은 무너졌고, 영혼은 유리처럼 깨졌지만, 그는 자신의 영혼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고통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성희와 같이 노동권에서 활동했던 선주. 그녀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녀에게 시민군들의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녀는 선뜻 승낙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위에서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 그들에게 저항을 했다. 그녀도 또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타인과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이렇게 그녀는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파멸하게 되었다. 앞으로 그녀는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는, 신에게 사함 받기를 거부하는 자가 되었다. 즉, 그녀는 삶의 주인이 되었다.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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