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디에도 없는 에레혼 [문학]

글 입력 2018.01.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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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erewhon)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에레혼의 정치, 사회, 관습은 우리가 사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아마 세상에 에레혼과 같은 곳은 없을 것이다. 그곳은 독특하다 못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상의 나라이다.

에레혼은 “모든 질병은 죄악이자 비도덕으로 여겨지며, 감기에만 걸려도 영주 앞에 끌려가서 상당 기간 투옥될 수 있는” 곳이다. 병에 걸리거나 몸이 이상해지면 재판을 받는다. 이 법의 논리는 이러하다. 병에 걸린 사람은 동료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악행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그들의 악행의 원인을 도덕적 불운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지금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에레혼에서는 이것이 바로 그들의 정의이다.
 

“나는 현존하는 기계 중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그보다는 현재의 모습에서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가는 놀라운 속도가 두려울 뿐이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어떤 존재도 그토록 빠르게 진보한 것이 없다. 우리가 아직 제어할 수 있을 때 이런 움직임을 경계하며 주시하고 제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현재 사용되는 기계 중에서 좀 더 발전된 기계를, 당장은 무해할지언정 파괴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된 것은 에레혼 사람들이 대하는 기계에 대한 태도였다. 그들이 세상의 모든 기계를 부수는 것은 언젠가는 기계에 지배당할 수도 있는, 그리고 심지어는 멸종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인간은 멸종된다는 사실이 두려웠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이제는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뉴스에서는 매일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10년 안에 사라질 직업’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더 이상 개발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에레혼 사람들이 기계를 파괴한 것과 우리가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하인은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주인의 생활을 잠식하며, 인간은 기계가 주는 혜택을 금하는 순간 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하루라도 스마트 폰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예전에는 핸드폰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아직은 핸드폰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 폰은 서서히 우리의 생활을 잠식했고, 결국 우리는 모든 생활을 스마트 폰에 의지하면 살아가고 있다. 에레혼 사람들은 이러한 미래를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계가 더욱 완벽하게 우리를 독재하지 못하게끔 우리에게 없어도 될 만큼은 기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기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미 기계는 우리의 생활 전반에 물들어 있고, 기계가 없다면 우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계를 부실수도, 발전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기계가 지금보다도 더 빠르게 발전하는 것은 이미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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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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