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가오나시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1.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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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모든 가오나시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1. 가오나시 연대기

 사랑이 뭡니까? 우걱우걱, 필자는 저 표현이 좋다. 얼마나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인가? 이해할 수 없으니 먹어버리고 잊어버리는 방식은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가오나시를 닮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랑이 뭡니까? 우걱우걱'은 상상 이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마음 속에 남은 빈 곳에 누군가를 채워주길 무의식적으로 바라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이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크다. 마음이 비었을 때 음식을 집는 것처럼 사랑도 손에 잔뜩 집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일단 삼키게 된다. 언젠가는 흡수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가오나시가 모든 것을 토해냈던 것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면 토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토를 해본 적 있는가, 알코올 때문이건, 폭식증 때문이건, 슬프지도 않은데 토하고 나면 괜히 눈물이 주륵 나온다. 신체적인 배출도 그런데, 마음의 배출은 더 서럽다. 삼켜지지 못한 것들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간혹 생각한다. 빈 곳을 채우는 '사랑'이 목적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꼭 사랑스러운 사람을 삼켜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필자가 '비연애자'였고, 필자 같은 경우에는 문화생활이었다. 허한 배에 수많은 것이 채워진다. 그것들이 모두 허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상한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가오나시도 그러지 않았는가, 계속 먹고, 먹고 또 먹는데도 검은 손을 흔들면서 더 요구한다. 먹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만, 그는 사실 무언가를 먹지 않았다면 그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끙끙 앓는 소리만 낼 수 있는 약한 존재였다. 작은 가오나시였던 필자도 토할 때마다 자주 생각했다. 가오나시는 토를 하고 다시 사람들을 삼킬 수 있을까, 토하는 것이 비참한데도 또 삼켰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쯤에도 필자는 무언가를 삼키고 있었다. 토할 때도 눈물이 났는데, 왠지 뭔가를 삼킬 때도 가끔 눈물이 났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도 할 말은 없다. 필자도 모른다. 대학교 1학년 때 예술철학 교수님께서 인간의 알 수 없는 우울 자체를 '멜랑콜리'라고 칭했는데, 그거 비슷한 게 아닐까?



2.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었더이다.

 생활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무언가 무작정 삼키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사랑은 어렵다. 사랑은 시작하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와 다르다. 필자는 틀림없이 '비연애자'들 중 한 명이었다. 마음의 경계 저편에는 가장 약한 아이가 창문에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 빼꼼 나온 눈을 상대와 마주치는 것과 같다. 겁먹은 아이처럼 눈이 마주치면 문을 열지 않아도 덜컥 겁이 난다. 눈을 마주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분명 문도 잘 잠겨있으니까 두려울 것도 없는데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엔 우리는 너무 허접하고 과대망상적인 작은 부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필자한테 사랑의 시작이란 그 눈을 조금씩 더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실수와 허접함으로 가득 차 있어도, 조금씩 솔직하게 마주쳐가면 다가갈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그 거대해 보이는 감정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솔직해질 수 있겠는가?

 필자는 사랑에 수많은 명제와 가설이 필요하다고 믿는 마음을 이해한다. 공포는 불확실성에서 파생된 감정이다. 코즈믹 호러나 공포 영화를 봐도 금방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연약하고 말랑한 여자주인공이 실체를 알 수 없는 귀신들과 살인마로부터 도망가는 이야기를 우리는 수없이 접해왔다. 공포의 중심에는 무지가 있다. 사랑에 관한 책이 그토록 유행할 수 있는 것도 이 거대한 감정의 흐름 속에 무지와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른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련된 이론과 통계자료는 내가 공포를 모르는 것같이 느끼게 해주었다. 처음 사랑을 느꼈을 때가 떠오른다. 필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좋으면서 슬펐다. 도서관에 처박혀서 사랑에 관한 책을 한 열 권 정도 읽고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우스운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에 관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물은 적 있었다. 필자는 그가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너는 안 무서워? 안 불안해? 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 대답은 나랑 비슷했다. 무서워. 불안해. 하지만 마지막 대답이 조금 달랐다. 그냥 별거 없이 지금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게 사랑인 것 같아. 그냥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알았다. 내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것도 이 말을 하는 쟤랑.



3. 가오나시한테도 양손이 있습니다.

 사랑은 좋다. 찬양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끔 필자가 남자친구와 하는 행동에 온 손가락이 굽어지는 느낌이 들긴 한다. 하지만 그럴 만큼 좋다. 첫 남자친구, 고작 3일된 연애에 관해서 잘 말하기 어렵지만,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그 애의 손을 만지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남들이 이거에 목매고, 수많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도 사랑이 건재했구나 싶다. 수많은 책과 정보에 시간을 쏟았지만, 필자와 남자친구의 연애는 무겁지 않다. 필자가 생각했던 것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누구든 사랑하고 나면 마음이 안정적일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겨우 3일 되었는데, 이 감정이 언제 끊길까 봐 두렵다. 제 삼자한테는 이런 비이성적인 판단이 우습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수많은 이론과 철학서의 구구절절을 뒤로하고,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다. 그것도 지금 말이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꿈꾸면서, 시작하길 두려워한다. 가끔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사랑은 한없이 무거워지는 것 같다. 데이트 비용, 연애 권력, 배신과 차별의 이야기. 그것들은 우리 세계 속에서 분명 존재하고, '사랑'의 형태기 때문에 우리를 더욱 위협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끌린다. 그건 이상한 것이라서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불안과 고통을 함께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비이성적이고 실제적인 손익 계산이 사라지는 감정이다. 같이 있고 싶고, 지금 내가 느끼기엔 그게 사랑인 것 같다.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사랑이 나아가는데 절대적이진 않겠지만, 어쩌면 사랑을 통해서 한 발자국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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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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