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동률 '답장', 결국 모두 시간의 일 [음악]

김동률 EP '답장' 앨범 리뷰
글 입력 2018.01.24 08: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김동률 '답장', 결국 모두 시간의 일
김동률 EP '답장' 앨범 리뷰


KIMDONGRYUL.jpg
 

 사랑은 시간의 일이다. 김동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느낀다. 어떤 시간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어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간다.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 두 사람은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지난 10일 발매된 김동률의 EP [답장]에서 그는 사랑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이후까지 담대하고 섬세하게 끌어안았다.
 
 타이틀곡은 김동률의 특기 같은 이야기와 편곡이다. 사랑을 놓쳤지만 다시 뒤돌아보며 돌아오길 바라지만 크게 움직이지는 않는 절절한 남자의 이야기. 지난 앨범의 타이틀곡 '그게 나야'가 생각나는 이 트랙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귀를 사로잡고,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김동률의 목소리가 얹히며 시작한다. 지난 날을 자책하고 후회하느라 편지의 답장은 채우지 못하고 내일로 미룬다. 어쩌면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닿자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다가 결국 사랑을 고백하고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고조되는 오케스트레이션과 김동률의 목소리는 기어코 없던 추억까지 만들어내며 듣는 누구나 눈이 빨개지도록 만든다. 결국 이 노래는 쓰지 못한 답장이다. 깔끔하게 헤어질 수 없는 남자는 연인에게 깔끔한 답장을 쓸 수 없기에, 그렇다고 사랑의 말을 쓰기엔 과거의 자신이 못나서 결국 혼자 노래를 부르고 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시간은 이미 어긋났다. 어긋난 시간을 바로잡지는 못하지만 과거의 연인을 향해 달려가는 이 사람의 시간은 계속된다.

 애절한 사랑의 여운만큼 안타까운 것은 사랑이 어긋나는 것을 느끼며 지켜보는 일이다. 이소라와 함께한 '사랑한다 말해도'는 김동률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 선율 위에 기타, 현악,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로 완성되었다. 사랑한다 말하지만 과거와는 달라진 것을 아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현실적이어서 더욱 슬프다. 이소라와 김동률의 목소리가 어울리며 쓸쓸한 아련함을 자아내는 것만큼 청아하면서도 어딘가 절절하게 울리는 간주의 기타 연주도 인상적이다. 그래도 역시 압권은 '어쩌다 이렇게'로 마무리되는 부분이다. 문장조차 마무리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
 
 2번 트랙 Moonlight은 정말 그대로 시간이 달라 조용히 지켜보는 사랑의 이야기다. 한낮의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없어 애태우는 한밤 속의 그는 잔잔한 노래로 상대의 밤을 지킨다.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없을지 모르는 시간의 상대를 사랑하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있었다.
 
 5번 트랙 'Contact'에서 그는 현실을 떠나 낭만 속에서 그는 모든 감각을 깨우고 시간을 찰흙처럼 늘리고 이어 붙이며 사랑을 노래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행복의 한가운데에서 시간이 멈춰 사라져도 좋은 순간까지, 김동률은 우주 속 조금은 생소한 이야기에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에서 가장 낭만적인 곡이라 생각한다. 헛된 상상에서 시작해서 지금이 영원하길 바라는 불가능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헛된 상상이든 낭만이든 중요하지 않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존재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서로를 놓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느낌을 잃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4번 트랙 '연극'은 이 앨범에서 가장 튀는 곡이라 느낄 수 있다. 대단히 극적인 이 곡은 화려한 반도네온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노래 속에서 김동률은 그야말로 한 편의 연극을 보여준다. 발단-전개-절정-하강-대단원이 모두 살아있는 이 곡은 이 앨범에서 가장 튀면서도 놀라운 완성도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나 마지막, 결국 이 모든 것이 연극이었음을 깨달은 사람의 허탈함과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이봐요 당신 이미 오래 전 연극은 벌써 끝이 났다오' 부분과 반도네온의 화려한 연주는 서스펜스 영화라도 본 듯한 서늘함까지 자아냈다. 그래서 이 트랙과 마지막 contact를 이어서 들으면 미처 적응하지 못한 정신은 'Contact'의 낭만과 순수 앞에서 당황할 수 있다. 차라리 이 곡이 마지막이었다면 듣기엔 더 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앨범의 제목 '답장', 그리고 첫 트랙의 가사를 떠올린다면 결국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행복하던 순간들에서 멈추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랑을 시작하며 바라보던 순간, 틀어짐을 느끼며 마주하던 얼굴, 이미 연극은 끝이 나버렸다는 당황스러운 현실 앞에서, 결국 사라지더라도 그 순간에 머물러있기를 바라면서 답장을 미루는 남자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씁쓸한 현실과 순수한 행복의 낭만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결국 김동률의 목소리다. 어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날 가장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김나연 서명.jpg
 

[김나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