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넘치는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 [전시]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 展
글 입력 2018.01.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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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Heart, Environmental Enrichment Panel #3017, 1971, 134 x 129 x 0,3 cm.jpg
Love Heart, Environmental Enrichment Panel #3017, 1971 ⓒVitra Design Museum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눈길을 사로잡고, 취향을 타지 않으면서도 개성 있는 이 하트를 디자인한 사람은 알렉산더 지라드(1907-1993)라는 20세기 디자이너이다. 한 작가의 작품만을 다룬 기획전은 오랜만인데, 특히 디자이너는 2016년도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알폰스 무하 展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한 사람의 작품을 다룬 전시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방대하다. 생전에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인테리어, 건축, 텍스타일, 그리고 장난감 등에서 재능을 펼친 디자이너였고, 기업이나 마을 전체를 디자인했던 토털 디자이너였으며, 직접 전시를 맡아 진행했던 디렉터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 展>은 그야말로 20세기 모던 디자이너의 세계를 알렉산더 지라드라는 한 대표 작가의 업적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던 전시다. 이 글에서는 나의 관점에서 본 지라드 디자인의 강점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풀어나간다.
 

 
실험과 디테일


Wooden Doll. ca. 1952, 27,5 x 7,5 x 4,7 cm.jpg
Wooden Doll. ca. 1952 ⓒVitra Design Museum


전시의 1부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는 지라드가 피렌체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초기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전시장 중간에 막으로 가려둔, “파이프 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수상쩍은(?) 공간이 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지라드가 1917년부터 1924년까지 다녔던 영국 베드포드 모던학교 시절의 프로젝트를 볼 수 있는데, 파이프 공화국은 바로 지라드가 창조해낸 상상 속의 나라 이름이다. 지라드가 직접 모든 것을 고안한 파이프 공화국의 지도, 우표, 동전 등을 구경하면서,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이 지어졌다. 어린 시절 언니와 했던 놀이와 비슷해서다. 순수한 어린 시절엔 다들 이렇게 상상 속의 공간을 창조하며 놀았구나 하는 생각에 추억에 잠겼다.

다만 그때의 나와 지라드가 다른 점은 그의 엄청난 “디테일”이다. 파이프 공화국과 주변 나라 사이의 관계부터, 그들이 사용할 비밀 언어까지 지라드는 상상 속의 나라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가 이후에 보여준 그만의 섬세하고 독특한 디자인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1부에서는 그가 학생 시절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인 건축&인테리어 디자인, 디트롤라(Ditrola) 사의 라디오와 레코드 플레이어 디자인, 그리고 취미로 만들었던 귀여운 나무 인형까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라드가 디자인의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예술과 실용성 사이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실험했던 것은, 이후에 기업 전체, 혹은 도시 전체를 디자인하는 토털 디자인(Total Design)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뒷받침이 되었다.

 
 
유연한 디자인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토털 디자인을 하려면 여러 가지 능력이 받쳐주어야 하는데, 바로 부분들의 세밀한 디테일과 개성을 살리는 능력, 그러면서도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그것이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가지기 위한 독특함을 살리는 능력이다. 전시의 3부 “기업에서 토털디자인으로”에서 소개된 지라드의 기업 디자인 프로젝트를 보면 그가 이러한 능력을 모두 갖춘 디자이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래니프 항공사(Braniff International Airlines)의 의뢰를 받아 진행된 지라드의 토털 디자인은 기업의 로고, 비행기 외관, 티켓, 내부의 가구와 식기류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개별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디자인하면서도, 승객 라운지에 놓인 소파 하나만 보고서도 그것이 브래니프 항공사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고안했다. 그 비밀은 기업의 시그니처 글씨체와 색채를 통일성 있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Braniff International, ca. 1965, 8,9 x 15,2 x 0,1 cm.jpg
Braniff International, ca. 1965 ⓒVitra Design Museum


뉴욕시티에 있는 라 폰다 델 솔(La Fonda Del Sol)이라는 레스토랑의 토털 디자인도 그의 디자인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예시인데, 특히 태양을 형상화한 레스토랑의 로고는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40여 가지 이상으로 변주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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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Fonda del Sol matchbox designs ⓒVitra Design Museum
 

첫 번째, 다양성과 흥미,
그리고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깊이 있는 디자인을 한다.

두 번째, 아름다운 형태를
방해받지 않고 감상하기 위해서,
중요하지 않은 아름다운 모양은 제거한다.

- 브래니프 항공사 디자인을 맡을 때
지라드가 세운 원칙.
전시장 캡션 중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넘치는 디자이너


세상에는 여러 가지 디자인이 있지만, 지라드의 디자인을 보면서는 유독 “따뜻함”을 많이 느꼈다. 그가 자주 사용한 컬러풀한 난색 계열, 파스텔 계열의 색상 때문인가, 혹은 심플한 디자인 속에 위트 있게 슬쩍 집어넣은 곡선 때문인가 생각해봤지만, 진짜 해답은 전시의 4부 “수집과 설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라드는 어린 시절부터 포크 아트(folk art; 민속 공예)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모은 수집품을 바탕으로 직접 전시디렉터를 맡아 여러 차례 전시회와 박람회를 열기도 하였다. 그 중 텍사스의 국제박람회인 헤미스 페어에서 지라드가 열었던 민속·원시 예술 전시의 이름은 바로 “매직 오프 어 피플 (The Magic of A Peop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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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ft for the poster Magic of a People, 1968 ⓒVitra Design Museum


이 제목처럼, 그가 수집한 멕시코, 인도, 일본 등의 포크 아트 소품들을 가만히 보면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노래하는 사내들, 뭔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아낙네, 아이를 품에 안은 여인… 서민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예술이 포크 아트이니 그들의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일 수밖에. 지라드는 이러한 포크 아트의 매력과 가치를 알고, 창조해낼 줄 아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디자인에 옮겼기 때문에 지라드의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친숙하다. 그의 디자인에서 느껴졌던 “인간미”는 결국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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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Girard on the La Chaise lounge chair designed by Charles and Ray Eames, 1949 ⓒVitra Design Museum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 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2017년 12월 22일 ~ 2018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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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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