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활에서 파생된 즐거움에서 시작된 디자인, 알렉산더 지라드

글 입력 2018.01.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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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생활에서 파생된 즐거움에서 시작된 디자인
알렉산더 지라드
 

필자는 사실 천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뜬금없는 선언에 죄송스러움을 느끼는 바다. 그 단어가 주는 계급적인 측면보다는, '천재'라는 단어 뒤에 숨어버린 자잘한 것들이 아쉬운 것이다. 알렉산더 지라드는 천재 디자이너로서 이야기된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의 디자인은 놀랍다. 하지만 필자가 전시관에서 본 그 놀라운 능력은 단순히 천부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역사적이었다. 후에 천천히 서술하겠지만, 그는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다소 훈련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의 디자인적 센스가 빛을 발한 부분이 있어도,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감상한 필자로서는 그 아름다움의 코어에는 그가 세상에 가지고 있는 특별한 필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바라본 세상에는 뭔가 '즐거운 것'이 있었다. 그가 한 것은 그 즐거움을 주변에 그려놓고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가 반복해온 것이었다.

*

누군가의 작품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잠깐 구경하는 것과 같다. 필자는 친한 친구와 라디오 가이드 없이 전시관을 돌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라드의 전시관은 생동감과 약간의 장난스러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필자와 친구는 조금 낄낄거리면서 작품을 보았다. 발걸음에 무거운 감상보다는 즐거움이 묻어나왔다. 근래에 본 전시회 중 가장 상쾌한 기분으로 전시관을 구경했다는 것으로 그 기분을 간략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오면서 갤러리보다는 이케아 같다는 말을 나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감상은 그의 예술성이 상업적고 명작의 아우라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에 손에 잡힐듯한 친숙함과 즐거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몇 작품은 아직도 남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생각해보라, 그 누가 글자와 모형 사이에서 그렇게 즐거운 리듬을 발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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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상 속 새로운 세계, 파이프 왕국

넓은 전시장 중 그 중 한동안 빠져나올 수 없는 섹션이 있었다. 지라드가 학창시절에 건국한 파이프공화국 파트였다.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상의 나라에 깃발을 달고, 언어를 만들고, 연휴를 만들고, 카드 게임을 만들었다. 섬세하게 그려 넣은 그림들은 아름답고 독특하면서도, 어릴 적 우리의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필자가 초등학생 때는 한창 공책 게임이 유행했었다. 필자는 체력 바와 마력 바를 만들어 거대한 전쟁을 진행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라드는 그 취미를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단순한 공책 하나를 넘어 그만의 아름다운 문자를 만들고, 심지어 편지까지 썼다. 그 수많은 자료가 그의 즐거움을 고스란히 입증하고 있다. 어른들 입장에서 부끄럽다고 하면 부끄러울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즐겁게 추구했다. 그가 어린 시절 디자인한 수많은 스탬프들은 앞으로 디자인할 것들을 조금씩 닮아있다.

초반에 작은 컨테이너처럼 되어 있었던 이 세션은 전체 전시회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지라드는 알파벳을 상형문자로 바꾸거나 형태를 아름답게 바꾸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덩쿨 같은 곡선을 많이 썼는데, 후에 그가 할 디자인들은 이들의 형태를 조금씩 닮아있다. 무엇보다도 큰 의미에서 파이프공화국은 (그의 정신세계에서 실현되었지만) 토털디자인의 시초처럼 보였다. 토털디자인이란 한두 가지 소품을 디자인하는 독립적 디자인이 아니라, 모든 소품과 인테리어를 맞추는 종합적 디자인이다. 지라드는 이때부터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건설하는 꿈을 꾸고, 레스토랑과 비행기로 그 꿈을 실제로 이루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려는 열정은 독특한 감상을 불러일으켜 필자와 친구는 '지라드는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면 제2의 나니아 연대기를 썼을 거야'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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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Face, Environmental Enrichment Panel Motiv Daisy Face, 1971, 171 x 135 x 0,3 cm.jpg
Alexander Girard, Daisy Face, 1971
@Vitra Design Museum


2. 단순한 패턴에 존재하는 리듬, 그만의 세계

전시회장의 중간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일상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섹션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오른쪽 벽이었다. 그는 다양한 문자로 텍스처를 만들어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숫자들이 그의 손에 따라 줄을 맞춘 후 부터는 기능을 상실하고 작품이 되었다. 그것은 일상을 사랑으로 지켜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디자인이었다. 지라드는 문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에서 디자인의 패턴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보통 자연에서 디자인의 소스를 얻었다 하면 꽃을 가장 먼저 생각해내는데, 그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서도 아름다운 패턴을 찾아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디자인은 1971년 디자인한 데이지 페이스였다. 양팔을 뻗은 나무 요정같은 그림에 지라드는 얼굴처럼 보이는 곳에 작은 두 눈을 찍고 미소를 짓게 했다. 필자는 이 디자인이 그가 일상에 가진 사랑과 그만이 가지고 있는 즐거움이 잘 섞여 들어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파이프 공화국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안락하게 품어지길 바랐던 것 같다. 토털 디자인은 물론이고, 전시회장의 중간에 움푹 들어간 쇼파가 가장 그랬다. 자신이 만든 것들 사이에서 누워있는 지라드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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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스러운 세계의 시민들

지라드전을 즐겁게 관람하고 온 관객으로서 그의 장난감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감상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필자의 취향이 섞여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그가 만든 작은 모형들을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존재들은 모두 '선하게만' 생기지 않았지만 모두 사랑스럽다. 그중에는 악마도 있고, 해골도 있고, 천사도 있다. 하지만 그 모두가 그리 미운 얼굴을 하지 않는다. 이런 취향은 그의 포크 디자인 수집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모은 작은 인형들과 장난감들은 조잡하면서 사랑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것들은 사랑스럽지만 거대하고 작은 세계다.

필자는 지라드가 파이프 공화국의 황제로서 그들을 굽어살피는 상상을 한다. 그토록 작은 장난감들이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는 것도 그들의 조물주가 그 작은 것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겁고, 그 센스는 아직까지도 현재로 이어져 우리들의 미소짓게 한다. 무겁지 않지만, 사랑으로 가득 찬 전시회는 우리에게도 그 방법을 조금씩 일러주는 것 같다. 우리도 오늘부터 조금씩 우리의 문자와 환경을 사랑스럽게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오늘도 상상의 마커를 들어 노트북에 눈코입을 그려본다.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 공식 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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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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