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오페라!] 눈 아가씨, 스네구로치카

오페라를 읽어봅시다
글 입력 2018.01.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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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오페라
오, 오페라!
Snegurochka






옛날 옛적에, 추위와 봄의 사이에서 눈 아가씨, 스네구로치카가 태어났어요. 아름답게 성장한 스네구로치카는 어느 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습을 보고는 그것이 부러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네구로치카는 사랑을 알지 못했어요. 그녀에게 사랑을 호소하던 청년 렐(Lel)도 유일한 친구였던 쿠파바(Kupava)도 그녀를 떠나갔지요. 황제는 그녀에게 누구를 사랑하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저의 심장은 침묵에 잠겨 있을 뿐입니다.’

황제는 누구든지 스네구로치카의 사랑을 얻는 사람이 그녀와 결혼하게 될 것이며 큰 상을 받게 되리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스네구로치카는 렐이 다른 여자와 서로 사랑을 다짐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게 되었어요.

호수 앞에서 스네구로치카가 어머니를 부르자 어머니 봄은 그녀에게 꽃목걸이를 건네주고, 얼마 안 있으면 떠오를 햇빛을 피하라고 말하며 사라집니다. 그런데 스네구로치카가 햇빛이 비추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등장한 미즈기르의 눈빛에서 스네구로치카는 사랑을 깨닫게 되었어요.

백성들이 황제와 함께 등장하자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미즈기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한 줄기 햇살이 드리워 스네구로치카의 몸이 녹아 사라져버렸어요. 미즈기르는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황제는 영원한 겨울의 끝을 선포하며 백성들과 신을 향한 송가를 소리 높여 부릅니다.



햇살.JPG
Снегурочка (1952)


러시아의 산타는 파란 옷을 입는대요. 에이, 무슨 소리냐고요? 하지만 사실인 걸요. 푸른 옷의 산타는 바로 제드 마로즈(Дед Мороз), 풀이해보자면 서리 할아버지에요. 러시아어로 '마로즈'는 한파를 뜻하는데, 즉 제드 마로즈는 추위를 의인화한 존재랍니다.

율리안력(Julian Calendar)에 따라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에 시작돼요. 그 날이 되면 푸른 옷을 입은 산타와 한 명의 아가씨가 방방곡곡에 나타나죠. 제드 마로즈의 곁에 서 있는 창백한 금발에 푸른 눈의 미인, 그녀가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 스네구로치카(Снегурочка)입니다.

스네구로치카. 발음이 어렵다면 스네를 스노우(snow)라고 읽으셔도 좋아요. 그녀를 소재로 쓰인 이야기의 제목과 같이, 스네구로치카는 'The Snow Maiden', 한국어로 눈 아가씨 혹은 눈 처녀 따위로 번역되거든요. 흔한 이야기에요. 자식이 없었던 한 노부부가 어느 날 눈으로 여자아이를 만들었는데, 눈사람이 진짜 사람으로 변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요정은 끝내 사라지기에 신비로운 존재인가요? 어느 날 숲속에 놀러간 여자아이는 그만 화톳불에 녹아 사라져버리고 말았어요. 끝내 사라져버리는 차가운 여자아이. 이런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를 가지고 알렉산드르 오스트로브스키(Alexandr Ostrovsky)는 희곡을 썼고 그것을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Korsakov)가 오페라로 만들었답니다. 아휴, 이름 참 어렵다. 그쵸?


작가들.jpg
좌 : 알렌산드르 오스트로브스키(Alexandr Ostrovsky)
우 :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 Korsakov)


하지만 작가들의 이름은 어렵더라도 스네구로치카의 이름만은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스네구로치카는 아름답고도 신에 가까운 존재 치고는 퍽 가여운 존재가 아니던가요. 아니, 사실 그건 이름도 아니지요. 눈 아가씨, 그저 그녀의 존재를 일컫는 말 외엔 이름조차 갖지 못한 그녀에요.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생각을 저는 생각을 더듬어 봅니다. 스네구로치카는 겨울의 죽음, 녹아 사라지는 추위의 끝이지요. 봄이 오기 위해 추위가 죽어 사라져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죽음이란 게 왜 꼭 사랑의 형태로 표현되어야만 했을까요?


위대하신 왕이여! 당신이 100번을 묻는다면 나는 100번을 대답하리이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창백한 아침, 영혼의 선거가 열리자 나의 사랑이 마침내 두 팔에 달려가 안겼나이다.

(태양의 빛줄기가 아침 안개를 꿰뚫고 눈 아가씨에게 떨어진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행복입니까, 죽음입니까? 이 얼마나 기쁜지, 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아, 봄의 어머니시여, 감사합니다. 감미로운 사랑이 내 안에 흘러 넘치는구나, 이 얼마나 절망적인가! 안녕히 계시길, 모두들. 안녕히 가세요, 안녕, 안녕 내 사랑! 나의 친애하는 당신! 나의 마지막 모습, 당신!


사랑은 감미로운 감정이라고 다들 이야기합니다. 사랑의 비유는 타오르는 불꽃이고 흘러가는 물이지요. 그렇다면 얼음과 눈에게는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걸까요? 차가운 것을 형상화한 다른 작품을 보더라도 그들 존재에게 사랑은 금기로 존재합니다. 금기를 깬다면 존재가 소멸해버릴 불가침의 영역 말이에요.

스네구로치카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름다운 동시에 슬픈 이야기가 됩니다. 그녀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동시에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자신을 파괴할만큼 강력한 사랑의 힘은 관중에게 충격을 선사하고, 동시에 더 이상 사랑을 알지 못하는 무(無)로 돌아가버린 스네구로치카를 애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요? 자신을 흔들고, 깨부수고,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는 것 말이에요. 사랑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본래의 자신을 잃을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새롭게 태어나지도 못한 채 형체 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과연 그녀에게 사랑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을까요?


영화 클립.JPG
“순간의 사랑이 수년간의 슬픔보다 더욱 귀중하단다.”
파벨 카도츠니코프(Pavel Kadochnikov)(1969)


스네구로치카가 호수 앞에서 어머니를 불렀을 때 나타난 '봄의 아름다움'은 그녀에게 꽃목걸이를 건네주며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의 화환이라고 하고 그녀에게 사랑을 알려 주었다 말해요. 꽃은 지고 봄도 사라지는데, 봄이 건네준 꽃목걸이가 그녀에게 사랑을 알려 주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봄이 알려준 사랑이 꽃이란 것은, 마치 결국은 사랑도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요? 그럼에도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슬그머니 라캉의 사랑을 들고와 봅니다. 라캉은 사랑이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지요. 저는 그것이 퍽 스네구로치카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안에는 자신이 모르는 자신의 부분이 존재하는 법이지요. 그러니 사랑이란, 자신도 모르기에 소유하지 못했던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스네구로치카가 사랑을 깨달은 순간 사라져버린 것은 어쩌면 자신을 너무 많이 내어주었던 탓일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원래의 자신이 존재하지 못할 만큼 '몰랐던 자신'을 내어줘버린 거에요.

계절은 가고 원래의 자신마저 변하며 매 순간 사라져가지만, 사랑에 내어준 자신은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 '소유할 수 없는 나'였기에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니 사랑이 필요 없던 그녀도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요. 그것이 그녀가 세상에 자신을 남기는 방법이었다면 말입니다.

계절이 돌아오면 어쩌면 그녀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런지, 할 수만 있다면 스네구로치카의 부활을 바라며 마지막으로 오늘의 노래를 듣고 가겠습니다. 스네구로치카와 미즈기르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이 글에는 개인적인 감상과 오역·의역된 내용이 다수 들어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 원작 내용의 편집이 이루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참고/감상>
(3) 2011년 러시아의 오페라 공연 : 클립1 / 클립2


[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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