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트라빈스키와 샤넬, 시대적 요구에 대한 대답 [영화]

글 입력 2018.01.20 23:1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57_e631dd3c-7d2b-4db5-9b92-af64c63d30c5_1024x1024.jpg
 


#Prologue


한 작곡가가 초조해하며 자신의 공연을 기다린다.

마치 한 부족의 일원들같이 분장을 한 사람들은 급하게 움직이고, 안무가는 걱정되는 듯 크게 소리치며 안무를 지도하고 있다. 옷을 갖춰 입은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하며 공연장에 들어오고, 곧이어 불이 꺼진 후 시작되는 무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이 공연은 너무나도 낯설다. 낮은 음들로 연주되는 도입부가 긴장감을 유발하는 순간 나타나는 무대의 모습은, 그들이 생각하는 틀 안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웅성대다가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나가기까지 한다. 너무나 격한 청중들의 반응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작곡가. 어디선가 이름만 들어보았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현대음악을 떠올렸을 때 가지고 있던 어딘가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이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 것은 한 수업시간에 보게 된 이 영화의 클립에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스트라빈스키는 전혀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치 공연장에서 화가 나 논쟁을 벌이는 이 사람들과 다른 세계에 살다 온 것처럼 말이다. 작곡가로서 스트라빈스키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곡을 만들게 되었고, 이런 곡이 왜 그에게는 그토록 자연스러웠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짧은 영상 이상의 스토리를 알고 싶었다.



#1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스트라빈스키와 샤넬


coco-011.jpg


스트라빈스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영화를 선택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인 만큼 실질적으로 샤넬의 비중이 크게 나타난다. 극의 상황을 주도하고 이끌어나가는 주요 인물이 샤넬이었으니 말이다. 샤넬은 봄의 제전을 관람하고 스트라빈스키의 후원자가 되면서, 그에게 ‘일’로서 혹은 ‘사랑’으로서 주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샤넬이 말년에 스트라빈스키와 특별한 관계였다고 언급한 내용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샤넬(1883~1971, 프랑스)과 스트라빈스키(1882~1971, 러시아→프랑스)는 거의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공간에서 생활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에, 비슷한 사회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이 활동했던 20세기 초는 음악, 무용, 회화 등 예술 전반에서 ‘새로움’이라는 테마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파리는 이러한 새로움과 예술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었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혁신성을 드러낸다.

당시 스트라빈스키의 경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많은 영향으로 러시아 민족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영화에서 주로 나타나는 그의 작품 <봄의 제전>에서도 원시적인 선율과 줄거리, 리듬 등 민족적이고 전위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러한 자신의 민족주의적 특성에, 새롭고 현대적인 음악 어법을 도입한다. 샤넬 역시 20세기 초의 사회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샤넬은 당시의 산업 발달, 여성의 지위 변화 등의 여러 사회문화적 상황을 인식하여, 여성에게 신체적으로 해방감을 준 절제되고 심플한 의상을 보여준다.



#2 더 새로운 것, 더 혁신적인 것을 찾아서


getImage.jpg


사회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어쩌면 그들이 영화 속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드러난 리듬은 당시에는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강약이 규칙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이전까지의 암묵적 전제에서, 그는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리듬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발레음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불협화음의 잇따른 사용과 원시적인 곡의 분위기는,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발레음악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샤넬은 패션에서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탈바꿈하면서, 그녀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게 된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이 샤넬이 입고 있는 옷의 소재인 저지는 남성의 속옷용으로 쓰인 것이었으며, 여성복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한 장면에서 그녀는 스트라빈스키 부인의 옷장을 들여다보며 러시아 농민들이 입는 ‘루바슈카’에 관심을 가지고, 곧이어 이를 모티브로 한 옷들을 제작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샤넬의 유명한 향수 No.5가 나타나는 과정 역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샤넬은 꽃향기보다 ‘여성’의 향기가 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모두 샤넬이 기존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며,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실험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3 실험, 혹은 시대적 요구에 대한 대답


s-mXhvJNNIU_maxresdefault.jpg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모두 당대의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였고, 그들이 추구한 ‘실험’ 혹은 ‘새로운 시도’는 변화한 시대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답해 나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하였던 스트라빈스키의 반응, 청중들의 논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어했던 그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샤넬과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주변에는 분명 그와 같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스트라빈스키 역시 계속해서 혁신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들에게 스트라빈스키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pilogue


스트라빈스키는 계속해서 변화되는 그의 음악 스타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고, 사회와 청중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봄의 제전> 초연 이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새로운 <봄의 제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았고, 현대음악 중 중요한 곡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듣는 현대인들은 음악이 그리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봄의 제전>이 2017년에 초연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우리에게는 ‘백조의 호수’같은 발레가 더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당시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아직까지도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샤넬의 패션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두 인물 모두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지만 왜 한쪽은 쉽게 받아들여지고, 다른 한쪽은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것일까.

현대음악은 100년 전의 것임에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영화를 통해, ‘청중들에게 수용되기 힘든’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의 심정이 어떠한지, 이러한 음악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과연 어떻게 나타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KakaoTalk_20171213_015808118.jpg
 

[김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