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ject 당신/ 특집 ] 10. 앞으로도 내가 가야할 곳은 많으니까 : 송다혜, 이예지

'속옷 두 장 들어가는 배낭'을 매고 '마음대로' 떠난 그들의 여행기
글 입력 2018.01.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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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當身)


1.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2. 문어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  ●



00. 여행의 시작

 12월 31일의 마지막 초침이 째깍, 00분 01초가 지났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1초 전과 같은 세계 속에서, 또 다시 1월 1일이 돌아 왔다. 매 해 마다 열두 달의 같은 날짜들이 반복되고, 우리는 늘 그 속에 살지만 작년과 똑같은 날은 없다. 각자의 인생들에는 365일이 더 해졌고, 수많은 ‘당신’들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고, 제 나름의 가치를 발견해내며 매일이 다른 하루하루의 여정을 밟아가고 있다.
  
 2018년 첫 번째 여정, 그 곳은 나의 ‘고향’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우리 집은 ‘익숙한 여행지’처럼 느껴졌다. 왠지 모를 어색함이 감도는 고향이지만 내가 늘 그 곳에 자리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건 역시 나의 친구들을 만날 때다. 꼭 집으로 갈 때마다 들르는 정류장 같은, 나의 친구들은 ‘여행’을 좋아했다. "내가 있던 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행하는 걸음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여행’이 아니냐"며, 언제나 돌아다니기를 즐기는 그들은 2015, 2016, 2017, 2018년을 넘긴 지금도 한창 여행길에 있다.

 알고 지낸지 6년을 넘겨온 친구들이지만 나는 딱히 그들의 여행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여행에 대한, 여행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것이 이번 인터뷰의 시작이 되었다. 열 번째 <당신>프로젝트의 특집 인터뷰. ‘여행’과 관련한 진지하고도 수다스러운 대담들을 통해 우리네 인생 여정을 다시금 그려 보았다.



01. 인터뷰 : 평범하지만 용감하기에

지윤: 자, 아트인사이트와의 첫 만남이네. 각자 자기소개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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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평범한 대학생 ‘이예지’.
이제 막 23살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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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 난 자기소개 준비했어.
20대를 마음대로 ‘다 해’보고 있는 송다혜.
그래서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dahaemamdaelo.


지윤: 이건 고정질문 중 하나야. ‘나’를 색깔로 표현해본다면?

예지: 음.. 나는 브라운색이 어울리는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주변 사람이 아니면 신경을 아예 안 쓰는데, 내가 챙겨야겠다는 사람들은 항상 소중하게 생각하거든. 어떻게 보면 그건 따뜻한 생각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브라운의 속성도 ‘따뜻함’인 것 같아. 근데 내 주변에 브라운 색인 물건이나 옷은 하나도 없네!

다혜: 난 검정색. 아무도 내 속을 몰라! 왜냐하면 내가 어떤 계획을 세울지, 그 계획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몰라요.


지윤: (웃음) 오늘 인터뷰 오기 전에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나 일이 있었어?

예지: 아. 오늘 날씨가 진짜 좋았잖아, 후리스나 집업 하나 입고나갈 정도로. 엄마랑 둘이서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는 길에 옛날 동네를 지나갔거든. 초등학생 때 까지 살았던 동네를 가는데 신기하더라고. 날 좋거나 그러면 혼자 카메라 들고 언덕 위에 올라가서 해지는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엄마랑 같이 가니까 감회가 새롭더라.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다혜: 인상 깊었던 일? 이야기 하려면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지금 떠오르는 건 집에서 수많은 반찬들을 앞에 놔두고 굳이 간장계란밥을 해 먹었던 거. 특히 소주병에 담겨 있는 참기름이 너무 맛있었어.


지윤: 뭔가 새로우면서도 평범한 하루였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는 무슨 계획이 있어?

예지: 사실 내일 당장 제주도를 가야하거든. 그런데 오늘 영화 <마션>에 빠져서 여행 갈 준비는 하나도 못했고 여기 인터뷰하러 나왔어. 내일 아침 10시까지 만나기로 해서 급하게 싸러 가야지!

다혜: 난 지윤이랑 예지랑 술 마실 거야.


지윤: 콜. 너네는 만약 13월이라는 비현실적인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어? 상상력 기대할게.

예지: 음. 나는 평소에 기차를 너무 좋아하거든. 진로도 코레일 쪽으로 생각해 볼 정도로! 그만큼 좋아하는데. 13월 한 달이 있으면 기차타고 우리나라를 계속 돌아다니고 싶어. 그냥 기차만 타면서 혼자 다닐래! 여태까지 친구들이랑, 지인들이랑 다니면서 물론 싫은 건 없었지만 괜히 혼자서 청승떨어 보고 싶은 게 많거든. (웃음) 카메라 하나 챙겨들고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찍고 싶네.

다혜: 나는 아이슬란드로 가서 돈의 제약 없이 진짜 좋은 숙소를 잡아서 안에서 요리도 해먹고, 빈둥빈둥 놀다가 맥주 두 잔하면서 책도 읽고 싶어. 그러고 있다가 밖에 나왔는데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하늘에는 오로라도 있고, 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지. 그걸 들으면서 웃다가도 펑펑 울고 싶다. 아무 눈치 안보고.


지윤: 다들 낭만적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가? 다음은 릴레이 질문이야. 겨울을 즐겁게 보내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예지: 전기장판에서 귤 까먹고 누워있는 거. 장난이고, 사실 그 분이 선호하는 계절 성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답하기가 어렵겠는데? 나는 겨울을 너무 좋아하거든, 비 내리고 난 뒤가 너무 좋더라.

지윤: 뭐야, 난 너무 추워서 싫은데.

예지: 나는 진짜 너무 좋아! 청량하고 손이 뽀송해지는 기분이야. 겨울은 이유 없이 좋아. 버스 타는 것 대신 일부러 걸어 다니기도 하거든.

지윤: 그럼 네 대답은 겨울만이 갖는 느낌을 즐겨보라는 건가? 겨울이 ‘싫은’ 사람은 어떻게 즐겁게 보내야 할까?

예지: 음.. 별 수 없다. 안에 있는 게 좋다면 안에 있으면 되지, 굳이 밖으로 나올 것 없이!

다혜: 맞아. 어차피 지나 갈 계절이잖아. 굳이 추운데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고, 침대에 누워서 책 읽고, 친구들 불러서 커피 내려 마시고. 햇빛 잘 드는 거실에서 다과 차려 놓고 이야기 나누는 거. 우리가 늘 하던 거지!


지윤: 인정. 진정한 겨울 휘게 라이프지.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 들려줘. 너네는 여행에 관심이 많은 만큼 가 본 곳도 다양하겠지만, 어디까지 가봤어?

예지: 나는 베트남, 방콕, 국내 여행지로는 내일로는 두 번! 하계랑 동계로 다녀왔어. 여수랑 순천이 너무 좋더라. 내일로 너무 좋은데 진심 사람들이 많이 갔으면 좋겠다.

다혜: 음. 도시로 얘기해보자면 오사카, 교토, 다낭, 호이안, 런던, 암스테르담, 잔세스칸스, 브리쉘, 코타키나발루, 프랑크푸르트, 그 정도.


지윤: 많이도 가 봤네.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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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 난 네덜란드! 잔세스칸스는 풍차 마을인데 이어폰 꽂고 걷다가 조금씩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너무 좋아서 울었어. 특히나 유럽식 건물이 좋았고, 공원이랑 운하가 많아서 길가다가 다리 아프면 쉴 수 있었는데 그것도 좋더라. 그 중에서 제일 좋았던 기억은 좋은 동행인들을 만났던 일. 마지막 저녁에는 술 마시면서 이야기 하는데 진짜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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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나는 방콕의 파타야가 좋더라. 나는 휴양지느낌보다는 배낭여행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방콕 다니면서도 배낭여행을 했는데, 예쁘게 꾸밀 생각도 없어서 옷도 거의 안 챙겼고 속옷은 한두 장 정도 챙겼어. 속옷이야 가서 빨면 되는 거고, 옷은 싸구려 하나 사서 계속 입고 다녔지. 나한테 맞는 여행 스타일을 찾았다는 기분에 스스로가 왠지 멋지다고 생각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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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유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휴양지는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배도 타고, 오토바이까지 타서 섬에 들어가는데 물속으로 너무 들어가고 싶은 거야. 근데 물놀이 할 생각도 없어서 수영복 안 챙겼었거든.

지윤: 휴양지 간다면서 너 진짜 대책 없이 다녔네. (웃음)

예지: 맞아. 진짜 대책 없었지. 그래서 앞에 파는 싸구려 수영복 사서 그거 입고 놀았어.

지윤: 근데 왜 굳이 배낭여행이야? 솔직히 속옷 한두 장은 심한 거 아냐?

예지: 난 여행 다니면서 굳이 꾸미면서 다녀야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지윤: 그래도 사진 찍힐 때 이왕이면 예쁘게 찍히면 좋지 않나?

예지: 근데 남들이 난 내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어서 찍는 거지. 인생샷, 인생샷 하는데 난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찍으면 다 인생샷이라고 생각해서. 난 내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어서 찍는 거지. 누구 보기 좋으라고 찍지는 않거든.

지윤: 그래서 내가 편한 여행이 최고인거고?

예지: 그렇지. 자연스러운 여행이 좋아. 나는 캐리어 들고 다니는 게 귀찮을 것 같고, 속옷 몇 장이랑 잠옷 정도면 상관없거든. 그리고 그 짐이 캐리어에 가야한다는 생각보다, 그냥 배낭 안에 쑤셔 넣는 게 좋아!


지윤: 그렇구나. 여행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건 있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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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 음. 많지. 항상 여행이 좋을 수만은 없다고. 네덜란드에서 벨기에 넘어가려는 찰나에 할아버지 두 명이서 짜고 내 돈을 뜯어갔던 일. 현찰로 40만원치를 뺏겼던 게 기억나네.

예지: 근데 소매치기 당하고 난 뒤에 한국 되게 오고 싶었을 거 아냐. 어떻게 참았어?

다혜: 나는 일단 고민을 속에 담아두는 편이 아니라서 무조건 친구들한테 말해. 당시에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다 말했었는데, 그 때 마침 정류장에서 한국인 언니를 만난거야. 그 분한테 위로를 많이 받았지. 그 언니가 더 안 좋았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면서 그 정도는 괜찮은 거라고 좋게 위로를 해줬어. 그래서 벨기에 갔다가 독일까지 넘어갈 수 있었지 않았나 싶네.


지윤: 근데 원래 예상했던 것 보다 한국행 비행기를 일찍 타게 된 걸로 아는데, 여행 중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나 계기가 있었어?

다혜: 일단 그 사건이 시발점이 된 거지.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도중에 약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이 내 엉덩이를 만졌거든. 그렇게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프랑스로 가려 했더니 오늘 타기로 했던 버스가 알고 보니 다음 날 버스였고, 생리도 시작했었고. 그런 일이 겹치면서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이 많이 났는데 그런 감정들이 북받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어. 혼자 여행은 힘들구나, 싶었던 경험이었어.


지윤: 예지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예지: 나는 남자친구랑 제주도 첫 여행 때! 그 땐 자동차를 빌리기엔 나이도 안 됐었고 보험 낼 정도로 돈이 많지 않아서 스쿠터를 빌렸거든. 딱 출발하려 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하더라. 그래도 부랴부랴 우비를 입고 출발했지 러브랜드로! (진짜 가고 싶었어. 너무 가보고 싶었던 곳이어서!)

지윤: 응? 의지가 대단한데. (웃음)

예지: (웃음) 그런데 하필 오르막길에서 내려오는 차를 피한다고 옆으로 피하다가 넘어진 거야. 백미러는 부러져 있고. 당시 남자친구가 자기는 괜찮다고 했었는데 그 날 저녁에 보니까 이 친구가 팔이 다 갈려있더라고. 다행히 고장 난 부분은 사장님께서 괜찮다고 하시긴 했지만 사고는 처음이라 무서워가지고 차를 돌려서 센터까지 다시 갔던 일이 생각나네. 다시 출발했을 때도 비가 계속 와서 너무 춥더라. 한두 시간 스쿠터를 타고 가니까 진짜 동상 걸리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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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비가 점점 멈추기 시작하더니 앞에 무지개가 보이는 거야. 그거 보면서 솔직히 혼자 울었어. 남자친구가 너무 예쁘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뒤에서 찔끔찔끔.


지윤: (웃음) 잊지 못할 경험했네. 나도 이상하게 진짜 멋진 풍경 보면 뭉클해서 눈물이 나더라. 근데 사진으로 남겨도 그 때 느꼈던 그 감흥은 다시 느끼기가 힘들던데, 딱히 성실하게 일기를 쓰는 편도 아니어서 그 감상들을 잘 잊어버리기도 하고. 다들 여행 추억은 어떻게 기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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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난 여행 다녀오면 지도나 티켓 같은 실질적인 흔적들은 절대 안 버려. 누가 보면 영수증 하나하나 모을 것 까진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여기서 맛있게 먹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생기면 영수증 뒤에 에피소드를 적어둬. 그리고 집으로 잘 가져와서 다이어리에 붙여놓기. 사진 같은 건 N드라이브로도 용량이 모자라서 외장하드를 따로 살 정도!

다혜: 나는 예지랑 다르게 하루 이틀 날 잡고 사진을 인화해. 그걸 아무 무늬도 없는 스크랩북에 몽땅 다 붙여. 티켓이나 사진을 정리해서 붙여놓고, 가끔씩 한번 훑어보면 너무 좋더라.


지윤: 그렇구나. 근데 여행 사진을 보면 늘 기억이 미화되는 것 같아. 사실 여행이 항상 낭만적이거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잖아? 힘든 일도 있을 거고. 여행을 하면서 한국이 그리웠던 순간은 없었어?

예지: 나는 매번 한국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 때가, 그 나라에 딱 도착했을 때? 적응이 너무 안 돼서 집에 가고 싶긴 한데 하루 이틀 지나면 극복되는 것 같아! 막상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다혜: 난 소주랑 닭발이 땡길 때.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느꼈던 건데 작은 방에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외로웠던 거. 심지어 혼자 갔던 첫 여행이어서 당장 한국으로 가는 게 맞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던 밤이었지.


지윤: ‘혼자’ 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있었어?

다혜: 나는 혼자 여행하게 된 계기가 대학 생활 중에 이승아 여행 작가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위험하고 나발이고 간에 사실 그게 멋있어보였던 것도 있고. 학교도 안 맞아서 스트레스 받는 마당에 나름대로 휴학하는 방법을 선택했었지. 어영부영 다닐 바에는 휴학해서 차라리 간지나게 여행 한 번 가보자 하는 이유가 컸었던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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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 그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편하긴 하더라. 내 사진도 못 찍고 진짜 외롭기도 많이 외로웠는데, ‘나한테 이런 새로운 모습이 있었구나’ 할 정도로 도전을 많이 해봤던 것 같아. 내가 남들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그거 하나 가겠다고 몇 개월 동안 투잡을 뛰었거든. 영어 문법도 하나도 몰랐는데 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니니까 계속 나오더라고. 술 마시면 술술 나오길래 신기하더라. 여행지에서는 구글 지도 하나에 의지해서 다녀보고, 버스, 지하철, 기차 등 온갖 교통수단을 이용해봤는데 잘 찾아가는 내 모습이 대견했지.


지윤: 멋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여행을 하면서 느끼거나 얻은 게 있다면?

다혜: 같이 여행을 하면 혼자랑은 확실히 다른 게, 내가 너무 행복한데 이 기쁨을 간접적으로 나눌 수 있는 거랑 다르게 바로 옆에 있으면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거니까. 동행인을 귀찮게 구할 필요 없이 제일 친한 친구가 옆에 있는 거. 그것만으로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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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나는 혼자 다녀본 적은 없지만, 누구랑 같이 여행하는 걸 좋아해. 가는 길에 말동무도 필요할 거고, 서로 어디가 좋았는지 공유도 할 수 있을 거고, 특히 밥 먹을 때 같이 먹으니까 든든하더라고. 힘든 일이 있어도 누가 있으면 의지할 수도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지윤: 그렇지. 혼자 다니는 것만큼이나 같이 다니는 것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텐데, 트러블이 있거나 여행 스타일이 안 맞는 경우는 없었어?

예지: 음. 여태까지 같이 간 사람들 중에서 나랑 안 맞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어. 싸운 적도 없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가 주변 사람들을 많이 챙기려고 하는 성격 덕분일 수도 있고. 그건 내가 살아온 동안의 내공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근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가면 얼굴 붉힐 일이 있을까? 아마 없을 거야. 이해하면 되니까!


지윤: 장점도 단점도 다 있구나. 그럼 계속해서 여행을 하는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

예지: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했던 생각은 ‘여행은 무조건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이 갈 수 있다’였거든. 근데 ‘내일로’를 다녀온 시점부터는 생각이 바뀌었어. 국내에서도 이렇게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이 되어있는데 그동안 왜 안 갔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다녀와도 의미가 생기는 게 여행인 것 같아. 어디든 간에 ‘아, 내가 잘 갔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늘 들거든. 어쨌든 내가 계속해서 여행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내가 가야 할 곳은 많으니까!

다혜: 나도. 덧붙이자면 ‘지금이 아니면 안 되니까’. 돈을 많이 모아두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행은 갈 수 있겠지만 일단 체력이 지금이랑 많이 다르겠지? 공부야 계속 미루긴 했어도 이건 계속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예지: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근데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여행을 다니고 싶었던 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과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감정들은 확연히 차이가 날 거야. 난 그래서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웬만하면 안 해. 앞으로도 여행을 계속해서 다니고 싶다는 마음을 이어 갈거야.


지윤: 그렇다면 여행의 종착지? 그 끝은 어디야?

예지: 여행은 끝이 없으니 종착지라기보다, 내가 진짜 인상 깊게 본 드라마 중에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작품이 있는데 사람이 살면서 겪는 복합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거든.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조인성이 사는 곳이 ‘슬로베니아’라는 나라인데 너무 가고 싶더라. 나에게는 진짜 명작으로 남아서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커.

다혜: 나는 엄청 미래까지 생각하진 않고 단기적으로만 생각하는 편이어서, 일단 단기적인 목표는 이번 달 말에 대만가는 거. 가장 장기적인 목표가 24살 겨울에 남미 한 달 동안 가는 거? 인생은 한치 앞도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성격 상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심해서 장기적인 계획은 없고 무조건 그 때 그 때 내 맘대로!


지윤: 단기든 장기든 다들 지속적인 여행 계획이 있구나. 혹시 초보 여행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까?

예지: 음, 여행에 있어서 ‘초보’와 ‘추천’이 필요할지 모르겠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거지! 먼저 여행해 본 나라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이나 조언은 해줄 수 있겠다.

다혜: 그렇지. 여행은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니까.


지윤: 그래, 같은 곳에 두 번 이상 가는 게 아니면 어떤 여행지든 다 처음인 거니까. 흠, 그럼 만약 일생일대 단 한 번의 여행 기회가 있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라도.

예지: 일생일대의 기회라 해도, 살면서 자기가 가보고 싶은 곳이 없을 수가 있나? 적어도 한 군데 정도는 있을 것 같아. 거기로 가면 돼!

다혜: 초보 여행자라는 건 아마도 첫 여행자, 여행 입문자랑도 비슷한 말이겠지? 그럼 말할 것도 없이 국내! 자기가 살던 지역에만 있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도 동떨어져 있는 상태인 거니까.


지윤: 다들 멋진 말만 하네. 이제 슬슬 인터뷰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2018년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다짐한 게 있다면?

예지: 우울해지지 않기. 내가 좋아하는 거, 올해도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다녀야지!

다혜: 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버킷리스트를 10개 정도 적는데, 억지로 짜내는 건 싫어서 일단 4개까지만 적어놨어. 내가 원하는 체중 유지하기, 성적 4점대로 올리기, 남미 24살 때 가는데 300만원 모아 놓기 등.


지윤: 그렇다면, 다음 인터뷰이를 향한 릴레이 질문과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해본다면?

예지: 나는 혼술을 잘 할 수 있는 방법? 학교에서 혼밥은 잘하는데 요새는 술을 많이 찾거든. 힘들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먹고 싶어서.

지윤: 아 맞아. 혼술 진짜 어렵지. 근데 그렇게 먹고 싶으면 집에서 먹으면 되잖아.

예지: 에이, 밖이랑은 다르지. 집은 너무 적적해서.

지윤: 그래. 혼술을 잘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방법.

다혜: 우선 나는 진지하게 묻고 싶은 건데, 지하철에서 급하게 화장실이 마려울 때 다들 어떻게 참으시는지? 나는 지하철에서 그만 좀 내리고 싶거든.

그리고 예지 질문은 방법이 있긴 하지. 우리나라에 한정된 게 아니어도 괜찮은 거라면, 혼자 여행을 가면 돼. 해외여행을 가면 맥주를 많이 마시게 되더라고. 나도 혼자 엄청 먹었던 것 같다. 아무도 뭐라 안 하더라! 사실상 한국에서 ‘혼자’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아직까지도 의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함께 할 누군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 맞추기가 귀찮을 수도 있고 혼자 하는 게 편할 수도 있는 거니까. 혼자서 편하게 술을 마시고 싶다면 혼자 여행을 가서 혼술을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지윤: 인터뷰 진행하면서 계속 느꼈지만 주관들이 확실한 것 같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나’는 한 마디로 어떤 사람인지 묻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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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나는 ‘속옷 두 장 들어가는 배낭’. 여행을 다닐 때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꾸밈없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다혜: 나는 한 마디로 꼴리는 대로, 맘 가는 대로 하는 사람. ‘다해맘대로!’


지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볼 누군가에게 한 마디 한다면? 혹은 우리 또래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다혜: 20대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고민 걱정 하지 말고 눈 한 번 딱 감고 도전해!

예지: 음, 맞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영부영 보내지 말고 할 건 다 하고, 가고 싶은 곳, 혹은 본인이 지향하는 것이 있다면 관련된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기. 그러면서 내면을 채워갔으면.



02.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치 너의 여행이 나의 여행이었다는 듯,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꺼내어 추억의 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나는 그들의 여행기를 잠시나마 함께 회고하며 실제 여행 중에 있기라도 한 듯 생생한 추억들로 가득한 감동을 경험했다. 현실의 허기짐과 피곤함이 과거로의 낭만 여행에서 우리를 끌어냈고, 도란도란 맥주 한 잔을 비워내며 길고 길었던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복세편살’, 즉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라는 말이 있다. 이 친구들을 만난 날이면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는 말이다. 생각은 쉽지만 늘 실행이 어렵고, 선택은 쉽지만 어떤 선택이든 후회는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처럼, 그들의 언어처럼, ‘마음 가는 대로’,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진정한 나를 만들어 줄 그 곳으로 떠나 인생의 여정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평범하게, 위대하게!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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